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의대반 방지법 학부모 토론문 첨부
난생 처음 국회에 다녀왔습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X 강경숙 의원실(조국혁신당)에서 주최하는 '초등 의대반 방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 토론회' 토론자로 말이에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이 된지 오래 되었지만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건 작년 초 노워리 기자단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였죠.
늘 우리 사회 문제에 관심은 갖고 있지만 아이들이 어리다는 핑계로 적극적인 참여를 하지 못할 때가 많았는데, 영국에서 한국으로 귀국한 후 우리 아이들이 한국 학교에 입학하면서 지금 나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가 뭘까 고민하게 되었어요. 당장 아이들이 맞닥뜨린 교육문제라는 생각이 들었고, 단체에서 책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쓰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뒤엉켜 방학을 보내던 중, 사걱세 노워리 기자단 담당 선생님께 섭외 전화가 왔어요. 초등 의대반 방지법 토론회에 나가서 이야기를 해줄 학부모가 필요하다고요.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하겠다고 했습니다. 신뢰하는 선생님이 제가 필요하다고 하시는데 해야지요!
얼결에 먼저 수락을 해놓고 고민에 빠졌어요. 그런 과도한 선행학습 이야기는 뉴스에서나 들어봤지 제가 아는 게 없더라고요. 교과 학원 하나 보내지 않는 내가 나가서 할 말이 있을까...?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먼저 자료집을 꼼꼼히 읽고, 관련 책, 신문 기사,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며 내용을 숙지했어요. 그렇게 하다보니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게 되었고, 제 안에 할 말이 차오르더라고요.
말 주변이 좋거나 순발력이 있는 편이 아니라서 토론문을 잘 쓰자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하필 토론문 제출 기간이 여름 휴가 기간이라 가족들과 여행을 하면서도 틈틈히 자료를 읽거나 생각을 정리해야 했어요. 마지막으로 토론문을 제출하는 날엔 홀로 새벽을 밝혀야했죠.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해 쓴 토론문을 들고 국회에 가서 발언을 했습니다. 무척 떨렸지만 많은 분들의 기도와 응원으로, 또 우황청심환의 힘으로 또박또박 할 말을 잘 해낼 수 있었어요. 저 뿐 아니라 다른 분들도 정말 열심히 준비하신 덕에 형식적인 토론회가 아니라 저도 많이 배울 수 있는 자리여서 특별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극심한 고통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며 손 놓고 지켜보는 것, 우리 그만 하기로 해요. 여러가지로 참여하실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1) 초등의대반 방지법 제정 3만 서명 국민운동에 서명으로 참여해주세요.
2)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후원회원으로 연대해주세요.
3) 발제문과 토론문을 읽고 댓글로 지지해주세요.
4) 그동안 알뜰살뜰 모은 해피빈 콩을 기부해주세요.
갈 길이 멀고 아득하지만 우리, 냉소로 끝나지 말아요. 저는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을 믿습니다.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참여하는 작은 변화가 언젠가 사회 변화의 큰 물결로 다가올 거라 확신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토론문 전문>
들어가며
‘전국 초등의대반 선행교육 운영 실태와 규제 방안’ 발제문을 잘 읽었습니다. 저는 00시에 살고 있고, 초등학교 6학년 4학년 학부모입니다. 아직 교과 학원은 보내지 않고, 레벨 테스트를 보게 한 적도, 선행학습을 시켜본 적도 없습니다. 아직은 어린아이들이 마음껏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탐구하는 시간과 기회를 주고 싶어서 문제집은 집에서 풀고, 방과 후와 예체능 위주로 학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 저에게 초등의대반은 대치동이나 목동 등 일부 학군지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놀랐습니다.
발제문을 보니 “초등학교 5~6학년 아이가 고등학교 1~2학년 진도를 나가고, 중학교 과정에 가면 여러 번 반복한다”고 합니다. 무려 “정상적인 학교 교육 과정의 14배의 속도”입니다. 1-2년 정도 예습이면 모를까 7년이라니! 학교 교육 과정은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추어 세심하게 계획되었을 텐데 무려 14배나 빠른 속도라니 지나쳐도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에는 연령이 더 내려가 초등학교 저학년, 유치원 부모들까지 의대반 문의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인터넷 육아 카페에서는“이러다 의대 태교반까지 생기겠다”며 자조적인 농담을 주고받는 것이 현실입니다.
초등의대반 규제가 필요한 이유
저는 초등의대반이 ‘비교육적’이며 ‘교육생태계 파괴종’이라는 발제자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몇 가지 첨언을 해보려고 합니다.
첫째, 초등의대반은 아이들의 발달에 해롭습니다.
올해 읽은 책 중에 『도둑맞은 집중력』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 요한 하리는 뇌 과학자의 입을 빌려 말합니다. “우리 뇌는 동시에 한두 개의 생각밖에 하지 못한다. 우리는 매우 단순하다. 우리의 인지능력은 매우 제한적이다. 그것은 뇌의 근본적인 구조 때문이며, 이 구조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59쪽)” 멀티 태스킹의 위험을 경고하면서 한 말입니다. 성인의 뇌가 단순하고 능력이 제한적이라면 아직 성장 중인 어린이의 뇌는 어떻겠습니까?
저는 과도한 사교육이 아동의 뇌 발달을 저해한다는 전문가 의견에 동의합니다. 주변 중·고등학교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런 고강도의 선행학습을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유지하는 것은 소수의 아이를 제외하고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일찍 좌절감을 맛보고, 낙오자 더 나아가서는 패배자라는 생각으로 학습 자체를 놓아버리는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 뇌의 특정 부분만 과도하게 자극하기보다 몸과 마음이 골고루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랍니다. 경쟁보다 협력할 수 있는, 때로는 나보다 뒤처진 친구를 보듬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적기에 교육을 받아도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 나라에서 살고 싶습니다. 아이들의 여가권, 건강권,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초등의대반을 규제할 수 있는 법률이 조속히 제정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초등의대반은 학부모의 불안을 가중합니다.
