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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환 Feb 23. 2024

닫힘 버튼

바르셀로나에 없는 것


바르셀로나에서 두번째 숙소는 어느 깨끗하고 부자들이 살 것만 같은 동네의 주택가에 있었다. 창문 너머로 예쁜 과일가게가 있어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좁은 골목길로 사람들이 쉴새없이 지나갔다. 반듯하고 낮은 건물들 사이로 난 좁은 길은 깨끗하고 길가 상가들은 아기자기하게 예뻤다. 샌드위치 가게, 커피숍, 과일가게, 서점 등 작은 가게들이 곳곳에 있었는데 건물이 저마다 다른 모양과 색깔을 갖고 있어서 사진을 아무렇게 찍어도 예뻤다. 


짐이 있어서 숙소가 2층이지만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닫힘’ 버튼이 없어서 순간 당황했다. 화살표가 바깥으로 향한 ‘열림’ 버튼 옆에 응당 있어야 할 닫힘 버튼이 없어서 누르려는 손가락이 길을 잃고 멈칫 했다. 몇 초를 기다렸더니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2층으로 올라갔다. 한국에서 아파트 16층에 사는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16층을 누르고 자동적으로 닫힘 버튼을 누른다. 혹여나 터치를 살살 해서 문이 빨리 닫히지 않으면 같이 동승한 주민에게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다시 닫힘 버튼을 꾹 눌러준다. 집에 차키나 핸드폰 등 중요한 걸 두고 1층까지 내려왔을 때는 엘리베이터에서 닫힘 버튼을 미친듯이 누르는(그렇다고 더 빨리 닫히는 건 아닌데도) 장면을 떠올리면서 닫힘 버튼이 없는 엘리베이터란 얼마나 불편할까 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다음날 예약해 둔 바르셀로나 축구경기를 보러 캄 노우 경기장에 가면서, 닫힘 버튼이 없어도 되는 이유를 알았다. 바르셀로나는 축구에 대한 사랑이 열렬한 것으로 유명하다. 바르셀로나 홈구장 캄노우는 약 1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오래되고 거대한 축구장이다. 10만명은 잠실 야구장 수용 관중의 4배에 달하는 인원이다. 캄노우 구장 갈 때 탄 지하철에는 80% 이상 축구장 가는 팬들로 빽빽했다. 지하철 개찰구를 나가는 일이 쉽지 않겠구나 생각했고, 사고가 나지는 않을까 흥분한 팬들이 해코지를 하지나 않을까 긴장하면서 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계단을 올라 개찰구로 가는 길에 사람들은 시끌벅적했고 다소 흥분되어 보였지만 누구하나 앞사람을 밀거나 조금이라도 빨리 개찰구를 나가려고 서두르지 않았다. 앞사람과 10cm 이상 간격을 두고 입은 쉴새없이 떠들었지만 발걸음은 인파와 함께 천천히, 서서히 움직였다. 다소 거칠고 급해보이는 유럽 축구팬들의 성향과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쉽게 이어지지 않았다. 모두 차례를 잘 지키면서 역을 빠져나왔다. 거대한 인파가 축구장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서로 밀거나 조급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다른 사람과의 적절한 거리, 모두가 함께 하기 위한 적당한 속도, 느긋하게 자기 차례를 기다려도 다른 누군가가 뺏어가거나 침범하지 않을 거라는 암묵적인 신호,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기다림, 이런 것들이 습관과 태도에 배어있어서, 엘리베이터에 ‘닫힘’ 버튼 같은 건 애초에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피도가 파이브버거에서 햄버거를 먹다가 치아 교정 유지장치의 와이어가 끊어지는 바람에 현지 치과에 가야하는 날이 있었다. 대기하는 손님도 없었는데 우리는 30분 이상 기다렸다. 한국이었으면 카운터에 몇번이고 가서 우리 차례는 대체 언제 오냐고 닦달했을 것이다. 우리를 잊은 거냐, 순서에서 누락시켰냐 확인하면서. 그런데 이곳은 너무나 평화로웠다. 오래 기다린 우리에게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피도는 무사히 철사를 끊어내고 스페인 치과를 경험했다는 자랑거리를 하나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 닫힘 버튼 없어도 바르셀로나는 아무 문제 없이 평화롭게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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