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의 어느 일요일 오후 나는 광화문 교보문고의 J 섹션 ‘새로 나온 에세이’ 코너에 있었다. 한국 도서 시장을 패션 신이라 치면 교보문고 광화문점 ‘새로 나온 에세이’ 코너는 패션 스냅에 한번 찍혀보려는 패피 워너비들의 각축장이다. 많이 모여 있으면 경향이 보인다. 여기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한국 출판 시장의 한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요즘 에세이 제목을 보면 궁금해진다.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작가는 아이인가?), 〈우린 한낮에도 프리랜서를 꿈꾸지〉(밤에는 안 꾸나?), 〈나라는 식물을 키워보기로 했다〉(전에는 안 키웠나?)…. 궁금해지는 제목을 만드는 건 좋은 일이니까 이것도 대단하다. 다만 보다 보니 왠지 조금 피곤해졌다. 피로를 피해 옆 칸으로 갔다. 옆 칸 J4는 ‘에세이 베스트’와 ‘에세이 스테디’다. 여기야말로 한국 에세이계의 명예의전당, 갤러리아 이스트, 신세계 강남점, 롯데월드타워 에비뉴엘이다. 이쪽에 있는 책들도 대단하기가 만만찮았다. 〈그게 너였으면 좋겠다〉 〈어린이라는 세계〉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엉망으로 살자〉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나는 코첼라 헤드라이너 모음 같은 이 책들의 제목을 보며 내가 낸 책 세 권을 떠올렸다. 에세이 시장의 치열한 경쟁을 이기지 못하고 〈쇼미더머니〉 1차 탈락처럼 사라져버린 내 책들을. 실은 나도 J1 에세이 코너 ‘새로 나온 에세이’에 내 책을 비치한 적이 있다.
제목도 앞서 말한 것들만큼 만만치 않았다. 〈잡지의 사생활〉 그리고 〈우리가 이 도시의 주인공은 아닐지라도〉(이하 〈우도주〉), 〈첫 집 연대기〉. 이 책들을 아시는지? 셋 중 한 권이라도 사봤다면 당신은 한국 소비자 2만5천분의 1이다. 3권 중 2권은 체면치레하듯 겨우 2쇄까지 찍었다. 1권은 1쇄만 냈다. 3권 모두 ‘에세이 베스트’나 ‘에세이 스테디’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거의 모든 책은 출간 전 어느 섹션으로 분류할지에 대한 고민을 거친다. 내 경우는 4권의 책 중 3권이 한국 에세이로 배치됐다. 나는 그걸 원치 않았다. 한국 에세이 시장의 분위기는 내가 책을 낼 때도 비슷했고, 내 책은 한국 에세이 시장의 주류와는 많이 달랐다. 지금도 나는 그때 내 책들을 에세이라 여기지 않는다.
〈잡지의 사생활〉은 개인 단위에서 본 한국 잡지업계라는 저널리즘의 한 분파에 대한 개인 체험과 분석이었다. 〈우도주〉에는 대학 논문의 참고 자료로 쓰인 분석 기사가 포함돼 있다. 〈첫 집 연대기〉 역시 내가 나 스스로를 취재원 삼은 논픽션에 가깝다고 여겼다. 그러나 저자는 출판 프로젝트의 일원일 뿐, 최종 결정은 출판사의 몫이고 책임이다. 출판사가 제목과 장르를 정해 대입 눈치 경쟁을 하듯 특정 카테고리에 등재한다. 그 결과 나는 에세이 3권 저자가 됐다. 〈우도주〉의 경우가 흥미로웠다. 이 책의 출판사는 공전의 히트작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를 낸 곳이다. 이 책을 낸 곳과 같은 팀에서 내 책이 나왔다.
