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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규 Mar 22. 2019

우리가 약속한 고통

생각해보면 내게 연애란, 널 위해 나는 기꺼이 귀찮은 기분을 참을 수 있다는 약속에 가까웠다. 생리통이라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아픔에 주저앉을 때면 약국을 찾아온 동네를 뛰었고, 알 수 없는 이유로 기분이 좋지 않다고 할 때면 시간이 몇 시건 나는 집을 나섰다. 네게 그래야만 하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특권. 그건 온전히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같은 기분일 수는 없어서 어느샌가 나는 그게 퍽 귀찮았다. 네가 내게 마음 놓고 짜증을 부리거나 어린아이처럼 의지하게 되는 때가 오면, 나만이 할 수 있었던 그 일은 내게만 지워진 책임처럼 무거워졌다. 가끔 역할극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해야만 하고, 할 수밖에 없는 일들. 연애는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었지만 네 곁에 있겠다고 약속한 이상 내게는 해내야 하는 일들이 참 많았다.


애써 사온 약을 보고 안도하는 표정이나, 앞에서 도란도란 이야길 늘어놓는 널 보며 내가 미안해, 그런 마음 들어서 내가 미안해하는 말을 속으로 삼킨다. 가끔 헷갈렸다. 나는 왜 달렸던 걸까. 네게 그래야만 하는 사람이라, 아파하는 널 방치할 수 없다는 책임감 때문일까. 그저 조금이라도 기뻐하는 네 얼굴을 보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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