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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Sep 10. 2021

아무리 영국 집에선 쥐가 흔하다지만

당장 짐을 싸서 한국에 가고 싶었던 날

  

  주재원 발령이 난 남편을 따라 시작된 영국 생활. 기간은 3년. 이곳에 계속 사는 게 아니라 돌아갈 날이 정해져 있기에 긴 여행을 온 것 같은 느낌으로 산다. ‘여행지에서는 원래 조금 불편한 거지’ 생각하면 웬만한 상황은 의연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물론 짜증 나는 일은 왕왕 있었지만. 툭하면 여우가 음식물 쓰레기통을 파헤쳐서 지난주 뭘 먹었는지 동네방네 전시해놓는다거나, 싱크대에서 물이 내려가지 않아 플런저(일명 뚫어뻥)로 뚫다가 옷에 오물이 튀어버린 날, 더운 여름 문을 열어놓으면 어김없이 들어와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크고 뚱뚱한 파리 같은. 그럴 때마다 욱하기도 하지만 나중에 이 모든 것이 그리움이 될 것을 예감할 수 있었기에 영국 생활이 싫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중에 딱 하루, 당장 짐을 싸서 한국으로 떠나고 싶은 날이 있었다.     


  영국에서 맞이한 두 번째 여름, 아이들을 재우러 간 남편을 기다리면서 식탁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뭔가가 발 옆으로 쓱 지나가는 걸 느꼈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마음 한구석에 스멀스멀 불안감이 피어올랐지만, 믿고 싶지 않은 마음에 애써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잠시 뒤 다시 빠르게 지나가는 작고 검은 털 뭉치, 길고 가느다란 꼬리를 보는 순간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으아아아악! 남편!! 자기야!!”      


  그 시커먼 물체와 대치하는 상황이 될까 무서워서 움직이지는 못하고, 이층 아이들 방에서 잠들어버린 남편을 마구 불렀다.      


“자기야, 쥐!! 쥐가 나왔다고! 빨리 내려와 봐!”     


 잠이 덜 깨서인지 시골에서 자라 쥐가 낯설지 않은 것인지 침착한 남편.      


“쥐라고? 어디서 나왔는데?”      


“여기서 나와서 이쪽으로 도망갔어. 어떡하지? 어떡해... 쥐라니....”     

 

“이 밤에 뭐 할 수 있는 게 있겠어? 내일 부동산이랑 집주인에게 얘기해서 방법을 찾아보자.”  

   

  원래 작은 벌레도 무서워하고 잡기 힘들어하는데 쥐는 크기로 보나 부피감으로 보나 어나더 레벨이다. 온몸이 떨리고 당장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은 나와 달리 유튜브 영상에 정신이 팔린 남편을 보고 있자니 더 속이 상했다. 쥐 박멸, 쥐 퇴치하는 법, 영국 집 쥐 같은 검색어로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영국 집에서는 생각보다 흔한 일인지 경험담이 꽤 나왔다. 아래층에 식당이나 카페를 하는 상가주택은 99.99%고, 우리 같은 단독주택에도 자주 출몰한단다.

  참, S언니네 집에도 쥐가 여러 마리 나와서 고생했댔지. 처음에는 한두 마리가 보였는데 나중엔 주방 수납장에서도 튀어나오고, 대담해진 쥐가 식탁 위에도 올라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악했던 기억이 났다. 설마 그래도 우리 집 얘기는 아닐 줄 알았는데...  쥐가 나왔다는 문자를 보내자마자 곧 전화가 왔다. 따뜻한 위로의 말을 들으니 참았던 눈물이 났다. 아마 먹이를 찾아서 집에 들어왔을 거라고, 쥐가 좋아할 만한 음식을 치우고, 밀봉해서 가능한 선반 위쪽으로 올려놓으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바닥에 둔 쌀 포대 주위로 낱알이 몇 개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쌀과 잡곡을 전부 밀폐 용기로 옮기고, 바닥에 혹 과자 부스러기가 있는 건 아닌지 잘 닦았다. 한번 쥐를 보니 아늑하던 집 전체가 다 의심스러워졌다. 긁적긁적, 괜히 온몸이 간지러운 건 기분 탓일까. 오늘 밤에 잠은 어떻게 잔담.

