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열심히 생산적으로 살지 않으면 불안하고, 왠지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고, 하루를 낭비한 것 같다는 생각을 기억도 안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하며 살아왔다.
그렇다고 매일매일 갓생살기를 실천한 건 절대 아니라서 하루가 끝날때면 어딘가 모르게 아쉽고 찝찝하고 못마땅한 적이 많다. 그래서 일을 열심히 했던 시절에는 이정도면 밥값을 했다는 효용감이 느껴질 때까지 야근을 하고, 샌프란에서 날라온 메일에 굳이 새벽에 답장을 하며 '생산적인 시간'을 보냈다고 뿌듯해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행동들이 하나둘 쌓여 번아웃을 만들었던 것 같다.
몇 주 전에 하루종일 삼시세끼 정성스레 잘 챙겨먹는거 빼고는 아무것도 안한 날이 있었다. 아무 것도 안했다기 보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적'이라고 일컬어 지는 그 어느 행위도 하지 않은 날이었다. 메일을 보내지도, 일을 하지도, 책을 읽고 공부를 하지도 않았다. 대신 텃밭에서 풀을 뜯어 식사를 아주 정성껏 차려 먹고, 빨래를 하고, 빨래를 개고, 집을 청소하고, 차를 내려 마셨다. 예전의 나였다면 책이라도 읽어야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며 불안해 했을 텐데 그 날 문득 '와 오늘 진짜 충만한 날이다.' 라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내가 그래도 좀 달라졌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안하고, 아무것도 아니고, 그냥 숨만 쉬는 나도 괜찮다고 받아들여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이제야 조금씩 내 안에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는 감각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국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이유, 생산적이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의식주를 위한 돈을 벌기 위해, 내가 하는 일을 통해 사회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기 위해, 노후를 위한 저축을 하기 위해, 나의 쓸모를 증명받고 그를 통해 존재가치를 느끼기 위해서 와 같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특히 일을 통해 사회에 기여를 해야한다는 강박이 정말 컸다. 그래야 내가 가치있는 인간이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과연 일을 통해서만 사회에 좋은 기여를 할 수 있는 것인가?
모든 일에는 +/- 가 있다. 분명 일을 통해 내가 기여하는 바가 있을테지만, 일을 하므로 사회에 - 로 영향을 미치는 일도 있기 마련이다. 이전 '퍼펙트 데이즈' 포스팅에도 썻지만 거의 유일하게 사회에 - 영향을 미치지 않는 직업은 우리가 흔히 노가다라고 무시했던 단순한 직업들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오히려 우리가 선망하는 직업들은 그 일을 행하는 개개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사회 전체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그 개인 역시, 사회 시스템의 일부로 기능하는 것이고 사회적 규율 안에서 작동할 수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열심히 마케팅을 하는 사람, 사회적으로 창조성을 드넓히는 역할을 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의 욕망을 자극하거나 없는 욕망을 만들어 내야 한다. 개발자도 전에 없는 프로덕트를 만들어냄으로 사람들의 삶을 더 편리하게 만들 수 있지만, 동시에 더 많은 유저의 시간을 점유하고 주의력을 빼앗아야 한다는 프로덕트의 목적에 충실하다보면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좋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게 될 수 있다. 조직이 관료화 될 수록 관료 집단은 자기들의 존재이유를 끊임없이 증명해 내야 하므로 그야말로 '일을 위한 일'을 만들며 서로의 에너지를 착취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쉽다.
그러니까 일을 많이 할 수록 사회에 더 많이 기여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사회라는 거대한 구조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더 열심히 개미처럼 일을 해야 한다. 일개미는 자기가 왜 일하는지 모르고 일한다. DNA에 그렇게 그로그래밍이 되어 있는 거다. 인간은 개미보다 월등하게 우월하고 '생각'할 수 있는 존재라 자신을 여길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일개미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삶을 살아간다. 사회가 합의한 '정상의 범주'에 드는 것이 마치 삶의 목표인 양 주입받고 의심하지 않고 달려나간다. 그렇게 열심히 일한 날에는 생산적으로 살았다며 스스로를 칭찬한다.
여전히 나의 피부에, 창자에는 일개미의 DNA 가 스며들어 있다. 여전히 문득 '이렇게 설렁설렁 하다가 뒤처지면 어떻게해?' 이런 두려움의 말이 불쑥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런데 골똘히 생각해보면 이 두려움의 말은 아주 잘 포장된 '일개미로 돌아가'라는 말일 뿐이다. 비교와 두려움을 조장해서 사회가 주입하는 '정상'을 따르게 만드는 말들.
나는 오늘도 설렁설렁 대충대충 살거다. 먹고 싶을 때 밥 먹고, 눕고 싶을 때 눕고, 영화를 보고 싶으면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싶으면 책을 읽을 거다. 꼭 필요한 일만 최소한으로 할 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가장 비효율적인 하루를 살고도 충만하다고 느낄거다. 나의 충만함을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나 밖에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