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들의 여행
우리 가족의 MBTI는 각각 ISTP, INFP, INTP 이다. 내향형(I)과 인식형(P)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이 세 명이 함께 여행을 계획하고 실행한다는 건 나무늘보 세 마리가 갑자기 나무에서 내려와 달리기를 하는 것과 같다. I와 P들은 보통 약속이나 활동을 선호하지 않는다. 특히 NP들은 여행은 ‘귀찮아서’ 하지 않고 그 대신 머릿속으로 가장 이상적인 여행에 대한 꿈에 코를 처박고 방구석 여행을 떠나는 편이다. 멋진 오픈카를 타고 이탈리아 소도시 어느 해안도로를 달린다든가, 미국 어느 절벽 위 호화로운 대저택에서 파티를 한다든가 하는 공상을 침대 위에서 끝없이 펼친다. 그 꿈은 체력도 돈도 감정소모도 필요하지 않고 시간도 현저히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원하는 대로 여행을 디자인하고 고치고 지워버릴 수 있다. 하지만 잇팁은 귀찮은 거 싫어해서 누워만 있나 싶다가도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여행을 떠나거나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한다. 침대 위 방구석 여행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그게 ‘하고 싶었던 일’일 때는 충동적으로 보일 정도로 실행력이 빠르다.
점점 거리두기도 해제되고 해외여행의 문도 다시 열리기 시작하므로 참았던 외국을 나가야 할 시기라고 판단한 잇팁. 어디를 갈지 고민한다. 스위스, 이탈리아, 스페인이 최종 후보에 올랐다. 잇팁은 그 중에 스페인이 가장 끌린다. 가우디, 타파스, 플라멩고, 알함브라 궁전, 론다 절벽의 이미지의 스페인이 강력하게 다른 두 나라를 압도한다. 인프피와 인팁은 큰 저항없이 설득되었다. 사실 그 둘은 스페인에 대한 이미지가 별로 없다. 알아보기 귀찮고, 다른 여행지를 고르는 일은 더 귀찮고, 그래도 유럽여행은 가보고 싶으므로 별말없이 잇팁의 결정을 따른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스페인 여행이 결정되었다.
-12월-
“우리 숙소 알아봐야 되지 않아?”
“응, 해야지. 바쁜 거 좀 끝나고.”
-1월 초-
“우리 여행 계획은 언제 세우지?”
“자기가 좀 알아봐.”
“응…(안 알아봄)”
-1월 말-
“우리, 근데 가긴 가는 거야?”
“….어떻게든 되겠지.”
-2월 3일 출발 당일 공항에서-
“아, 드디어 가네.”
“응 진짜 가긴 가네.”
“뭐할지는 가서 생각하자.”
우리는 이동루트와 어느 도시에서 몇 박 묵을지와, 도착지 바로셀로나에서의 5박 숙소만 예약해두고, 구체적인 일정계획도 없이 스페인으로 무작정 떠났다. 맛집, 숙소, 지리 정보도 제대로 수집 정리되지 않은 채였다. 그런데 불안하거나 걱정되지는 않았다. 중화권과 아시아권이 대부분이었지만 외국으로 여행 다닌 잇팁의 ‘짬바(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믿는 구석’이었다. 가이드북 한 권과 블로거와 블로거들을 보험으로 삼으니 든든했다. ‘기차를 놓쳐야 천사를 만나고’,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에.
우리의 여행이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없으니 더 즐겁지 아니한가. 트리플 P들의 여행, 지금 떠납니다.
전체 일정 : 바르셀로나 5박-(국내항공)-그라나다 2박-(렌터카)-네르하-(렌터카)-론다1박-(렌터카)-세비야 3박-(버스로 국경 이동)-리스본 2박-포르투 3박-out
[세 여행자]
나-잇팁/얼굴 캐릭터 그림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중인데 과감히 3주간 문을 닫고 여행을 택했다. 출장으로 스위스에 다녀온 적이 있지만 유럽권 여행은 처음이다. 유럽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환상을 가지고 있다. 셋 중에서는 그나마 현실감각이 있고 결정을 빨리 하는 편이다. 오래 고민하고 깊게 생각하는 걸 싫어하고 단순하고 빠르게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여행(생존) 영어가 가능하다.
여행력 : 여행(생존) 영어 가능, 눈치 빠름, 방향감각과 길눈이 있음
약점: 저질체력, 아침잠, 식탐
피도-인프피/얼굴캐릭터 그림
-퇴사를 염두에 두고 무려 12일 연차를 내버린 직장인. 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를 겸하고 있다. 여행을 많이 다녀보진 않았고 유럽 여행도 처음이다. 뒤늦게 살아난 여행세포 덕에 여행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여행력 : 인터넷 검색 잘함, 여행 카드(이름 확인) 미리 준비, 경제력, 감이 좋음
약점 : 길치, 영어 안 됨
YG-인팁/얼굴캐릭터 그림
-대한민국의 중2.
여행력 : 마이웨이
약점 : 저질체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