  하루가 멀다하고 만나는 동네 친구 아슬리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금방 달려와 현관문을 두드리는 그녀.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초음파 해충퇴치기 여러 개를 든 채로. 플러그마다 꽂아두면 최소 2층, 3층까지 올라오지는 않을 거라고 눈이 빨개진 나를 안쓰러워하며 꼭 안아주는 아슬리. 역시 이럴 땐 이웃사촌이 남편보다 낫구먼. 덕분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막연한 공포심에서 조금은 벗어나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다음 날 남편이 부동산과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다. 웨일즈 출신인 집주인은 들어온 녀석이 들쥐(rat)냐, 생쥐(mouse)냐를 먼저 물었다. 우리는 그게 그거 아닌가 싶었지만 집주인의 설명을 들어보니 둘은 일단 사이즈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단다. 크기가 큰 들쥐는 병균을 옮길 수 있고 비위생적인 동물이라 문제가 되지만, 작은 생쥐는 그저 먹을 것을 찾아 집에 잠깐 들어온 것뿐 별 문제가 아니라고. 남편이 아내가 너무 놀라서 잠도 못 자고 난리가 났다고 했지만 돌아온 답은 역시 별일 아니라는 듯, “생쥐가 너희 와이프를 보고 더 놀랐을 거야.” 농담을 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서양인 중에는 생쥐를 귀엽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단다. 그래서 미키마우스나 라따뚜이 같은 생쥐 캐릭터가 인기몰이를 할 수 있었나 보다.     

  집주인은 원래 집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집도 직접 리모델링을 한 터라 대략 어디서 쥐가 들어왔을지 파악을 하고 있었다. 쥐가 이동한 동선과 집주인의 추리를 더해보니 세탁기 뒤 작은 구멍에서 들락날락했던 것 같다며 꼼꼼하게 구멍을 막아주고 쥐덫도 설치해주었다. 집주인의 빠른 조처에도 안심이 되지 않았던 나는 아마존에서 추가로 쥐덫을 구입했다. 내가 산 쥐덫은 쥐를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게 아니라 안전하게 생포할 수 있다는 특장점을 강조했다. 쥐가 좋아할 만한 음식을 통 안에 넣어 유인하고, 잡히면 집에서 8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공원에 풀어주란다. 쥐가 죽든 말든 상관없고 내 집에서 완전 박멸, 퇴치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낱 미물, 해충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쥐에게도 동물권을 부여하다니. 말 못 하는 동물을 위한 권리가 보장되어 있다면 사람에 대한 존중과 권리는 기본으로 따라올 터. 내 예상보다 한참 업그레이드된 쥐덫을 통해 영국의 동물보호•복지에 대한 의식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체감할 수 있었다.      

  쥐가 환장한다는 땅콩버터를 사서 쥐덫에 넣어놓고는 밤새 난감했다. 내일 아침에 쥐가 들어있어도 문제, 없어도 문제가 아닌가. 쥐가 있으면 있는 대로 징그럽기도 하고 나중에 그 아이를 들고 멀리 나가 풀어줄 것도 걱정이었다. 쥐덫에 쥐가 없으면 집 어딘가를 돌아다닐 가능성이 있으니 그것도 찜찜했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이 조심스레 확인한 결과, 쥐덫은 비어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쥐덫에 걸린 쥐는 없다. 그때 본 쥐가 세탁기 뒤 구멍으로 도망갔고, 집주인이 용케 그 구멍을 막은 것으로 믿고 있다. 아니, 믿고 싶다.      


  넷플릭스에 영국 드라마 《더 크라운(The Crown)》을 보다가 여왕을 비롯한 로열 패밀리가 사는 성에서 쥐가 쓱 지나가는 장면이 나오는 것을 보고 ‘역시 영국이다!’ 싶었다.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영국 총리 관저에는 하도 자주 출몰하는 쥐를 잡는 특별 고양이 보좌관을 세웠단다. ‘쥐 잡는 최고 사령관’ 고양이 래리의 근속 10주년 축하 기사까지 나올 정도니 말 다 했다. 여왕님이 계시는 궁전과 총리 관저에도 쥐가 있는데 우리 집이라고 없으랴마는 나는 영락없는 한국 사람. 그날처럼 한국의 깔끔한 아파트로 당장 돌아가고 싶었던 날은 없었다.      

  아닌 밤중에 서생원과 조우한 이후, 아직도 밤늦게 혼자 1층 거실에 내려갈 때면 일단 모든 불을 환하게 켜고, 발소리도 일부러 쿵쿵 내곤 한다. 오늘도 한밤중에 홀로 거실 식탁에서 글을 쓰고 있노라니 그때 내 옆을 지나가던 시커먼 털북숭이가 다시 생각이 난다. 잘 도망갔니? 우리 다시는 보지 말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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