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첫 재앙을 겪으며
“중국에서 새로운 독감이 유행하고 있다.”
코로나를 처음 들었던 날의 표현은 그랬습니다. 중국이야 이것도 만들고 저것도 만들고, 물건 뒤집어 보면 메이드 인 차이나가 없는 물건이 없었으니 바이러스 정도 만들었다고 그렇게 놀라울 일도 아니었죠. 그냥 뭔가 또 해괴한 걸 해냈구나. 그런 마음으로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땐 그랬어요. 뒤집으면 어디에나 있는 메이드 인 차이나의 위력을 알았다면 조금은 자세를 바르게 고치고 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작년 여름의 저는 한 달에 걸친 독서 모임을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대단한 자리는 아니었고, 책에 관심 있는 장삼이사들이 소소하게 모여 책 이야기를 하는 그런 모임이었죠. 무엇보다 책을 읽어가지 않아도 되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당시의 모임 리더는 성실하게 그날 읽을 단편 소설을 프린트해 와서, 참석자들에게 나눠주고 돌아가며 낭독하도록 했습니다. 이미 코로나 유행으로 거리두기가 약간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던 시점이라 모임은 꽤나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던 기억이 나네요. 그날 모임의 리더가 가져왔던 소설도 그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김미월 작가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는 단편 소설이었습니다.
소설 내용은 이렇습니다. 주인공은 술에 취해 잠이 들어 숙취와 함께 눈을 떴어요. 자고 일어나니 뉴스에선 이러는 거예요. 지금 운석이 지구로 향해 날아오고 있으니 곧 세상이 멸망할 거라고 앵커가 울먹이며 소식을 전하고 있어요. 사람이 보통 이런 말을 들으면 몰래카메라가 아닌가 주변을 둘러보게 되잖아요. 근데 애석하게도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요. 주인공은 세상이 망한다고? 그래? 아… 어떡하지? 그런 생각을 하며 일단 숙취를 진화하려 물을 마시다가 택배를 받습니다.
그러니까, 택배를 받아요. 세상이 망한다는데 여전히 택배 기사께서는 택배를 배달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리고 전날 함께 술을 먹었던 친구한테 전화를 받죠. 세상이 망한다는데…? 뭐 할 거야? 일단 거기서 만나자. 응. 그런 대화를 나눕니다. 어영부영. 이 소설에서 멸망을 앞둔 사람들은 어영부영, 남은 시간을 살아갑니다.
독서 모임의 리더는 이 단편 소설을 가져온 이유가, 자신이 요즘 멸망에 관해 자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했어요. 그 해의 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그 비는 장마가 아니라 기후 위기라는 이름으로 더 자주 불렸죠. 제가 생각하기에도 그것은 조금은 세기말적인 풍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전 지구를 뒤덮는 역병의 창궐, 끊임없이 쏟아지는 비가 만든 홍수. 메뚜기 떼만 하늘을 안 덮었지 어디서 봤던 것 같은 종말의 징후들이 연이어 이어지고 있던 때였으니까요. 리더는 이 소설처럼 내일 당장 지구가 망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코로나로 달라진 각자의 일상이 어떤 지에 관해 이야기하자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비가 너무 와서인지 독서 모임 리더는 약간 우울증이 온 것도 같았습니다. 소설은 꽤 웃긴 구석도 있었는데 말이죠.
리더는 우울증이 왔지, 밖에 비는 계속 내리지, 다들 마스크는 하고 있어서 무슨 얼굴들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 아, 이제 여기서 종말의 유언들이 이어지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괜히 왔다. 비 오는데 집에서 TV나 볼 걸 그랬어. 그때 S 씨는 무겁게 입을 뗐습니다.
“저희 회사는 코로나 이후로 계속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데요. 회사에 나오지 않고 집에서 몇 달째 근무를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래서요?
“너무 좋아요…”
“……”
파하하하 하고 먼저 웃은 게 누구였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저였을지도 모릅니다. 이어지는 또 다른 S 씨의 의견은 이러했습니다.
“저는 보기 싫은 사람이 보자고 연락 오면, 코로나 이후에 보자고 할 수 있어서 좋던데…”
“아…!”
그 이야기에 탄식을 터뜨린 건 거기 있는 대부분이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저는 걸핏하면 술이나 한 잔 하고 불러 내선, 계산할 때가 되면 전화를 받으러 나가 돌아오지 않는 L을 코로나 이후로 보지 않았어요. 그뿐인가, 때 되면 오라고 사람을 불러 대는 각종 모임들. 막상 나가면 회비며 뭐며 돈만 잔뜩 걷어 놓고 그 돈은 다 어디로 갔나 싶은 형편없는 음식과 판에 박힌 듯한 코스. 뜬구름 잡는 인간들의 일장 연설들을 듣지 않은지도 한참 됐죠. 그런 것들은 대부분, “코로나 이후에 보자”라고 하면 원만하게 물리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대로 모임이 지연되다 총무들의 전화기가 어디 변기에 라도 확 빠져서 내 전화번호가 영원히 잊혀진다면, 코로나에게 조금은 감사할 바가 있겠습니다. 하여간 그 날 코로나가 바꾼 나의 일상이란 주제에서 나왔던 이야기는, 의외로 나쁘기만 한 일들은 아니었어요. 재택근무 때문에 집에서 일하게 되어, 온 가족이 한 시도 떨어지지 않고 복닥거리며 지내고 있어 스트레스가 쌓인다는 K 씨의 이야기는 다소 동정이 가지 않을 수 없었지만.
