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nji Nov 24. 2023

출근하지 않는 삶 : 두려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누구에게나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두려움의 이미지가 있다. 나에게 그것은 살이 에이도록 추운 겨울날 새벽 구부러진 허리로 폐지가 한가득 들어있는 커다란 수레바퀴를 힘겹게 끌며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내딛는 할머니의 모습이다.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 안정적인 회사를 걷어차고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을 향해 걸어갔을 때, 신나는 처음의 몇 걸음을 걸은 후, 피곤해지기 시작하는 발걸음을 이끌고 결국 도착하는 곳은, 노년이 되어 추운 겨울날 폐지를 주우며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삶이 아닐까. 삶의 갈림길에서 조금 더 위험하고, 덜 일반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가슴의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내 머리는 늘 그 이미지를 보여주며 질문했다. 지금 내 선택이 초래할 수 있는 이런 모습의 미래 역시 기꺼이 받아들일 자신이 있냐고.




 2009년 첫 출근을 한 회사는 강남역에 있었고, 우리 집은 서울에서도 동쪽 끄트머리인 성북구 장위동이었다. 회사는 다른 회사보다 한 시간 이른 아침 8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는 정책을 가지고 있었다. 지하철을 갈아타는 시간과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지하철 몇 대를 보내야 하는 상황까지 고려하면 적어도 1시간 30분 전에는 출발해야 회사에 지각하지 않고 도착할 수 있었다. 영하로 내려간 추운 겨울날 몇 걸음만 걸어도 발이 꽁꽁 얼 것 뾰족한 구두를 신고 아직 채 해가 뜨지 않은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걸으면, 언제나 리어카를 끌며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보다 더 이른 시간에 이미 동네를 한 바퀴 도셨는지 리어카에는 폐지와 상자들이 수북이 쌓여있었고, 어르신들의 등은 언제가 굽이었었다. 그분들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늘 졸립고, 피곤하고, 추웠고, 지각할까봐 종종 걸음으로 길을 걷고 있었고, 세심하게 이것저것 관찰할 여유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내 감정과 고통을 그대로 그 어르신들에게 투사했다. 젊은 나도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데,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얼마나 더 춥고 괴로우실까. 노년에 아침 일찍 동네를 돌아다니며 폐지를 줍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도닥였다.




 처음으로 진지하게 퇴사를 고려하며,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인사팀 선배를 찾았다. 평소 다정했던 선배는 유난히 차갑고 냉정하게 이야기했다.

"정말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삼성 퇴사하고 잘 된 사람을 한 명도 못 봤어."

선배의 한마디는 논리적 개연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이 추운 새벽 아침 폐지를 줍고 계신 어르신들의 이미지로 연결된다. 아무것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신입에게 이렇게 두둑한 월급과 성과급을 주는 따듯한 회사의 품을 떠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고 패기 있게 회사를 관뒀는데,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뭔지도 찾지 못하고, 지금 보다 월급을 더 많이 주는 곳도 찾지 못하고, 그래서 결국 몇십 년 후에 나이 들어 추운 새벽마다 폐지를 주워 생계를 꾸려야 하는 빈곤 노인이 되면 어떻게 하지?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얼마나 원망할까?

두려움의 이미지는 모든 논리적 비약을 허용하며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게 만든다. 두려움의 이미지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아주 깐깐하고 이성적으로 상황을 하나하나 분별해 보는 것이다. 인사팀 선배는 퇴사하고 잘 된 사람은 한 명도 못 봤다고 이야기했지만, 그건 다분히 선배의 기준에서 잘되고 못됨의 판단일 뿐이다. 선배도 나보다 고작 몇 년 선배일 뿐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 사람이 잘 되고 못 되었는지 판단하기에는 표본이 너무 작다. 서점만 가더라도 퇴사하고 더 잘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도 없이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인사팀의 고과 기준 중 하나는 사람들의 퇴사율이다. 그러니 선배는 자신을 위해서라도 내가 퇴사하는 것을 막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수 있다. 게다가 선배는 내가 회사에서 잘 자리 잡을 수 있게끔 이런저런 도움도 많이 주었으니 더욱더 내가 퇴사하는 걸 서운해했을 수 있고, 그런 마음이 시나브로 말에 반영되었을 수 있다.




물론 퇴사를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하면 돈은 더 적게 벌 수도 있고, 방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안락하고 편안한 이곳에서는 배울 수 없는 수많은 야생의 기술들을 배울 것이다. 또다시 대기업에 취업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가 배운 야생의 기술을 분명 써먹을 수 있는 곳이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많은 월급을 받지는 못하겠지만, 꼬박꼬박 저축하면 노후에 폐지를 주울 정도의 처지는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노후에 정말 돈이 없다면 한국보다 물가가 훨씬 저렴한 동남아에서 사는 방법도 있다. 적어도 그곳은 춥지는 않을 것이고, 한국보다 물가가 훨씬 저렴하니 생각보다 안락하게 노후를 보낼 수도 있다. 어쩌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잘 될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곳에서 돈을 많이 벌 수도 있다. 지금처럼 매일 고통스럽게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발견할 수도 있다. 어쩌면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일을 하며 살게 될 수도 있고, 노트북만 가지고 어디든 여행하며 살 수도 있다.




