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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 Dec 06. 2023

카르마와 책임의식,
희생자가 아닌 주인으로 살아가기.


요즘은 카르마와 책임의식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포스트 모더니즘과 구조주의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내 삶에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의 원인을 사회의 구조, 부조리와 연결해서 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책임을 나 자신이 아닌 다른 것으로 돌리면 우리는 잠시나마 편안해진다. 



내 번아웃의 원인은 모두 자본주의 탓이야. 

내가 집중할 수 없는 이유는 거대 소셜미디어 회사 탓이야. 

내 형편이 더 나아지지 못한 이유는 정부 정책 때문이야.

내가 살이 찐 이유는 가공식품 회사들이 너무 많은 가공식품을 선보이기 때문이야. 

등등등...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정말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의 원인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 정부, 시스템, 회사 때문인가?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의식 수준에 따라 같은 상황을 전혀 다르게 바라 본다고 이야기한다. 

의식수준을 나타내는 0에서 1000까지의 수치 중 분기점은 바로 200이다. 0에 가까운 20은 수치심의 수준이고, 1000은 깨달음의 수준이다. 


그리고 분기점이 되는 200은 바로 용기의 수준이다.


200미만에서 우리는 희생자가 되기를 자처한다. 

선동이나 구호가 가장 잘 먹히는 것도 이 영역대이다. 

에너지는 비슷한 에너지를 끌어당기는데, 200미만에서 우리는 부정적인 끌개장의 영향을 받는다. 

내 탓이 아니라 네 탓을 하기 좋은 에너지장이 바로 200미만의 에너지장이다. 



내가 지성적이고 이성적이라고 생각했던 구조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철학이 

사실은 자기 인생의 책임을 다른 누군가에게 돌리고, 

희생자를 만들어 버리는 희생자 마인드의 좋은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호킨스 박사의 다른 책 <진실 대 거짓>에 의하면 

푸코나 들뢰즈, 샤르트르의 에너지장 수준은 190~200이라고 한다. 



대학시절 영성에 빠져있을 때 

프랑스 철학자들을 보며 왠지 모르게 염세적이고 부정적인 에너지를 느꼈는데, 

그 때 내 감이 맞는건가? 

그들은 정말 존재를 경험하지도 못하고, 

오로지 피해자 마인드에 사로잡혀 그 두꺼운 저작들을 만들어 낸 것일까?  

생각해보면 나도 이들의 철학에 빠져있을 때, 

거대한 구조의 희생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묘한 쾌감(?)을 느꼈던 것 같다. ㅋㅋㅋㅋ 





문제는 이렇게 외부의 어떤 적을 만들어서 책임을 돌리는 방식은, 

역설적으로 개인의 힘을 약하게 만들고, 개인을 희생자로 만들어 버린다는 거다. 

사실 내 잘못이 아니니까, 나는 희생자야, 그들이 바꿔주기 전에는 내가 바뀔 수 없어라고, 단정해버린다. 

진실은, 세상은 나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의 카르마의 반영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내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설사 그것이 기억이 나지 않는 지난생의 업이라 할지라도 결국 나의 업의 반영인 것이고, 그것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한다면 배울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된다. 

그러니까, 이 카르마의 사실을 끊기 위해서 중요한 건 삶에 대한 온전한 책임감과 의지이다. 

내 삶에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온전히 나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고, 경험하는 것, 

그것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배우는 것, 

더이상 카르마를 쌓지 않도록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 


이 관점으로 삶을 바라보면, 

삶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 차있다는 것을, 

나라는 인간은 구조의 희생양이 아니라 나라는 삶의 주인이자 곧 우주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어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봤는데, 

이 영화는 정말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삶이 주는 것들을 수용하고 자기 인생의 책임을 온전히 질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너무나 잘 보여준다. 

포레스트 검프의 삶, 그의 엄마의 삶, 제니의 삶, 댄 테일러 중위의 삶을 통해 보여주는 

삶의 마법과 온전함. 



내 삶에서 책임을 온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던 몇몇 것들에 대해서도 

지난 며칠간 많이 생각하며 묵상했다. 

내가 책임을 인정하기 싫어서 어떻게 도망다니고, 

온갖 철학과 부조리와 구조를 공부하며 

책임에서 벗어났는지가 명확히 보였다. 



이제 도망가지 않고, 희생자 놀이를 하지 않고,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책임지고 받아들이는 삶을 살아야지. 

그것이 삶을 온전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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