물론 코로나는 농담으로 삼기엔 21세기의 초입에서 인류가 만난 첫 번째 전 지구적 재난에 가깝습니다. 이것을 첫 번째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미 인류가 이런 식의 지독한 위기를 수도 없이 겪으며 역사를 만들어 온 종이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위기 뒤에는 흐름이 뒤바뀌는 변화가 있었죠. 그건 역사에서 쉽게 사례를 찾을 수 있어요. 빙하기에서 살아남은 인류가 불을 발견하고, 몇 백 년이나 이어진 흑사병이 종식된 뒤 르네상스가 왔고, 유례없이 참혹한 세계 대전 이후 사회주의의 실험이 찾아오는. 인류가 겪은 위기 뒤엔 언제나 비약적인 문명의 진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21세기에는 그 보다 더 위험하고 예측할 수 없는 많은 위기를 직면하며 살아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착실하게 질병을 정복해 가고 있다고 믿어 왔던 우리에게 이 바이러스가 안겨준 재앙적인 피해는 단순히 치사율로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파괴되었고, 많은 국가의 사회 시스템이 무력하게 멈춰 섰죠. 서로 만나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이제 괴물이 된 인터넷의 사회 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맹렬하게 반목하고 대립하곤 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통해 우리는 이것이, 그간 생각하지 못했던 미래적인 재앙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인류가 그저 지구에서 살고 있는 종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지구의 입장에선 인류 그 자체가 시스템을 교란하고 있는 재앙이라고. 확실히 그런 면이 있죠. 너무 많은 자원을 소비하고, 많은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으며, 인류라는 단일 종의 증가 속도는 나날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자연이 가진 본래의 기능이 서로가 상호작용하도록 유도하며, 서로를 견제하고, 균형을 맞추는 것인데. 이 에코 시스템에서 인류는 나무랄 데 없는 교란자로서 지위를 갖고 있어요. 종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인류의 천적이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바이러스 일지도 모릅니다. 인류는 거대한 것에는 능숙히 맞서 싸우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것 들과의 싸움에선 늘 서툴렀으니까요. 게다가 이 천적은 우리가 그들에게 적응하면 재빨리 변이 하여 끊임없이 우릴 위협할 수 있게 디자인되었죠. 바이러스는 인간이라는 위협을 상쇄하기 위한 지구의 면역체계. 인간 입장 에서야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서운할 수 있겠지만, 작년에 물난리로 오른 고춧가루의 값을 지불하며 이것이 어느 정도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21세기에 이러한 범 지구적인 재난을 언제든 다시 맞이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인류는 아직 지구에 살고 있고, 그 지구의 에코 시스템을 파괴하는 행위 역시 지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한 혼란과 거기에서 파생되는 비극이 얼마나 많을지 지금으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겠지요. 반면에 좋은 변화들의 징후도 함께 보이고 있습니다. 흑사병 이후 위생이란 관념이 생겼던 것처럼, 최근 코로나 이후의 위생 수준은 이전과 비교할 수도 없이 상향평준화되고 있죠. 또한, 지구와 균형을 되찾아야 한다는 관점이 많은 분야에서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증권 시장에서는 이제 기업이 얼마나 친환경적인 성장을 이뤄가는지를 중요하게 평가합니다. 전 세계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내연 기관의 생산 중단 시기를 발표하며, 서울시에서는 35년까지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차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겠다고 공표했고, 테슬라의 CEO인 엘론 머스크는 화성에 인류를 이주시킨다는 공상과학 같은 프로젝트를 의욕적으로 추진합니다. 가끔 이런 변화들을 보며 자문합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이 모든 변화들이, 이렇게 빨리 가능했을까? 저는 아닌 것 같거든요. 그리고 이런 변화들이 또 어디로 향하게 될지는 누구도 정확히 알지는 못 할 겁니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어요. 코로나는 이것을 무엇보다도 앞당겨 왔습니다.
어차피 정확히 알 수 없다면 최근의 배운 교훈들을 되새기며, 변화에 너무 많이 휩쓸려 가지 않도록 중심을 지켜내며 살아갈 수밖에 없겠죠. 물론 지금 쓰잘데기 없는 모임 같은 건 나가지 않아서 썩 나쁘지 않지만, 이대로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주 앉아 속 편히 술 한잔 하지 못 하는 건 영 마음에 드는 일이 아닙니다. 코로나로 대부분의 나쁜 일과, 약간의 좋은 일이 있었고. 이제 1년이 넘어가는 그 혼란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어영부영 지내고 있습니다.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장래에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이런 꼴로 계속 지구에서 지내긴 인류가 무절제했던 편이라는 건 확실해졌고요. 지구의 구성원으로서 지속 가능성, 인류는 이미 그 거시적인 노력을 시작했어요. 인류가 할 노력이 있으면 개인이 해야 할 노력들도 있겠죠. 앞으로 계속될 바이러스와의 싸움을 조금이라도 우위로 가져가기 위해 손을 깨끗이 씻고, 공공 위생을 조금 더 신경 쓴다든가, 지구 에코 시스템을 복구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에 협조를 아끼지 않는 것 같은 일이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오늘 글의 결론에서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마 반드시 그럴 거라 생각하지만) 앞으로 살면서 몇 번이나 이런 재난이 또 온다고 해도, 전에 없던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 순간들이 온대도. 저를 포함한 모두가 그게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낙관을 가지게 되길 바랍니다. 옛날에도 그랬고, 언제나 그렇듯. 우리는 어둡기만 한 길을 걷고 있는 게 아니라, 살아보지 못한 미래를 향하고 있는 것일 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