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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Nov 06. 2024

날카로운 첫 회사의 추억

잊을 수 없는 얼굴


대학 졸업을 앞두고 가까스로 취업이 되었다. 수출 전문 의류회사 해외 영업직이었다. 수십 개의 이력서를 냈지만, 최종 면접까지 간 건 이곳이 유일했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대기업은 아니어도 높은 연봉에, 신입사원 공채로 31명을 뽑을 만큼 탄탄한 중견기업이었다. 양재동 신축 원룸에 집을 얻고 삼성역으로 가는 출근 버스 안에서 나는 홀로 성공의 기분을 만끽했다. 서울, 이 도시가 드디어 나를 받아주는구나. 이제 드라마에서 보던 멋진 커리어 우먼이 되는 거야! 학자금도 갚고, 교회 십일조도 내고, 부모님 용돈도 드릴 수 있겠지!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월급이 많다는 건 그만큼 업무 강도가 세다는 말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매일 자정을 넘겨 회사 앞에 줄줄이 기다리고 있던 모범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가 잠깐 자고 다시 출근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새벽 3~4시까지 회식하고도 다음 날 아무렇지 않게 출근하는 선배들을 보고 기가 질렸던 아침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쌓인 피로 풀기에 터무니없이 짧은 주말이 지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월요일, “저 차에 뛰어들면 회사에 안 가도 될까?” 농담인 듯 아닌 듯 던진 동기의 말에 뒷맛이 썼다.


고된 업무보다 괴로운 건 내가 점점 망가지고 있다는 자각이었다. 선배들은 내게 뇌는 집에다 놓고 배에 능구렁이 한 마리 넣고 와야 한다고 했다. 일은 많아도 실적이 좋아 분위기가 나쁘지 않은 다른 팀과 달리 우리 팀은 매번 꼴찌였다. 매출이 안 좋은 팀의 팀장은 팀원들을 쪼기 마련. 짜증과 욕설, 고성이 오가는 분위기에서 나도 점점 ‘아이 씨, 씨X’를 입에 달고 살게 되었다. (그전까지 나는 내가 원래 욕을 안 하는 사람인 줄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Garbage In, Garbage Out)”는 말은 실로 진실이었다.


입사한 지 몇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뻘 되는 50대 후반 협력업체 부장님을 닦달하는 전화를 막 끊은 참이었다. 무심코 책상 앞 거울을 보다가 그날따라 낯선 내 얼굴에 놀랐다. 몇 달 전 맑고 환한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누렇게 뜬 흙빛의 여자가 있었다. 가장 절망적이었던 건 눈빛이었다. 아무 기대감이 없는 텅 빈 눈빛. 한참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나에게 물었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버티면 좋은 날이 올까?’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난다고 나아지지 않으리란 걸. 거울 속 나와 대면한 날, 결국 사표를 냈다.


어렵게 들어간 첫 회사를 제 발로 나온 뒤, 나는 한동안 실패감에 시달렸다. 꿈꿨던 화려한 싱글, 강남으로 출근하는 직장인은 결국 내 것이 아니었다는 걸 인정하기 힘들었다.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다가도, 첫 직장은 아무리 힘들어도 1년은 채우고 나와야 한다는데, 금방 그만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좀 더 버텼어야 했나? 남들처럼 체력이 좋았다면 견딜 수 있었을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당장 월세는...? 나약한 내가 부끄럽고, 사는 게 막막해서 매일 눈물이 났다. 살면서 경험한 첫 번째 실패였다.


월세를 낮춰 이사를 했다. 이제는 돈보다도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목소리를 따라 살기로 했다. 기독교 단체 활동가로 3년 동안 일하고, 교회 내 여성문제에 관심이 생겨 여성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졸업 후 비정규직 여성 단체 활동가와 프리랜서 연구자로 일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첫 회사의 월급은 다시는 받지 못했다. 연봉이 곧 가치인 세상에서 통장에 찍힌 숫자로 보면 점점 내려가는 삶이었다. 생활은 남루했으나 적어도 눈빛 하나는 지킬 수 있었다.


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자주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본다. 찬찬히 얼굴을 들여다보며 영혼의 안색도 함께 살핀다. 잘 지내고 있는지, 견딜 만한지, 이것이 너의 고유한 빛과 색을 지키는 일인지, 잃게 만드는 일인지 묻는다. 오래 나의 나약함을 원망했지만, 이제는 내 탓이 아니란 걸 안다. 같이 입사했던 친구가 말했다. 31명의 동기들 역시 거의 다 빠져나갔다고, 너는 ‘자기 이해 지능’이 높아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던 거라고. 아팠지만 그 경험이 있었기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혹 돌아갈 수 있다면 몇 날 며칠 방에 틀어박혀 울고 있던 과거의 나에게 잘 결정했다고, 너에게는 새롭게 펼쳐질 많은 날이 있다고, 용기 내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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