한국 리서치에서 전국 고등학생 학부모 14,961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자녀가 특목·자사고에 다니는 집 학부모, 컨설팅 경험이 있는 학부모, 대입 준비를 일찍 시킨 학부모, 강남 3구에 사는 학부모의 불안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높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초등의대반이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수강 연령도 낮아진다면 학부모의 불안감 역시 가중될 것입니다.
초등의대반에 대해 주위 학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극명하게 두 가지 의견으로 갈렸습니다. “아이들이 불쌍하다, 망국병이다, 미쳤다.”라고 하면서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것이 아니냐, 과거 과외 금지가 생각난다, 시키든 안 시키든 개인의 선택이지 왜 국가가 개입하느냐.”등 반대 의견이 있었습니다. 워낙 예민한 사안인 만큼 의견도 첨예하게 갈렸고, 중간은 없었습니다.
‘초등의대반방지법’을 찬성하는 저는 규제가 언제나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다는 지적도 타당합니다. 대한민국 학부모로서 “중산층 학부모가 교육지옥동맹의 한 부분”(김종영, 『서울대 10개 만들기』, 26쪽)이라는 지적을 뼈아프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다는 분들에게 초등의대반이라는 공급이 또 다른 수요를 창출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꼭 드리고 싶습니다. 일종의 선도 효과입니다. 사교육은 학부모의 불안을 먹고 자랍니다.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초등의대반을 지금 규제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이것이 일부 학부모들의 욕심이 아니라 보편적인 선택이 된다면 저 같은 학부모들도 흔들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바로잡아야 합니다.
셋째, 초등의대반은 교육격차와 불평등을 심화시킵니다.
발제문에 의하면 “초등의대반 레벨 테스트를 통과하려면 고등학교 1학년 수학까지 선행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초등의대반에 아이를 보낼 수 있는 사람들은 최소 10년 동안 고가의 학원비를 결제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춘 사람들에게 한정됩니다. 지역적으로는 대치동으로 대표되는 강남 3구의 지역민에게 유리하겠지요. 솔직히 저희 집 경제 사정으로는 보내기 어렵습니다.
“초등의대반과 같은 과도한 선행 교육 상품은 개인 차원에서는 막대한 사교육비를 지출했지만 원하는 의대에 진학하지 못하는 다수가 양산되고, 사회적으로는 불평등이라는 난제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발제문에 동감하며 이 문장에서 생략된 부분을 부연해보겠습니다.
처음에 초등의대반 관련 자료와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니 먼저 어른들의 욕심으로 극심한 학업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아이들의 고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다 그다음에는 이러한 고민조차 사치인 아이들의 상황을 다룬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도 곰팡이가 난 집, 누수가 빈번한 집에 사는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부모님이 정시와 수시의 차이를 모른다”고 토로한 아이들은 이미 매일 자신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벽을 마주하는 듯 보였습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대학에 합격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선행교육규제법 개정을 위하여 과도한 선행교육을 대표하는 상품으로서 초등의대반을 강조하는 것은 타당합니다. 그러나 이 캠페인으로 대치동을 비롯한 강남에 온갖 스포트라이트가 쏠릴 때 그렇지 못한 아이들, 특히 저소득층 아이들이 소외되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이 법안이 이들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소외시키는 방향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이들을 포함한 모든 아이를 위한 법이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이 땅의 모든 아이와 어른이 의대 합격 혹은 소위 SKY라는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한 아무리 과정을 평등하게 개선한다고 해도 궁극적인 불평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앞서 언급한 책 『서울대 10개 만들기』에서 저자 김종영 교수는 다음과 같이 단언합니다. “다원적인 가치와 다원적인 기회구조를 가진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고요. “독점이 부정의의 핵심이며, 독점을 해체하는 것이 정의를 세우는 것”이라고요. (19쪽) 지금 만들고자 하는 법안이 그 길로 가는데 하나의 주춧돌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나가며
며칠 전 한 공부 예능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중학교 2학년 학생을 보았습니다. “수학 상·하는 6바퀴 정도 선행했다. 수1, 수2도 3바퀴 정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고등학교 수학 공부를 시작했다.”는 말에 스튜디오는 충격과 부러움이 섞인 탄식으로 가득했습니다. 방송을 보면서 저는 이런 특수 사례를 전 국민이 보는 TV에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방영한다는 사실에 다시금 착잡해졌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욕망을 반영하고 또 추동합니다. 선행학습이 기본값인 사회에서 오늘 이 발제와 토론이 과연 시민들의 반향을 끌어낼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오늘 공동주최자인 국회 교육위 강경숙 의원실의 용기와 결단에 힘을 보태드리고 싶습니다. 아이들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지금은 뭐라도 해야 할 때이고, 작은 지혜라도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공교육에서 선행교육규제법이 학교 교과 운영의 시험 출제 및 각종 입학시험에서 선행교육을 규제할 근거가 되었고, 결국 공교육의 선행교육을 억제하는 성과로 이어졌듯 이제는 이 법을 개정하여 사교육에서 과도한 선행학습을 규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오늘 이 자리가 그 길로 가는 시작이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토론회 보도 및 자료집 링크
https://m.blog.naver.com/noworry21/223547934419
초등 의대반 방지법 서명 바로 가기
https://noworry.kr/stoppre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