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실이는 복도 많지,
그리고 복은 나도 많고.

<찬실이는 복도 많지>, 감독 김초희

by 서리
28829_1696899795.jpg © Youn, Echelon Studios

일기를 써 두었기 때문에 날짜를 정확히 알아낼 수 있었다. 2020년 11월 6일이었다. 타지에서 원주로 넘어온 지 삼 년째 되던 해였고 만나던 사람과 헤어진 지는 일곱 달쯤 되던 때였다. 뉴스에서 ‘코로나 감염 추세 엄중하다’고 날마다 보도하던 시국이었지만 괴로운 마음을 잊기 위해 뭐라도 해야했다. 한 카페에서 원주의 독립 서점들을 소개하는 리플렛을 발견한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소위 ‘도장 깨기‘를 해 나갔고, 독립예술영화관이 집 바로 근처에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알라딘에서 베스트셀러를 고르고 롯데시네마에서 헐리웃 영화를 보던 내가 지역 문화예술, 그리고 그 창작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그러던 중 원주에 유일하게 남아있다는 단관 극장인 아카데미 극장에서 ‘안녕 아카데미’라는 행사가 있을 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행사 중에는 감독의 GV가 붙은 영화 상영 시간도 있다고 했다. 물론 외지인인 내게 이 오래 된 극장에 대해 추억이나 애틋함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수많은 사람들이 앉았다 갔을 낡은 영화관 좌석만큼 나를 아무렇게나 내버려 두기에 좋은 곳도 없었다. 11월의 공기만큼이나 쌀쌀하고 스산한 마음으로 마스크를 끼고 양 옆 좌석을 비운 채, 아카데미 극장에 앉아서 영화를 봤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였다.



28829_1696900299.jpg © Youn, Echelon Studios

비장하기까지 한 음악이 흐르며 영화가 시작된지 2분 만에, 같이 일하던 감독의 죽음과 함께 영화 프로듀서였던 찬실은 일을 잃고 삶도 잃어버린다. 영화가 인생의 전부라고 여겼던 찬실에게 일은 곧 삶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찬실은 잃어버린 삶을 찾기 위해 다른 일이라도 해 본다. 그래도 삶이 잘 찾아지지 않는 것 같자, 그 헛헛함을 잊기 위해 새로운 사람을 마음에 들여보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날, 찬실의 눈 앞에 난데없이 본인을 장국영이라고 소개하는 귀신이 나타난다.


우리 주변에서 찬실처럼 어떤 대상을 내 삶의 전부라고 여기며 사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기 때문에 아주 뜨겁고 환해서, 주변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러한 삶의 방식은 필연적인 위험성을 가진다. 불은 항상 더 태울 것을 찾기 마련이라, 자신을 태우는 동안에는 끝없이 부족함을 느끼고 다 타버리고 난 이후에는 한없이 공허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며 방황하는 듯 보이던 찬실도 귀신과 대화를 나누면서 비로소 자기가 정말로 원하는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28829_1696900314.jpg © Youn, Echelon Studios

장국영 귀신이 질문을 던져주는 인물이라면, 해답에 대한 예시를 보여주는 두 인물은 찬실의 친한 지인이자 배우인 소피와 찬실이 사는 셋방의 주인집 할머니다. 소피는 찬실만큼이나 자신의 일을 사랑하지만, 그 일에 대해 너무 몰두하지 않고 어느 부분에서는 오히려 거리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일과 삶의 균형을 찾는다. 할머니의 경우는 그 반대로, 사랑하는 딸을 잃었으나 그로 인한 슬픔과 그리움을 무조건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매일의 일상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영화만을 위한 삶과 영화를 완전히 떠나는 삶 둘 중 하나를 꼭 골라야 한다고 생각하며 혼란을 느끼던 찬실도 이들을 이정표 삼아 마침내 영화‘도’ 있는 삶으로 나아간다. 영화를 여전히 사랑하되, 그 속에서 더 깊은 삶의 목적을 찾아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꽁꽁 묶어 두었던 영화 관련 서적과 자료들을 다시 풀어 놓은 찬실의 곁에는 ‘우리가 있으니까 망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계속 곁을 지켜온 소중한 사람들은 물론, 방황의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된 좋은 사람들까지 함께다. 멀리 우주에서 응원하고 있는 장국영 귀신까지도!


28829_1696900474.jpg © Youn, Echelon Studios

<찬실이…>를 관람했던 2020년 11월 6일으로부터 약 3년이 지났다. 일을 잃자 삶의 방향을 놓치고 사람을 찾던 찬실처럼 사람을 잃고서 그 허전함에 새로운 일들을 찾아다니던 나는 그 덕분에 원주영상미디어센터에서 네 번의 워크숍을 듣고, 공동체라디오 DJ로 1년을, 모두레터 필진으로 2년을 활동했다. 심지어 네번째 워크숍인 극영화제작워크숍에서는 생전 꿈도 꿔보지 않았던 독립 영화까지 찍게 되었다. 영영 잊히지 않을 것 같던 상실감은 희미해지고 어느새 새로운 사람들과 또 다른 삶의 길 위에 서게 되었으니, 아무래도 이제는 찬실처럼 나도 복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다.

작가의 이전글다만 일 인분의 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