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파이퍼, 『나의 글로 세상을 1밀리미터라도 바꿀 수 있다면』
얼마 전 혼자 동네에 좋아하는 국숫집을 찾았다. 점심시간이라 하나 남은 빈자리에 앉았다. 주문하고 수저를 챙기는데 옆자리 모녀의 대화가 들렸다. 일부러 엿듣지 않아도 다 들릴 만큼 크고 또렷한 소리였다.
“특목고 준비해. 엄마는 너 일반고 가는 거 싫어.”
평일 점심시간, 소박한 동네 식당에서 나올만한 대사는 아니다 싶어 놀랐다. 몰래 맞은편에 앉은 딸의 얼굴을 흘깃 보았다. 아이는 아무 말도 없었다. "내가 알아서 한다고!" 대차게 말대꾸라도 하면 좀 덜 안쓰러웠을 텐데,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저 고개를 숙인 모습에 마음이 쓰였다. 잠시 후 일어선 아이의 등에 짊어진 가방이 유독 크고 무겁게 보인 건 내 기분 탓일까. 몇 주가 지난 지금도 엄마의 단호한 목소리와 아무 말 없던 아이의 굳은 표정이 계속 생각난다.
2024년 3월, 교육운동단체 글쓰기모임에서 함께 읽을 책으로 작가이자 심리 상담가인 메리 파이퍼의 『나의 글로 세상을 1밀리미터라도 바꿀 수 있다면』을 추천했다. 이 책의 원제는 『세상을 바꾸는 글쓰기 Writing to Change the World』다. 거창한 제목의 원제보다는 국역본의 바뀐 제목이 좀 더 호소력 있게 다가왔다. 아이들을 고통과 죽음으로 내모는 입시지옥에서 글쓰기를 통해 아주 작은 변화라도 꾀하고파 모인 사람들이라면, 이 책에서 참조할 게 많겠다 싶었다.
토론 시간에 책에 대한 평가는 다양했지만, 사실 나는 첫 장을 넘기면서부터 마음에 들었다. “안네 프랑크와 넬슨 만델라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언제 어디서나 글을 쓰는 모든 작가에게(5쪽)”라는 헌사는 동아시아 어느 작은 나라 구석에서 글을 쓰는 나도 작가 공동체로 환대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다음 장, ‘들어가는 글’의 제목 “더 다정하고 공정한 세상을 위하여(7쪽)”도 좋았다. 그렇지,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이런 모습이지. 더 다정하고 공정한 세상을 위한 글쓰기 책이라니, 눈에서 하트가 나온다.
메리 파이퍼는 말한다. “글쓰기는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듯한 세상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단 한 가지(49쪽)”라고. 직접 시위에 나서지 못하더라도, 불매운동을 지휘하지 못하더라도, 위대한 혁명가들처럼 행동하지 못할지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우리가 배우고 믿는 바를, 그 믿음과 어울리지 않는 현실을, 그 과정에서 분열하는 자기 모습을 그저 쓰면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녀는 독자에게 끊임없이 글에는 힘이 있다고. 글로 세상을 이을 수 있다고 용기를 불어넣는다. 그리고 묻는다. 너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쓰겠냐고.
2024년 글쓰기 동료들과 함께 읽을 책 목록을 다시금 들여다본다. 작년보다 우리 교육과 사회의 현실을 분석하고 대안을 찾는 두껍고 진지한 책들이 다수 선정되었다. 혼자서는 읽다가 포기할지도 모르지만, 함께 읽기에 끝까지 읽어내게 되겠지. 토론을 통해서 다양한 시각을 접하고, 서평을 쓰느라 다시 책을 뒤적이면서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깊이 흡수하게 될 것이다. 지식과 관점을 안팎으로 새롭게 하는 1년, 책을 통해 세상을 깊이 알게 되고, 글을 쓰면서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이 될 거라 기대한다.
올해 교육 관련 글을 쓸 때마다 나는 몇 주 전 국숫집에서 보았던 모녀를 생각하며 쓰려고 한다. 무조건 특정 학교에가야한다며 압박하는 부모들과 말없이 고개를 숙이던 그 아이를 기억하고 싶다. 우정보다 경쟁을 장려하는 학교와 사회 시스템에 대해, 그 속에서 시들어가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그 옆에서 어찌할지 모르고 그저 함께 달려가는 학부모들을 대신하여 쓸 것이다. 경쟁교육을 반대하면서도 내 아이가 학교에서 100점을 받아올 때 기어코 “다른 아이들은?”이라고 묻는 나의 이중성을 마주하며, 이 땅에 사는 한 결코 외면할 수 없을 욕망과 그보다 더 앞서 실존하는 불안에 관해 쓸 것이다.
『나의 글로 세상을 1밀리미터라도 바꿀 수 있다면』에서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다. 대학교 졸업반이었던 저자가 암 투병 중인 할머니를 뵈러 갔을 때 이렇게 물었단다. “할머니, 행복하게 사셨어요?” 할머니는 못 들은 척 대답하지 않으셨다. 집요하게 다시 물었을 때 할머니는 언짢은 듯 답하셨단다.
“메리, 난 내 인생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아. 내게 주어진 시간과 재능을 제대로 잘 썼나? 내가 있어서 세상이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었나? 나 자신에게 이렇게 묻지.” (24쪽)
언젠가 생의 마지막이 다가왔을 때 내 시간과 재능을 사용하여 세상에 보탬이 되었다는 확신이 든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생이 있을까? 글을 쓸 때마다 아그네스 할머니의 조언을 마음에 새기고 싶다. 좋은 세상을 바라는 누군가와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고 서로의 삶을 읽어주며. 이것이 올해 글을 쓰는 나의 다짐이자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