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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 Jun 18. 2018

Doing, not talking

완벽함보다는 꾸준함

어제 비행기에서 JFDI라는 팟캐스트를 듣다가 갑자기 글을 쓰고 싶어 졌다. 


Ustwo라는 디자인 에이전시의 파운더 Mills가 하는 팟캐스트인데, 예전에 지원을 해볼까 하고 유심히 보았던 회사라 궁금해서 들어보았다. 내가 평소에 듣기 좋아하는 팟캐스트는 주로 무언가를 일구어 낸 사람과 호스트가 인터뷰를 하는 형식이고, 제법 형식이 짜이고 퀄리티도 좋은 프로그램이라면 이 팟캐스트는 개인 블로그에 가깝다. 하루 중 시간이 날 때 자기가 요즘 뭐에 빠져있는지, 오늘 아침에는 뭐했고, 누가 자기한테 메일을 썼는데 어떤 생각이 들었고, 요즘의 솔직한 상태라던가 지극히 개인적이고, 너무 솔직해서 주변 사람이 들으면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이야기들을 한다.


주로 물건으로 가득 찬 지하실에서 녹음을 하는 것 같고, 어떨 때는 바람소리나 차 소리, 살짝 숨찬 소리를 내는 걸 봐서 길가면서도 녹음을 하는 것 같다. 대단해 보이는 사람이라 대단한 걸 기대하고 들었다가 두서없이 말하고 처음에 ‘우-후’, ‘예-‘하면서 시작하는 게 지나치게 느껴져서 그만두었다가, 갑자기 잠 안 오는 비행기에서 생각이 나서 다시 들었는데 그의 솔직함과 ‘doing, not talking’의 태도가 멋지게 느껴졌다.

누구나 이거 하면 재밌겠다, 이거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나 말을 많이 하지만, 생각하거나 내뱉은 말 중에 실천으로 옮기는 건 거의 없다. 적어도 내 경우는 그렇다. 그렇게 실천으로 안 옮기다 보니 요즘은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생각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지만.




글을 쓰는 걸 어려워 하지만 좋아한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읽는 글을 쓰는 건 참 조심스럽다. 내 얘기를 하면서도 또 너무 많은 걸 보여주고 싶진 않다. 영양가 있고, 재미도 있으면서 오타도 없는 완벽한 글을 써야 할 것 같다. 어렸을 때는 불편한 사람들에게 연락이 오는 게 정말 싫었는데, 문자를 받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오랜 시간을 들여 문자를 썼는데 읽어보니 어딘가 이상하고 부적절한 것 같아 결국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사실은 지금도 그렇다. 쓰고 싶은 말들이 엄청 많았다가, 결국 글로 옮기고 나면 이상하거나 부적절해 보여서 한참을 고쳐 쓰다가 결국에는 ‘임시저장’ 버튼을 눌러버리게 된다. 글을 쓰는 걸 좋아하지, 누가 내 글을 읽는다고 생각하는 건 또 부끄러워서 그 정도면 족할 때가 많다. 그래도 정말 상관없는 누군가가 내 글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또 무슨 생각으로 읽을까 궁금해하다가, 아- 이런 쓸모없는 긴 글을 누가 다 읽겠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무튼 결론은 글을 쓰고 싶어 졌다. 나도 실은 가끔 전혀 상관없는 이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고 사색에 잠기곤 하니까. 어쩌면 멀어서 더 쉬운걸 수도 있겠다.




쓰고 싶은 내용은 많다. 이미 두 편씩 쓴 덴마크 취업기(그리고 퇴사기, 창업기)와 여행기. 3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서 다른 눈으로 보는 한국 이야기도, 가끔 쓸데없이 드는 생각도 기록하고 싶다. 가끔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있는 시기가 있는데, 한 번은 그 시기에 만난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했었나 보다. 아주 오랜만에 친구한테 연락이 와서 우리 일 년 반 전에 네가 했던 얘기, 종종 생각했다며 나한테 얘기를 해주는데, 나는 전혀 기억이 안 났다. 내가 그렇게 괜찮은 표현을 생각해냈다니, 그리고 완전히 까먹어버렸다니. 생각하며 가끔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하나도 안 썼다.


몇 편 안 되는 지금까지 쓴 글이 아주 멋진 글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 시간씩 고민하며 쓴 글들이다. 쓰고 나면 지쳐서 후, 이 정도면 됐어하고 그다음 편까지 이어지지 못했다는 게 아주 큰 단점이다. 앞으로는 아주 엉망이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글을 써볼까 한다. JFDI에서 Mills가 그러는 것처럼 시간 날 때 틈틈이, 자주. 책상에 앉아서 쓸 수도 있고, 어쩌면 자기 전에 끄적여볼 수도 있겠다. 완벽하지 않고, 읽기 좋은 글은 아니지만 가끔은 꾸준함이 완벽함보다 더 좋을 수도 있으니까. 




헤더에는 근 5년간 틈틈이 찍은 필름 사진을 써볼까 한다. 2016년 7월 28일에 스캔하고, 언제 찍은 지는 모르는 사진. 오후스 가는 버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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