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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4시간전

시국일기 (1)

나라 걱정하면서 보낸 열흘 (1)

2024.12.3. (화)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고요한 평일 밤 11시. 이틀 내내 끙끙대던 글을 마무리 짓고 홀가분하게 잠자리에 들려던 차였다. 단톡방마다 수십 개의 메시지가 와 있는 걸 확인했다. ‘지금 이 시각에 무슨 메시지가 이렇게 많이...? 무슨 일이 터졌구나!’ 불길한 마음으로 스크롤을 올리다 “[속보] 비상계엄 선포: 윤 대통령 긴급 담화” 영상을 보았다. 손이 덜덜 떨렸다. 계엄이라고? 그간 민주당에서 계엄 가능성을 제기할 때마다 설마 하며 과도한 우려라 여겼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계엄과 민주화 시위는 다 과거사지 2024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한강 작가가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다 같이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한 게 불과 두 달 전인데, 하필 수상을 일주일 앞두고 과거의 시계를 되돌려놓는 일이 일어나다니!


잠시 뒤 계엄 사령관 이름으로 포고령이 올라왔다. “국회를 포함한 정치활동 금지, 언론·출판 통제, 파업·집회 금지 적시에 이어 이를 위반한 자는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 이제는 손이 아닌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앞으로 대체 어떤 세상이 펼쳐지는 걸까. 읽고 쓰는 걸 업으로 삼은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처단’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에 폐 속으로 공포가 밀려드는 기분이었다. 페이스북에 헌법학자 한인섭 교수님의 짧은 글이 올라왔다. “비상계엄은 전시나 사변 같은 국가 비상사태에서 선포하는 것으로 현재 비상계엄은 요건에 맞지 않으며, 국회가 과반수로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반드시 따라야 한다.” 아, 이게 끝이 아니구나. 희망이 있구나. 국회의원들에게 모든 희망을 걸었다.

2024.12.4. (수)

국회의원들이 속속 국회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출입을 막는 경찰과 거세게 항의하는 시민들, 담을 넘는 국회의원들, 하늘에서 내려오는 헬기와 유리창을 깨고 진입을 시도하는 군인들... 상황이 너무나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제발... 제발... 움직이지도 못한 채 눈은 모니터에 고정하면서 빨리 본회의가 열리기를 빌었다. 밤 12시 반, 국회의원 150명이 본회의장에 착석했고, 곧 개회를 한다고 했다. 새벽 1시, 국회의원 190명 전원 만장일치로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이 의결되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안심하시기를 바랍니다.” 간절히 기다리던 우원식 국회의장의 한마디를 듣고서 잠을 청했다. 여전히 죄어오는 가슴에 손을 얹으며 뒤척이는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엔 영국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여러 메시지가 와 있었다. 너 괜찮냐고, 걱정된다고.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2024.12.6 (목)

계엄 이후 뉴스만 보고 있다. 분노와 참담함이 섞인 슬픔으로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대통령이 지금 대한민국 최대의 리스크라니! 2차 계엄이 또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일상은 멈췄는데 속보는 계속해서 쏟아졌다. 대통령은 모든 책임을 야당에 돌리고 자신은 잘못 한 게 없다며 당당했다. 하야는 없다고 못 박았으니 그렇다면 남는 선택지는 탄핵밖에 없다. 고백하자면 나부터도 탄핵에 미온적이었다. 그간 윤 대통령의 계속되는 실정에 분노했지만 탄핵으로 역풍이 불고 더 큰 국정 혼란이 일어날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건 아니지! 좀처럼 불이 붙지 않던 탄핵 여론에 대통령은 스스로 불을 붙였다.

2024.12.7 (토)

오늘은 첫 번째 탄핵 소추안 표결이 있는 날. 국회의원 2/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했다. 야당 의원들이 전원 찬성을 한다 해도 8표가 모자란단다. 일찌감치 여당은 반대를 당론으로 정해놓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시국에 지금 자기 밥그릇을 챙기고 있다는 사실에 애가 탔다. 난생처음으로 여당 국회의원에게 경고와 항의를 담은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남편은 ‘분명히 핸드폰을 꺼두었을 것’이라고 했지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오후 1시에는 개신교 시국 기도회, 오후 3시에는 촛불집회가 있다고 했다. 마음은 광장으로 달려 나가고 싶은데, 아버님을 뵈러 가기로 약속을 해둔 터라 갈 수가 없다. 날은 또 어찌나 추운지... 매서운 바람과 추위를 뚫고 국회 앞으로 달려 나간 친구들, 동료 시민들에게 미안함과 감사함이 가득했다.

온 신경이 오후 5시 국회에 쏠려 있었다. 대통령 배우자 특검법 투표가 있고 난 뒤 여당 국회의원들은 죄다 일어나서 본회의장을 나가버렸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반대를 할 건 알고 있었지만 투표조차 하지 않고 나가다니 기가 막혔다. 아니, 반대하더라도 투표로 해야지, 우리에게 그렇게 투표해달라고 머리를 조아릴 때는 언제고 엄중한 시국에 자기에게 주어진 투표권을 행사조차 하지 않는 건지 머리끝까지 분노가 차올랐다. 나갔던 국회의원 두 명이 돌아왔지만, 결국 정족수가 모자랐고 의장은 산회를 선포했다. 어쩜 이럴 수가 있을까? 내란을 획책한 대통령의 직무를 하루라도 빨리 정지시켜야 하는데... 분노와 함께 절망감이 마음을 드리웠다.


저녁이 되자 시위에 갔던 친구들의 사진과 영상이 SNS에 속속들이 올라왔다. 강추위에 떨면서 국회 밖을 지켰는데도 간절히 바라는 결과를 얻지 못해 기운이 빠졌을 거라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뉴스를 보고 절망한 나보다 외려 그들은 활기차고 낙관적이었다. 광장에서 한목소리로 외치면서, 신나는 K-pop에 응원봉을 흔들면서, 선결제로 연대의 마음을 전하면서 서로에게서 희망의 에너지를 주고받는 모습이 놀라웠다. 지치지 않고 될 때까지 싸우겠다는 그들을 보면서 다음 토요일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나가야지 다짐했다. 사실 8년 전 박 전 대통령 촛불집회 때 아이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광장에 나가서 촛불을 들지 못한 게 내내 부채감으로 남아있다. 이번엔 꼭 역사의 현장에 참여하고 싶었다.


시대의 명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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