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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루카 Dec 08. 2022

Landmark? Landmark!

03화




랜드마크가 그렇게 중요해?




한참 전의 이야기이다.


하루하루 도무지 끝이 보이질 않는 무료한 수험생활을 이어가던 그녀와 나였다. 무료한 일상을 채우기에는 역시 여행 계획만 한 것도 없었기에, 아니, 굳이 계획이랄 것도 없이 그저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만으로도 당장의 불안하고 무료한 현실의 눈치로부터 잠깐 멀어질 수 있기에 그날도 여행과 관련된 이야기를 풀며 일상에서 멀어지고 있던 우리였다.  


이왕이면 해외여행이,

또 이왕이면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나라로의 여행이 더욱 로맨틱하니까, 이야기의 주제는 자연스레 파리 여행으로 향했고, ‘문제 아닌 문제’는 그때 발생했다.


그녀는 여행지를 가면 무조건 랜드마크 위주의 플랜을 짜고, 그에 맞게 움직인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남들 다 가보는 랜드마크보다는 나만의 플랜을 가지고 여유롭게 움직이는 것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했다. 둘의 여행 스타일이 완전히 반대였던 것이다.








그렇지. 그럴 수도 있지. 그게 뭐가 대수라고.


하지만 그 당시(시작하면서도 이야기했지만, 오래전 이야기이다.)의 나는 나와 맞지 않는 그녀의 여행 스타일이 이해되지 않았고, 그녀 역시도 조금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답이 없는 문제에 대한 답을 내놓기 위해 우리는 다투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옛날 일이다.








시간이 흘러 영국에서 생활하게 된 나는 그때 그 마음 그대로, 런던으로 향했다. 랜드마크에 목메지 않겠다는, 나만의 루트를 찾겠다는 등의 치기 어린 마음으로

한껏 있는 체를 하며 가볍게, 그렇게 런던으로 향했다.


빅토리아 역에서 내리고 나면 바로 앞에 있는 것이 버킹엄 궁전이라는 것을, 나는 몰랐다. 랜드마크에는 심드렁하다고 믿었던 내가 우선 버킹엄 궁전부터 가게 될 것이라는 것도 나는 몰랐다. 궁전 앞의 넓디넓은 정원을 거닐며 런던의 가을을 마주하다가,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대관람차 - 그러니까 ‘런던아이’가 떡하니 있을 줄도 몰랐다. 이왕 걷는 김에 런던아이 한번 가보자 했다가 빅벤 앞에서 사진을 찍게 될 줄도 역시 몰랐고, 어이없이 랜드마크의 끝판왕들을 다 해치워버린 김에 타워 브리지까지 가게 될 줄은, 다리 앞에서 남들 다 찍는 사진 나도 찍겠다고 한참 동안 서성거리고 있을 줄은, 정말로 생각하지 못했다.



한때 연인과 다퉈가며 지켜냈던 여행 철학을 완전히 무시해버린 여행을 해버리고도, 돌아가는 길이 그렇게 후련하고 만족스러울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거라며 멋쩍어하기도 했다. 열심히 찍어 놓은 사진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그렇게 기숙사로 돌아갔다.








흔히들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곤 한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과거 나의 랜드마크 혐오증도, 거기에서 출발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다들 잘 알다시피 인생의 여정에도 랜드마크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남들 다하고, 기본적인 만족감이 보장되는 것들이 인생의 길목마다 있지 않은가.


20대 시절, 처절하게 그런 것들에서 멀어져 보려고 발버둥 치던 나였다. 외면하고 벗어나려 해도 결국에는 길목마다 놓여있는 숙제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돌아왔던 나였다. 그러니 여행에서 만큼은 남들이 이미 수없이 다녀갔던 그 흔적들을 뒤늦게 찾아가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것도 같다. 여행이니까, 진정 나만의 어떤 것을 찾아보자는 치기 어린 마음을 가졌던 것도 같다.






인생에도 여행에도 정답은 없다고 하지 않나.  

어린 시절의 내가 했던 생각이 여전히 맞을 수 있고,

랜드마크란 랜드마크는 다 다녀왔던 나의 런던 여행 같은 삶이 정답이 될 수도 있겠다.


다만

이제부터는 랜드마크에 대해 그녀처럼 이야기하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어린 시절 그때의 나처럼 승자 없는 싸움의 승자가 되기 위해 바락바락 고집부리기보다


그저 웃어넘기며 나의 여행 경험은 이랬더랬다 이야기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또 여행과 인생의 정답 없음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지는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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