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아솔 Nov 26. 2023

짜릿했던 영문 졸업생 대표 졸업축사

2023 토론토영화학교 졸업식

11월 17일 졸업식

 아침 7시 30분에 눈을 떴다. 떨리는 것 치고는 잘 잤다. 어제는 한 12시 즈음에 잤으니 괜찮은 수면시간이었다. 다만 새벽 3시쯤에 한 번 깼다가 다시 잤다. 나이 먹어도 떨리는 것을 어떡하니. 심장이 뛰는 일을 하는 거니 좋은 거야라고 스스로 주문을 외워본다. 근데 한국말로 해도 많은 청중 앞에서 말하면 떨리는데 영어로 해야 하는데 이거 어떡하니. 실수는 영원히 영상으로 남을 테고. 영화학교 졸업식인데 각종 촬영장비를 얼마나 신경을 써서 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잘 때 중간에 깨긴 했지만 그래도 절대적 수면시간이 적지 않아서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옷을 입으려고 보니 몇 주 전에 영화제 관련 행사를 하면 입으려고 했던 까만색 정장바지와 까만색 폴로가 있었다. 그리고 형이 결혼하면서 나에게 줬던 옷을 입으면서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스스로 말했다.

 


'오늘 10번만 틀리자.'


나를 응원하는 것은 좋지만 내가 그동안 해 본 적 없는 것을 잘할 거라고 기대하지는 말자. 졸업식은 2시였고,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갔다. 나는 개인적으로 토론토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한다. 도로가 평지라서 자전거 타기 부담스럽지 않고 짐도 자전거 앞 바구니에 넣을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분이 상쾌하다. 졸업식날은 날씨가 조금 쌀쌀했지만 나는 자전거를 탔고, 컨디션이 금방 쿨해졌다. 약속시간은 오전 11시였는데 10시 40분 정도에 도착했다. 장소는 토론토의 명소 CN타워 옆 Metro Toronto Convention Center였다.

내가 올해 큰 사건을 한 번 치른 뒤로는 시간에 늦지 않게 미리미리 준비를 하는 편이라 10시 50분 정도에 장소에 도착했다. 이 빌딩 자체가 워낙에 커서 졸업식이 진행할 장소가 상대적으로 작아 보였다. 졸업식홀 부근에서 학교 측 직원들 및 봉사단원들이 이래저래 졸업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기분 탓인 줄 모르겠지만 직원들은 조금 더 심각해 보이고, 봉사단원들은 즐거워 보였다. 이게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무게의 차인가 문득 생각했다. 나는 이메일로 연락을 받았던 토론토영화학교 측 Anie를 만나러 갔다. 아마 이분도 교수님인 것 같은데 무슨 과목을 가르치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졸업식 축사일로 Anie를 만나러 왔다고 하니 Christine이라는 여성분이 나에게 눈짓을 했고 난 그를 따라갔더니 맞은편 쪽에서 Anie를 만났다. 캐나다원주민 출신인 것 같기도 하고, 남미계통 같기도 하고 영어에 지역 악센트가 들어가 있는 40대 분이셨다. 키가 좀 작았는데 옷은 커리어 우먼의 정장과 행동은 당당해서 중간 관리자 포스를 풍겼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졸업식 홀을 가는 중이었다. Anie는 연신 졸업식 연설문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며 나에게 퍼펙트를 연발했다. 이게 흘리는 말일지라도, 그 말에 함께 졸업식 연설문을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 줬던 기업컨설턴트 Ozi, 작가이자 테라피스트인 Roo가 생각났다. 그리고 지난 3주간 A4 한 장 반짜리에 글을 넣었던 뺐다, 옮겼다 했던 지난 내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순간 지나갔다.

로비층에 도착했다. Anie를 따라 무대로 올라갔다.

