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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Life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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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스 Oct 03. 2023

한국 추석은 3년 만이라서

Life in Korea

어느덧 추석이다. 새로운 희망을 품고 귀국했을 때가 여름의 초입이었다. 한국의 여름은 꽤나 뜨거웠다. 캐나다의 여름과는 다른 느낌. 뜨거운 여름이 지났다. 낮의 길이가 짧아졌다. 지난 여름날이 내게 아무것도 남긴 게 없다 해도, 시간은 같은 방향으로 계속 흐르고 있다. 내 마지막 이십 대의 여름은 지고 있었다.


3년 만에 한국 추석을 맞이했다. 우리 집에도 작은 변화가 생겼다. 이번 추석은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늘 명절 차례상을 준비하던 우리 엄마. 며느리가 제사상을 준비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에 시집을 오셨다. 하지만 코로나를 기점으로 차례 지내는 것이 많이 간소화되었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집들이 많아졌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우리는 집에서 가장 큰 어른인 할머니, 종희. 제사 없는 여유로운 명절을 맞이하는 것에 대해 처음은 못마땅했다. 종희는 항상 조상에게 잘해야 우리가 잘 된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계셨다. 하지만 차례 없는 명절을 설득했다. 어쩔 수 없이 수용하셨다.


엄마는 계속 심장이 두근거린다고 했다. 차례를 지내지 않아도 몸이 기억하는 것일까. 엄마에게 추석은 휴일이 아닌 긴장 하게 만드는 날이었다. 인천 대교를 넘어 바다를 보면 조금은 괜찮아질까 하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았다. 추석 당일이었지만 영종도 도로는 차로 가득했다. 괜찮은 횟집으로 들어갔다. 우린 회와 물회 그리고 칼국수를 주문했다. 맛은 훌륭했지만 서비스는 별로였다. 캐나다였으면 서비스에 대한 팁은 주지 않아도 무방할 정도의 서비스였다. 하지만 음식은 맛있었기에 우린 웃으며 나왔다.



어른들과 술 한 잔을 했다. 아빠는 내게 캐나다였으면 뭐 하고 있을 것 같냐라는 질문을 했고, 나는 아마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답을 했다. 바다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빠졌던 바닷물들이 천천히 갯벌을 덮고 있었다. 캐나다에 있을 나를 상상하며 소주 한 잔을 더 마셨다. 꽤나 평화롭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다 문득 인생에서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은 기분이었다.


우린 정리를 하고 옆에 카페로 이동했다. 2층 건물이었고 바다를 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엄청 많았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자 계산을 위해 줄 서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반겼다. 기다리는 줄은 꽤나 길었다. 먼저 자리를 잡기 위해 나섰지만 자리도 없었다. 손님 대부분 가족 단위여서 의자도 부족했다. 우린 겨우 2층에 자리를 얻었다. 나는 종희를 모시고 2층으로 올라갔고, 동생은 빵과 커피를 주문했다. 하지만 커피를 받는 시간까지 50분이 걸렸다.


2층은 옥상이었다. 바람이 불어오고 바다는 어느새 새카만 갯벌들을 삼켰다. 흰빛을 뿜으며 사라지는 파도를 바라보자니 마음이 평안했다. 그럭저럭 잘 해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한동안 말없이 그 풍경을 눈에 담았다. 이따금 먹는 빵과 갈증을 날리는 커피 그리고 이 풍경의 조합은 평화로웠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차례를 지내지 않고 여유롭게 지내는 추석이 어떠냐고 종희에게 물었다. 탐탁지 않아 했던 표정은 어느새 풀려있었다. 좋다고 짧게 대답한 종희. 하지만 끝에는 그래도 조상에게 잘해야 한다는 말은 따라왔다. 우린 어쩔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각자가 살아왔거나 살고 있는 시대는 다르다. 가족이기에 그 차이를 꼭 이해해야한다는 마음은 욕심이다. 이렇게 타협하고 적당히 양보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종희가 좋아하는 트로트 노래를 틀었다. 노래를 따라 부르는 종희의 목소리는 듣기 좋았고, 엄마의 표정은 긴장이 풀려 보였다. 여느 명절처럼 아빠는 코를 골고 있었고, 동생은 운전했으며 나는 창 밖을 보며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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