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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환 Mar 02. 2024

개똥 또는 힙쟁이 언니


바르셀로나에서 비행기로 1시간 정도 가야 하는 그라나다는 이슬람 왕국의 마지막 수도였다. 기독교 문화의 나라 스페인에서 남부지방에서는 이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중 무어인이 세운 이슬람 최고의 아름다운 궁전 알함브라 궁전을 보기 위해 그라나다를 찾는 여행객이 많다. 알함브라 궁전이라는 제목의 음악도 있고, 우리나라에도 동일한 제목의 드라마가 있을 정도이다. 우리도 역시 알함브라 궁전을 보기 위해 두번째 방문도시로 그라나다를 선택했다.


알함브라 궁전도 기대만큼 아름답고 놀라웠지만 ‘그라나다’ 하면 떠오르는 건 개똥과 힙쟁이 언니다. 

유럽은 일치감치 반려동물을 키우는 문화가 발달을 했고, 목줄 없이 큰 개를 데리고 다니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반려견 동반이나 산책 에티켓이 우리나라보다는 느슨한 편인지 아니면 반려동물의 동물권이 보호가 잘 되어서인지 반려견들이 한층 자유롭다. 그러다보니 거리 곳곳에 배변의 자유를 누린 흔적이 자주 발견된다. 그라나다의 구시가지는 차도와 인도 대부분이 편편한 작은 돌들로 만들어서 울퉁불퉁한 요철이 있다. 그 길을 걷다보면 돌들 사이사이에 끼어서 지나다니는 차나 바퀴에 의해 평평하게 다져진 개똥(설마 사람의 것은 아니겠지)을 볼 수 있다. 큰 비가 내려서 자연 씻김이 되지 않는 이상 사람의 힘으로 제거되긴 어려워 보였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배변봉투를 지참하고 다니면서 잘 치웠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견주가 있다면 사람들이 엄청난 욕을 해대서 견주들이 무척 조심을 하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나보다. 시간이 흘러서 딱딱해진 것, 여전히 색깔과 질감이 살아있는 것, 아직 평평해지기 전인 것.. 다양한 모양의 개똥을 만날 수 있어서 지뢰 피하듯 폴짝거리며 거리를 걸었다. 바르셀로나로 돌아가고 싶었다. (바르셀로나 중심가는 덜했다. 변두리 지역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개똥의 추억을 깨끗이 지워줄 힙쟁이 언니를 만났으니, 바로 밤늦게 ‘까냐(생맥주)’를 마시러 나간 한 허름한 바에서였다. 이미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지만, 달리 다른 대안이 없어서 의자 없이 서서 먹는 자리에 꾸역꾸역 비집고 들어섰다. 우리가 자리잡은 바 너머로 바로 그 힙쟁이 언니가 서빙을 해주고 있었다. 빨갛게 염색한 긴 머리는 반삭(반은 삭발)을 한 채 포니테일로 묶고 있었고, 팔에는 온통 타투가 빼곡히 새겨져있었다. 울긋불긋한 얼굴과는 다르게 새하얗게 빛나는 건치로 껌을 씹고 있었는데 우리를 향해 단 한번을 웃지 않았다. 오똑 솟은 뾰족한 콧날이 누군가의 마음을 비어버릴 만큼 시종일관 차가운 표정이었는데 우리는 그 모습에 반해버렸다. 까냐를 두 잔 시켰더니 기본 타파스도 나왔다. 까냐는 스페인(바르셀로나를 포함해서) 일정을 통틀어 가장 맛있었다. 스페인은 도시마다 지역맥주를 파는데, 이곳에서는 알함브라 생맥주였다. 타파스는 크게 맛은 없었지만, 힙쟁이 언니의 시크함과 까냐의 맛에 반해 두고두고 그곳을 떠올리며 이야기한다. 그라나다를 다시 갈 일은 없겠다 생각하면서도, 그 힙쟁이 언니를 떠올리면 다시 가고 싶다. 다음에 또 가게 된다면, 한번은 우릴 향해 웃어주세요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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