이곳이구나. 나에게 5분이란 시간이 허락된 공간이. 잠시 크게 심호흡을 한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오늘 하루 그림을 그려 보았다. 잠시 뒤 무대 뒤에서 Darcy라는 호주 남성 스태프분이 오셔서 마이크 테스트를 진행했다. 원고도 큰 글씨로 인쇄가 되었고, 빛도 충분해서 원고를 읽기에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을 재어가면서 스피치를 진행했다. 중간에 웃긴 포인트는 최대한 퍼즈로만 주고 시간을 측정했다.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 졸업식까지는 한 시간 두 시간 30분 정도 여유가 있어서 근처에서 점심을 한 끼 먹었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밑줄 친 부분을 조용히 소리 내면서 분명하게 발음했다. 무대에서 틀리는 것은 괜찮지만 플로우는 계속 가져가고 싶었다. 점심을 먹고 졸업식장으로 갔더니 사람들이 엄청나게 붐비기 시작했다. 학교에 학과도 많고 졸업은 일 년에 네 번 이루어지지만 졸업식은 1년이 한 번뿐이라 정말 학생들이 많았다.

 

오랜만에 친구들도 만나고 인사도 나누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리고 웅장한 음악소리와 함께 졸업생들이 졸업식장에 입장하기 시작했다. 나는 졸업생 대표라서 제일 앞쪽줄로 갔는데 기분이 묘했다. 늦깎이 학생이 좋은 점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호들갑스럽다기보다는 뭔가 따뜻한 기운들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음향, 조명 그리고 시간에 맞춰 행사를 진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알고 그리고 관객석을 가득 채운 부모님 가족들이 마음이 어떠할지 초등교사로 10년 동안 일해서 자연스렇게 알게 된 것들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이 지금 이 순간 타국 캐나다 토론토이지만 이질감 속에서 편안함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싶다. 행사는 단순했다. 학교장 인사말, 졸업생 출신 유명인 연사, 그리고 온라인 프로그램 졸업생 대표 연설, 온라인 졸업생 사진촬영, 캠퍼스 대표 나, 그리고 캠퍼스학생들 사진촬영.


내 차례가 될 때까지 계속 떨렸다. 근데 심장 박동수는 내 전자시계가 측정하기로는 그냥 보통보다 살짝 높은 정도였다. 다양한 끼 있는 학생들의 졸업생들의 사진 촬영을 즐겁게 바라보고 있다 보니 내 차례가 되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거침없이 시작했다. 시작부터 반응이 너무 좋았다. 청중이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수용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연설을 할 때 리듬을 주고, 중간중간 쉼도 주었다. 예상치 못 한 부분에서 환호해 주니, 더 여유가 생겼다. 예정에 없던 부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는 말이나 행동을 넣어 청중의 반을 고조시켰다. 그리고 끝났다. 짜릿했다. 당연히 실수했다. 그렇지만 그 실수마저 이 연설의 포인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권이 아닌 유학생이 하는 졸업식축사가 내 테마였기 때문이었다.

https://youtu.be/z2A37EzaLBo?si=ul3qQnXMXv-f6QeO

(영상은 유튜브를 통해 확인가능)


연설이 끝나고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았다. 아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생전 본적 없는 학생들이 다가와 악수를 청하기도 하고, 인스타그램을 물어보기도 하고, 부모님들이 찾아와 인사를 받기도 했다. 내 단짝 프랑스 친구 Marion은 자기 아버지가 내 졸업축하연설문을 듣고 좋았다며 보낸 문자라고 보여줬다. 근데 프랑스 말이라 네이버 파파고의 힘을 빌려서 해독을 하긴 했다.


실은 전날 밤에 두려움이 컸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기억나는 부정적인 사람들의 시선, 비웃음등이 화면의 잔상처럼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오늘 아침에 내가 나에게 해줬던 격려와 기회가 내 감정상태를 차분하게 만들어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11월 17일 졸업식은 정말 인생에서 짜릿한 경험으로 기억될 것 같다. 나중에 어려운 순간에 버틸 수 있는 힘을 줄 거라는 기대감이 든다.


Asher Kim.

https://www.instagram.com/asol.kim

작가의 이전글 내일은 영어로 졸업축사하는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