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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솔 Sep 21. 2024

다시 토론토로.

2018년에 캐나다 토론토에서 유학을 도중에 멈추고 한국에 돌아온 뒤로 감사한 일들이 많이 있었다. 해외에서 영화학교를 잠시 다녔다는 이유로 강의요청이 많았다. 초등학생부터 성인들까지 영상제작, 혹은 영화제작 워크숍을 진행했다. 전국을 다니며 많은 소중한 인연을 만들었다. 2020년부터는 코로나로 인해서 온라인으로 교육도 참 많이 했다. 감사하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새로운 것을 도전하고 성취하는 것보다 했던 것들을 반복하고 있고, 알고 싶고, 일하고 싶은 영화산업에 있는 것이 아닌, 변두리에서 혼자 영화제작을 하는? 아니 영화제작을 한다는 느낌만 갖는 것은 아닌가 물음이 생기기 시작했고, 내 영화제작 역량에 내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학교 조직에서 나오는 분위기도 한몫했다.

조직에 있는 사람들은 다 느끼겠지만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조직 내에서 바라보는 관점과 조직밖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정말 판이하게 다르다는 걸. 조직 내에서는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해 둔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뭐든지 방어적이로 될 수밖에 없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행동들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굳이 관리자가 하지 말라고 하는데 내가 할 필요 있나?’


그리고 그 당시 내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영화제작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 제작팀을 구성하는 것, 촬영일자를 맞추는 것, 필요한 소품들을 만드는 것, 촬영을 하는 것, 편집을 하는 것, 많은 관중들에게 공개를 하는 것.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처음 진행할 때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보내주는 호응, 나의 호기심 충족이 주는 즐거움으로 진행했었는데 횟수가 늘어가다 보니 혼자 진행할 것을 생각하면 탁 숨이 막히곤 했다. 어쩌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이었을 수도 있겠고, 내가 원하는 수준만큼 준비가 안될거라는 현실앞에서  답답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는 하고 싶고, 유튜브로 작가, 감독, 크루들의 인터뷰들을 보면서 영화제작을 상상하면서 마음을 달래곤 했다. 그러다가 2021년 말부터는 세계적으로 위드 코로나가 선언되면서 오프라인 활동들이 가능해지기 시작했다. 일이 끝나고 어느 날, 네이버에서 내 이름을 검색했다. 그땐 내가 이미 2020년도에 책을 내기도 했고, 교육계에서 영상과 영화로 이름을 알리려고 홍보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프로필에 토론토필름스쿨 졸업이라는 글귀가 있었다.


'어? 나 졸업 안 했는데. 휴학했는데. '


네이버에서 프로필 입력이 될 때 오류로 졸업으로 입력이 되었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수정요청을 할까 하다가.


‘잠깐, 그냥 가서 졸업하고 오면 안 될까?’


그런 생각을 했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좀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교육공무원으로서 휴직 가능성부터 살펴보았다. 자율연수 휴직이라는 게 보였다. 공무원들은 10년이 지나면 1년간 휴직을 할 수 있는 지침이 있다. 전에 다녔던 영화학교에 문의를 하니 내가 다시 학기를 이어서 다닐 수 있다고 했다. 교육청에 문의를 하니 경력이 1년이 부족했다.


‘아..’


그래서 결심했다. 2023년이 되면 떠나는 것으로.  학교에 등록 절차를 진행했고, 교육청에서 필요한 경력을 다시 확인하고, 나는 6학년 한 해를 성심성의껏 보내기로 결심하고 그리고 밀어부쳤다.

항상 쉬운 일들만 어디 있겠냐마는 2022년도에는 좋은 일들도 많이 있었지만 학급운영 어려움으로 내 자존심이 많이 상한 한 해였다. 한 남학생의 교권침해 활동이 계속되었다. 학부모님은 협조적이긴 했지만 죄송하다는 말뿐, 아이의 행동변화는 없었다. 학급의 분위기는 그 학생의 영향으로 학생과 교사의 대결구도로 변질되어 가고 있었고, 6학년 졸업이 다가오는데 뿌듯한 성취감보다는 해방감을 느꼈고, 이에 따른 죄책감을 동시에 느끼곤 했다. 그리고 그때 스트레스 지수가 굉장히 높았다. 토론토 학교입학이 미지근하게 흘러갔다. 그 이유인 즉슨 한국에서 요청한 비자 발급이 늦어졌기 때문이었다. 늑장 부리는 내 성격이 큰 걸림돌이 되었는데 거기에 캐나다 연말 연휴기간까지 겹쳐서 비자가 발급이 지연되었고, 학교에서는 나를 학생으로 미리 등록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비자가 원하는 날짜에 안나오면 비자를 발급받고 예정일보다 3달 뒤에 학교를 등록하는 것으로 협의를 하고 비자가 나오길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비자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인터넷을 찾아보아도 내가 받아야 하는 날짜보다 보통 2주일, 빨라도 일주일을 더 늦게 받을거라는 답변만 받았다. 비자 신청을 대행사를 통해서 했었는데, 대행사도 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때 나는 예전에 몇 번 만나보았던 대사관에서 일하는 미국인 친구 Daniel 에게  연락을 했다. 그 친구는 인도 미국대사관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혹시나 해서 인스타그램으로 급한 장문의 메시지를 남겼다. 하지만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인도 미국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친구가 어떻게 캐나다 비자와 관련한 일을 알 수 있을까 하면서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부탁했다. 어머. 감사하게도 그 친구는 나에게 바로 답장을 주었다. 한 문장과 함께.


'Call, call, call! email, email, email!'


그때 이 말에서 바로 절박한 상황을 어떤식으로 알려야 한다는 것을 느꼈고, 나는 캐나다 비자를 발급하는 대사관에 전화를 했다. 역시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메일을 보내는 곳이 없나 홈페이지를 둘러보니, 문의사항과 상관없는 이메일 주소가 하나 있었다. 나는 상관하지 않고, 감사와 미안함으로 시작하는 이메일을 작성하고는 내 현재 상황을 가득 담아서 글을 쓰고는 비자 담당자에게 이 글이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이메일을 마감하고 보냈다. 그때 시간이 저녁 12시 30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잠이 들었다.

아침 6시 30분. 아침에 눈을 뜨고 핸드폰을 열어보니 이메일이 와 있었다. 비자발급완료. 약간 눈시울이 맺혔다. 3주 넘게 애태우고 있던 비자발급이 하루만에 된 것이었다. 그렇게 내 토론토행은 시작부터 아슬아슬했다.


 다음엔 꼭 중요한 일은 미리미리 하겠노라고 다짐을 하고,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졸업식을 진행하러 학교로 향했다. 다행히 역량이 뛰어난 동학년 선생님들 덕분에 2023년 1월 6일 금요일 무사히 졸업식을 치르고 아이들을 졸업시켰다. 그리고 나는 다음날 떠났다.

토론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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