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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규 Mar 16. 2019

혼자만의 방


자취를 하는 A는 얼마 전에 이별을 했다. 


둘 중 누군가 혼자 사는 커플이 다 그렇듯, 그들의 데이트는 자주 집에서 이뤄지곤 했다. 같이 밥을 해 먹고, 잠을 자고, 모든 게 다 사라지고 딱 둘만 남아 있어도 좋겠다는 시간들이 작은 방을 채웠다. 그가 떠난 후 침대 시트를 세탁해야 한다거나, 한참이나 집안 청소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 같은 건 문제가 아니었다. 단지 그들만의 공간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가 떠난 후에도 방에 남은 온기는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던 밤을 위로하곤 했다.


그래도 가끔 밖에 나가고 싶을 때도 있었다고 했다. 둘만의 세계가 이 좁은 방에만 쌓여가는 게 때론 답답했다. 구태여 가기 어려운 곳을 찾아가서 함께 있거나, 사람 많은 거리에 나가 더 많은 장소에서 그 작은 방에 한정된 세계를 넓히고 싶었다고. 둘만의 동굴이 필요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어디서 만나자 약속을 하지 않고 갈게, 응. 하는 만남의 관습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던 건 왜였을까. A는 그 편리함이 서로의 관계에 대한 무성의함으로 귀결되는 게 두려웠다. 돈이 많이 드는 외식, 번잡한 거리, 바뀌어 가는 계절의 온도에서도. 이 따뜻하고 아늑한 방을 벗어나서도, 편안함이 사라진 장소에서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순간을 갖고 싶었던 것 같다.  


어쩐지 절실했던 영화 보러 갈까?라는 물음에 아니, 귀찮아 너네 집에서 컴퓨터로 보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A는 그가 더 이상 둘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거란 사실을 직감했다. 짜증, 싸움, 냉전, 화해. 무언가 절망적인 기분을 느낀 A의 반응을 그는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변하지도 못 했다. 더 이상 우리 집에 오지 말라-는 말로 이별은 간단히 이루어졌다. 우리 같이 나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사람들 구경도 하자는 말이 왜 그렇게 어려웠던 걸까. 우리가 다음으로 나가려면 우리만의 이 동굴을 벗어나야 한다고 하는 말을 왜 끝내 못 했을까. 사람들이 누군가와 만나고, 그와 나의 삶이 중첩될 때 하루 바삐 가고자 하는 곳은 편안함이다. 불편한 사람과의 관계는 마음을 풍요롭게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편안함이 왜 관계의 밑바닥을 드러내게 만드는 걸까. 이상하게도,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서로에 대한 성의는 점차 소멸하고 관계는 공허해진다. A는 좋았던 순간이 결국 그들을 파괴한 모순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랐다.


부재는 존재를 증명했다. 남아 있던 온기가 그는 이제 곁에 없다는 사실을 돌이키게 한다. 좋았던 시절에 그가 너무 많은 물건을 그 작은 방에 갖다 둬서, A는 한참을 물건을 정리하고 그 많은 것들을 내다 버려야 했다. 검은 봉투에 들어간 한 보따리의 물건들에 스치는 기억이 아파 A는 한참을 그 물건들을 보며 울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A는 또 한동안 울었다. 전세 계약은 아직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집에 가야 하는데 더 이상 그 집에 들어가기가 싫다고 울었다. A는 그렇게 자신의 파괴된 공간에서 아파했고 나는 끝내 할 말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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