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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규 Mar 17. 2019

딜레마의 예술

위쳐3 : 와일드 헌트


1.
길을 걷다 한 무리의 남자들이 누군가를 린치하는 광경을 본다. 모두들 생각한다. 여럿이 한 명을 괴롭히는 건 좋지 않은 일이라고. 그런데 말리려다 보니 상황이 복잡하다. 린치 당하고 있는 남자는 그 지역을 짓밟은 제국군의 병사, 정확히는 탈영병이다. 임신한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 군에서 도망쳤다. 린치하고 있는 남자들에게도 사정은 있다. 바로 그 제국군에게 가족과 집을 모두 빼앗긴 난민들이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이들의 분노는 정당하다.


플레이어는 선택을 해야 한다. 탈영병을 내버려두고 가면 그는 여기서 죽을 것이다. 물론 그의 임신한 부인은 미망인이 될 것이고, 아이는 아버지 없이 자라게 된다. 난민들의 분노를 멈출 방법이 없다. 탈영병을 살리려면 그들을 모두 죽여야만 한다. 여기서 죽어 마땅한 사람은 없다. 이들은 모두 피해자일 뿐이다. 그들의 차이점이란 단지, 그 전란의 시대에 서 있는 곳이 달랐던 것뿐이다.  


위쳐3: 와일드 헌트가 그린 세상은 그런 곳이었다. 가혹할 만큼의 딜레마. 옳고 그름, 선과 악. 편리하게 양분할 수 없는 선택이 끊임없이 닥쳐온다. 용과 검과 마법이 있는 판타지의 세계지만 공주를 구하는 왕자도, 세상을 구한 영웅적인 용자의 전설도 없다. 대신 전쟁과 괴물들로 피폐해진 세상과 이기적인 인간들, 광기에 가까운 사회 분위기가 있다. 가장 잔혹 한자만이 영웅으로 칭해지고, 등장인물들의 동기는 도덕이나 대의가 아니라 개인적인 욕망에서 비롯된다. 써놓고 보면 단지 극단적인 가상의 세계처럼 보인다. 막상 그 속을 걷다 보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소름 끼칠 정도로 게임 밖의 세상과 닮아 있었다.



2.
이런 서사적 방법론에 있어서 위쳐3: 와일드 헌트의 뛰어난 점은, 그 중심에 게롤트라는 개성적인 주인공을 던져 놓는 방법을 취하는 부분이다. 그동안 게임사에서 서양 RPG의 시나리오는 백지상태의 주인공이 가장 좋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주인공에게 어떤 성격이나 개인적인 서사를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플레이어의 감정 이입이 쉬운 아바타의 형태로 만들어져 왔다. 폴아웃이나 스카이림 같은 초대형 성공을 거둔 오픈월드 RPG가 바로 이 작법을 따랐다. 그리고 그것이 잘 작동해왔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주인공 캐릭터의 운명을 쫓으며 얻는 즐거움의 측면에서 보자면 모호하다. 어떤 개성도 부여하지 않는 백지상태의 주인공은 이입이 쉬울지는 몰라도, 캐릭터가 주는 매력 자체를 극히 제한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영화나 소설과 다른 게임의 스토리텔링만이 갖는 장점일 수는 있으나 동시에 이것은 이야기가 주는 즐거움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이룬 성취였다.


여기서 위쳐3: 와일드 헌트는 아주 영리한 타협점을 택한다. 위쳐가 되기 위한 강화 시술의 부작용 탓에 감정이 제거됐다는 설정으로, 게롤트는 게임 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때문에 플레이어에게 자신의 감정에 공감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는 반쯤은 백지상태의 캐릭터나 다름없다. 대신 그에겐 개인사가 있고, 사랑하는 연인이 있으며, 주변 인물들과 주체적인 캐릭터로서 관계를 맺고 있다. 나머지 반의 공백을 채우는 것은 온전히 플레이어의 몫이다. 다시 말해, 게롤트라는 캐릭터가 가진 성격의 테두리 안에서 세계와 그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는 셈이다. 그가 어떤 내면적 종류의 갈등을 겪을 건지, 어떤 연인을 선택할지, 어떤 식으로 세상에 개입할지 선택함에 따라 그를 둘러싼 세상은 아주 다른 모습으로 유기적인 변화를 겪는다. 어느 쪽으로 가도 서사적 완성도는 뛰어나다. 소설이나 영화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이야기 방식과, 게임만이 가능한 상호작용 서사의 중간쯤 어디에서 유지한 그 균형미는 감탄할 만큼 탁월하다.



3.
위쳐3: 와일드 헌트의 이야기는 단지 이야기로서 끝나지 않는다. 게임만이 구현할 수 있는 판타지를 매개로 가장 현대적인 세상을 그려낸다. 타인의 불행을 마주했을 때 현실의 우리는 대개 비겁하다. 개입해서 꼭 좋은 결과를 볼 거라고 장담하기 어렵고, 그래 봤자 남의 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순간이 올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치르고 그 흔적 속에서 살아간다. 자신이 한 선택이 옳았는지, 다른 선택이 더 나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대개의 경우, 선택했으면 뒤돌아 보지 말아야 한다. 이 어쩔 수 없는 삶의 연속을 시뮬레이션하면서 게임은 끊임없이 묻는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말은 없다. 하지만 네가 현실의 불의에 개입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할 거냐고. 위쳐3: 와일드 헌트는 그것을 게임만이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형태로 질문해 냈다. 이건 동시대를 사는 어른들의 가장 현대적인 잔혹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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