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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 Sep 02. 2019

쉼의 중요성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던지는 충고

졸려 죽겠는데 너무 많은 생각이 끊임없이 밀려 들어오는 밤. 침대에 누워 삼십 분가량을 뒤척이다가, 참을 수 없이 글이 쓰고 싶어 져서 벌떡 일어났다.


먼저 부엌으로 가 오늘 저녁 재료로 사두었던 통베이컨을 꺼내 20분 만에 뚝딱 파스타를 만들고, 맥주 한 캔을 땄다. 오늘 하루 고생한 나에게 주는 선물.



지난 한 달 되돌아보기

어느 하나도 놓칠 수 없던 지난 나의 한 달


오늘로부터 딱 1달 전, 덴마크에서 보름간 여름휴가를 보내고 한국에 돌아온 지 1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시차 적응 대실패로 잠 안 오는 밤에 부동산 앱을 뒤지다 우연히 본 집에 한눈에 반했다. 어찌어찌 잠을 자고 눈을 뜨자마자 부동산에 전화해 그 날 집을 보러 갔다.


높은 층고, 이상한 구조, 탁 트인 멋진 뷰, 말도 안 되게 많은 창문 개수, 큰 주방, 지은 지 10년밖에 안된 비교적 새 건물, 한적한 동네, 출퇴근 30분. 어디 나무랄 데가 없는 집이었다. 바로 다음날 계약을 하기로 결정하고, 약 2주 만에 전에 살던 집에 이사 올 세입자를 찾고, 짐을 정리하고, 필요 없는 가구를 팔고, 이삿짐센터와 이사청소 업체를 정하고,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한 게 딱 2주 전이다. 새로운 집에 적응할 새도 없이, 바로 다음날 오전 비행기로 덴마크로 떠났다. 일주일 남짓 쉼과 일이 병행한 시간을 보내고, 수요일 아침 비행기로 돌아와서는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비행기에서 잠 한 숨 못 잔 상태로 집 도착하자마자 그 날 저녁 행사에서 150명가량 앞에서 발표할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고, 바로 사무실로 출근해서 부스에 전시할 짐을 싸고, 행사장으로 가 세팅하고 행사를 진행하니 저녁 열 시 반. 짐을 다시 싸서 혼자 사무실에 돌아와 짐 정리를 하니 몸이 말이 아니었다.


목요일은 인터뷰와 미팅 3개, 저녁 일정이 있었기에 일찌감치 일어나니 목이 아팠다. 몸살이 났지만, 제품 샘플을 잔뜩 들고 종로, 용산, 도산공원, 청담, 다시 도산공원 그리고 성수까지 이어지는 일정에 늦지 않으려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또 집오니 열두 시.


다음날에도 행사가 있어 일찍 출근해 차를 우리고, 업무를 보고, 행사 짐을 싸고 또 부리나케 달려가서 행사를 진행했다. 마무리하고 오니 열한 시 반. 몸은 쉬라고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지만 쉴 수가 없다. (내가 자초한 내 일이니까 탓할 사람도, 떠맡길 사람도 없다.) 주말에도 밀린 일들을 하고 밤늦게 집에 들어왔다. 몸은 죽도록 피곤한데 잠을 잘 수가 없다.


Overtræt


덴마크에서는 이런 과부하 상태를 overtræt([오어트랏], 영어로 직역하면 over tired)라고 한다. 너무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나 몸이 좀체 쉴 수 없는 상황에 와버린 것. 너무 긴 시간 동안 각성상태가 지속되면, 갑자기 쉴 수 있는 상황이 주어지더라도 원래의 안정된 상태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듯하다.


지금 당장에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걸 성취해낸 것처럼 보여도, 다시 최상의 상태로 회복하기까지의 기간 동안 낮아진 능률과 효율성을 생각하면 그런 것 같지도 않다.


한국 와서는 마치 다 잊은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4년간 덴마크에서 몸소 배운 것이 두 가지가 있다.


1. 우선순위 세우기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걸 할 수 있다고 믿는 성향의 나에게는 늘 긴 할 일 리스트가 있었다. (성향은 쉽게 안 바뀐다고 그 리스트는 여전히 길다.) 꼭 해야 하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들, 그냥 하고 싶은 것들 등이 뒤섞여있다. 덴마크 가기 전 내 인생은 정말 정신없음 그 자체였다. 위에 서술한 지난 한 달이, 나의 일상생활이었다.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으면서도 끝내지 못한 일들에 대한 스트레스로 가득한 나날들.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적이기에, 머릿속에 떠오른 모든 생각들을 실천에 옮길 수는 없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놓아버리면 중요한 것들에 집중할 수 있다. 놓치는 게 무서워 중요하지 않은 것까지 낑낑대며 짊어지고 가다가 과부하 상태에 다다르고 있는 건 아닐까. 중요하게 느껴져도 곰곰이 따지고 보면 하지 않아도 그만인 일들, 소유하지 않아도 그만인 것들, 보지 않아도 그만인 사람들일 수도 있다.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다 쳐내고 정말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을 충분한 시간을 갖고 할 수 있게 되는 게 현명한 게 아닐까 싶다.



2. 효율적으로 짧게 일하고, 충분한 휴식을 갖기


덴마크의 통상적인 근무 시간은 다음과 같다.

공공기관, 사무 업: 7시-3시 혹은 8시-4시

크리에이티브 업종: 9시-5시 혹은 10시-6시

하루 7.4시간을 일하고, 30분의 점심시간이 주어진다.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보고 느낀 바로는 그렇다고 일을 더 적게 하진 않는 것 같다.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별로 없다 보니, 집중해서 효율적으로 일하는 분위기다. 점심 먹고 나서 3-4시간 일할 시간이 있는 것과, 6시간이 있는 건 확실히 다르다.


그리고 온전히 쉬는 저녁과 온전히 쉬는 주말은 다음날, 다음 한 주를 활력 있게 지낼 수 있게 하는 충전 시간이다.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주 5일 근무에 오전 8시에서 오후 4시까지만 일해야지 다짐했었다. 길게 일하는 것보다는 짧고 굵게 일하자고 마음먹으며.


하지만 막상 사업을 시작하니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세운 규칙은 단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다. 차라리 상사가 있다면 맘 편히 퇴근할 수 있을 텐데. 내 할 일, 온전히 내 책임인 이상, 맘 편히 쉴 수가 없다. 내가 일찍 가서 충분히 쉬면 다음날 더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눈 앞에 쌓여있는 일들을 제치고 집에 갈 수가 없는 거다.



더 이상은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일보다 중요한 건 '나'


결론은, 더 이상은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거다. 지금 당장 메일에 답을 하지 않아도, 이번 주에 당장 이걸 끝내지 않아도 큰일이 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내가 나를 스스로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여섯 시 반으로 맞춰둔 알람을 8시로 옮겨놔야겠다. 새로운 한 주, 새로운 한 달을 시작하는 오늘만큼은 늦게까지 자고 상쾌하게 일어나야지. 그리고 이번 주는 두 가지 교훈을 생각하며 한 템포 느리게 살아봐야겠다.



Even if it goes wrong,
it's not the end of the world


머릿속이 정리되니 다시 피곤이 몰려온다. 내일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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