퇴사 후 내가 잘될지 안 될지는 사실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미리 예측할 수도 없다. 그건 오직 내가 삶을 통해서 살아내고 증명할 수밖에는 없는 거니까. 정말 중요한 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혹시나 일어날지 모르는 두려운 미래가 걱정되어서 불행하지만,  안락한 지금의 삶을 선택한다면 나는 평생 내가 살아 볼 수 있었던 다른 삶을 살아보지 못할 것이다. 두려움의 이미지는 우리의 생존본능을 자극하고,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우리 영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을 마비시킨다. 삶의 목적은 두려움의 이미지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 수직 하강해 버린다. 생존을 위한 삶은 어느 면에서는 필연적이지만, 삶의 목적이 생존 그 자체가 되어버릴 때 우리는 자신이 살아낼 수 있었던 수많은 가능성들의 문을 스스로 닫아버린다.




안락했지만 불행했던 첫 회사를 퇴사했다. 그 후 나는 두 번의 창업을 하고, 두 개의 회사를 다녔다. 첫 회사에서 받던 월급에 한참 못 미치는 돈을 벌 때도 있었고, 첫 회사를 수십 년 다녀야 벌 수 있는 큰 돈을 벌 때도 있었지만, 그 모든 과정을 통해 내가 배운 한 가지는 두려움에 이끄는 선택이 아닌, 조금 위험해 보여도 내 가슴이 이끌리는 선택을 했을 때 내가 삶에서 정말 배워야 하는 것들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온도가 영하로 내려간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 여유롭게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더 이상 추운 겨울날 더 이상 발이 얼어붙을 것 같은 구두를 신고, 졸음과 추위에 싸우며 출근하지 않는다. 그때 두려움이 주는 이미지에 마비되어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는 삶을 선택했다면, 아마도 나는 오늘도 추위에 동동 떨며 피곤과 졸리움에 반쯤 절여진 채 출근하며 퇴사하고 싶다고 되뇌이다 동네 어귀에서 마주치는 폐지 줍는 어르신들을 보며,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미래의 큰 불행을 막기 위해 현재의 작은 불행을 감내하는 것이라 스스로를 다독이며 위안했을지도 모른다.



친구와 서로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의 이미지에 관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나는 여전히 이겨내지 못한 희미한 두려움의 흔적에 대해 이야기 한다.

"새벽부터 나가서 구부정한 허리로 리어카를 끌며 폐지를 줍고 계신 어르신들을 보면, 나는 여전히 희미한 두려움의 흔적을 느껴. 열심히 일해서 돈도 제법 모았고, 제테크도 어느 정도 할 줄 아니까, 현실적으로는 내가 빈곤한 노년층이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아는데, 여전히 내 무의식의 한편에 그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아."

수화기 너머 친구는 놀랍고 재밌다는 듯 이야기한다.

"정말? 너무 신기하다. 그런데, 우리 할머니는 아침 일찍 일어나는데 할 일도 딱히 없고, 심심하니까 운동 겸 동네 다니면서 폐지 주우실 때 있어. 우리 할머니는 그렇게 폐지를 주워야 할 정도로 가난하지 않으셔서 우리 엄마도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그렇게 하는 게 재밌으시다고 계속하신다. 그러니까 은지가 만났던 그 폐지 줍는 어르신들이 모두 다 너무 힘들고 불행한 마음으로 폐지를 줍고 계시지는 않았을 수 있어. 원래 노인분들은 아침에 엄청 일찍 일어나시잖아."



동네 어귀에서 폐지를 줍고 계신 어르신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투사했던 건 결국 내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었다. 당시의 내가 너무 힘들고, 춥고, 졸립고, 괴로우니까 당연히 그분들도 나와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우리나라의 노년 빈곤율은 매우 높고, 생계를 위해 힘들게 폐지를 줍고 계신 어르신들이 계신다는 현실을 외면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언제나 진실은 내가 투사한 두려움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 안에는 여전히 다양한 두려움의 이미지들이 있고, 때때로 이 이미지는 나를 생존모드로 끌어당긴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침마다 건강을 위해 폐지를 줍는 친구의 할머니를 떠올려 본다. 두려움은 언제나 수많은 논리적 비약을 거쳐 최악의 상황으로 나를 끌어당기지만, 내 무의식이 마음대로 만들어 낸 그 이미지에 내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맡기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골절 일기, 붕대를 푸르고 약을 먹지 않기로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