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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환 Feb 27. 2024

빌라 데 그라시아

바르셀로나의 첫번째 숙소는 호스텔이었다. 3가족이 구할 수 있는 숙소는 매우 한정적이다. 2명이면 더 저렴하고 종류도 다양한데, 3명이 되면서 숙소비가 2배로 뛰거나 더블베드룸에 엑스트라베드가 하나 추가되는 식이다. 중2 사춘기 아들과 여행하려니 가급적 방이 구분되어 있고, 침대가 충분한 레지던스나 컨디션이 괜찮은 좋은 호텔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여행 가기 직전에 숙소 예약을 시작해서 남아있는 좋은 숙소가 별로 없었단 게 문제. 


첫번째 숙소는 시내 근처의 호스텔로 잡았다. 오래된 건물의 2층이었고, 방은 좁았지만 방에서 창문으로 나가면 넓은 테라스 공간을 쓸 수 있어서 처음에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체크인할 때 직원도 친절해서 바르셀로나 지도 설명과 여러 식당도 추천받았다. 그러나 두번째 밤에 화장실에 갔다가, 바 선생과 마주치고 말았다. 시내의 숙소는 대부분 오래된 고딕양식의 건물을 수리하고 개조해서 운영하는 곳이 많아서 바선생이 많다고 듣긴 했지만, 진짜 마주칠 줄이야… 다음날 아침 일찌감치 체크아웃을 하고 두번째 숙소로 재빨리 옮겨갔다.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가서 내린 동네는 ‘빌라 데 그라시아’. 이름이 왠지 고급스럽고 발음도 좋았는데 동네 첫인상도 서래마을을 연상케 하는 이국적이고 조용하면서도 운치있는 동네였다. 예쁜 빵집과 카페가 보이고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니 건물이 아담하면서도 하나하나 예뻤다. 낮은 건물 1층에 비누숍, 과일가게, 그로서리숍, 소품숍 등 작은 가게들이 웅그리고 있었다.


두번째 숙소는 숙소 컨디션도 좋았지만, 주변 동네를 산책하고 동네 주민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산책하다가 마음에 드는 카페에 들러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또 낮에 봐두었던 가게를 다시 찾아가 젤라또를 사먹는 식이었다. 나도 동네 주민이 된 것처럼 골목을 어슬렁거렸다. 피도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네타 해변까지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샌드위치를 사와서 나눠 먹기도 했다. 어느 비오는 날에는 창문밖으로 보이는 비오는 거리에 우산 쓴 사람들이 지나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저녁은 블로그에도 잘 안 나오는 동네 어느 오래되고 정겨운 ‘바르’에서 먹었다.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시내중심가 식당이 아니면 영어가 잘 안 통한다. 의사소통은 마음만 있으면 언어가 안 통해도 통하게 되어있는 것 같다. 직원이 영어를 전혀 못 해도 음식을 주문하고 식사를 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고, 음식도 맛있었다. 바르셀로나에서 유명하거나 한국인들이 추천하거나 높은 평점을 받아 방문했던 그 어떤 식당보다도 맛있게 먹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진짜 맛집은 한 골목 뒤에 있다.” 보물을 찾는 기분으로 한 골목만 더 들어가고, 좀더 걸어가보면 말은 안 통해도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편안한 맛집을 찾을 수 있을지도. 



다음 바르셀로나 여행은 ‘빌라 데 그라시아’에서만 머물면서 아침에 동네 카페에서 에스프레소와 빵을 먹고 산책하다 숙소에서 책을 읽다가, 또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익숙한 바르에서 저녁에 맥주를 한잔 하는 일상을 살아보고 싶다. 가우디와 빌라 데 그라시아로 기억되는 바르셀로나. 다시 또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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