나는 그 책이 도시 생활에 대한 분석과 관찰기라 생각했으나 해당 회사 마케팅 팀은 이 책의 장르 자체를 헷갈려했다. 책의 방향을 정하기 위해 맨 앞에 나름 감성을 꺼내보려 노력한 에세이를 만들어 넣고 〈우리가 이 도시의 주인공은 아닐지라도〉라는 제목을 붙였다. 어떻게 만들어지긴 했고, 출판사분들이 고생해주셨고, 그 모두가 고맙지만 내 기호에 비췄을 때 마음에 드는 제목은 아니었다. 저자가 만족 못 하고 출판사가 이해하지 못했던 책이라서였을까? 책은 흥행하지 못했다. 그때 기억을 데이터 삼아 교보문고 에세이 코너에 가니 내 책이 왜 잘 안 됐는지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너무 달랐다. 제목, 디자인, 하다못해 표지 색깔까지. 속도 달랐다. 소재와 주제와 세계관까지도 다 달랐으니 내 책이 에세이 시장의 새벽 서리처럼 사라진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교보문고 에세이 코너의 책들에는 제목과 디자인부터 공통점이 있었다. 우선 표지 배경 색이 파스텔 톤 혹은 녹색이었다. 9월 12일 기준 교보문고 광화문점 ‘에세이 베스트’ 코너 정면에 있던 책 20권 중 6권이 표지에 녹색을, 6권이 파스텔 톤을 썼다. 대표적인 경우가 양희은의 〈그러라 그래〉와 요즘 인기인 〈어린이라는 세계〉(이 둘은 표지에 귀여운 일러스트를 넣었다는 점도 같다). 파스텔 톤계의 에세이들도 만만치 않다. 이슬아와 남궁인의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 그리고 〈그게 너였으면 좋겠다〉가 따뜻한 느낌의 파스텔 톤을 썼다. 감성 에세이계의 ‘강남스타일’이라 할 만한 〈언어의 온도〉를 쓴 이기주 작가의 신작 〈마음의 주인〉도 파스텔 톤이다. 존슨즈 베이비 로션이 생각나는 베이비 핑크. 이러한 제목과 디자인은 철 가루가 자석으로 향하듯 비슷한 곳으로 향한다. 당신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귀엽고 무해한 톤으로 속삭이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신작 에세이 제목에도 드러난다. 〈이 정도면 충분한〉 〈아무것도 모른 채 어른이 되었다〉 〈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 〈마음의 일렁임은 우리 안에 머물고〉 같은 책들은 제목만 봐도 귀에서 특정한 음악이 울리는 듯하다. 호텔 스파에서 잠들라고 틀어두는 느린 박자의 라운지 음악 같은 것. 이런 글로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지. 내용도 대체로 한결같다. 에세이니까 평범한 경험이 많다. 누구에게나 공감을 이끌어내려면 역시 평범한 경험이 좋을 것이다. ‘일상의 단편’ 역시 에세이의 주 내용이다. 최갑수의 〈오래전부터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는 아예 부제부터 ‘시인이 보고 기록한 일상의 단편들’이다. 아래에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나면 여행할 기회가 찾아온다”는 말이 손 글씨로 적혀 있다.
나는 현실에서 원고를 팔며 생계를 유지하는 고만고만한 저자인지라 이런 말을 보면 궁금해질 뿐이다. 오래전부터 이렇게 말하고 싶었으면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는지. 여행할 기회가 남아 있다는 건 아직 별걸 잃지 않은 건 아닌지. 내가 극세사 이불처럼 섬세한 시적 표현을 이해하기엔 너무 닳아버린 거겠지? 문장도 비슷하다. 요약하면 세공된 잠언이다. 누구나 공감할 잠언에 가까운 내용이 몇 가지 방법으로 아름답게 표현돼 있다. 방법론은 크게 둘이다. 1) 남다른 단어 2) 긴 설명. 남다른 단어를 쓴 경우는 이기주 작가 신작 〈마음의 주인〉에서 볼 수 있다. 그는 ‘실컷 듣고 싶다’는 뜻의 말이 있다면서 ‘귀고프다’라는 표현을 썼다. 우리는 늘 귀가 고파서 이런저런 말을 듣지만 내 편이 되는 말로만 살라는 말이 이어진다. 긴 설명의 한 예는 감성 에세이계의 에드 시런, 글배우(본명 김동혁) 씨다. 글배우 씨는 전자신문 기사에서 “제가 생각하는 글은 스스로의 방향성과 치유를 위한 것으로, 작성하는 그 순간보다는 그에 다다르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라 말씀하셨다.
방향성, 치유, 순간, 노력, ‘다다르다’라는 동사 사용, 보통 세공이 아니다. 문장이 티셔츠라면 이 문장은 비즈로 가득한 쥬시꾸뛰르 티셔츠 같다. 세공된 문장으로 세상에 지친 독자를 위로하는 에세이계의 유행이 큰 문제라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쉽게 읽으며 위안을 얻을 책도 필요하다. 다만 도서 시장 공급자들이 좀 더 사려 깊어서 더 입체적인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를 만들어줘도 좋을 것 같다. 동시에 지금 이것이 한국 출판 시장 공급자들의 최선 같기도 하다.
나는 지친 채 남 탓하는 출판업자들을 많이 봤고, 그런 경향이 출판물에도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다른 걸 떠나 에세이 시장에서 실패한 저자 입장에서 나는 이 모든 저자들을 존경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기주 작가처럼 베이비 핑크 표지의 잠언집을 낼 용기와 ‘귀고프다’ 같은 말을 찾는 근성이 없다. 글배우 작가의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했다”처럼 마음을 울리는 카피를 만들 능력도 없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비꼬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나는 진지하다. 이분들과 함께 놓이기에 난 너무 모자란다.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걸 하는 분들께 아낌없는 응원을 보낸다.
다만 서점을 나서는 길에 그런 생각은 들었다. 이게 과연 독자를 위하는 책일까? 독자에게 달콤한 이름의 현실도피만 권하는 것 아닐까? 압축하면 ‘힘내라’는 세 글자로 끝날 말을 1만7천원짜리 인쇄물로 불리고 비닐 커버를 씌워 파는 건 아닐까? 이거야말로 싸구려 중독 물질이 들어간 싸구려 술처럼 독자를 위하는 척하며 기만하는 얄팍한 위로의 잠언 아닐까? 만에 하나 당신도 이런 생각이 든다면 내 책을… 아니, 농담이다. 대신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추천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수용소에 갇혔다가 겨우 살아난 유대인이 쓴 에세이다. 이들은 주변 사람들이 허무하고 억울하게 죽어나가는 상황에서도 존엄과 유머를 잃지 않았고, 이 책은 전 세계인에게 수십 년째 큰 감동을 주었다. 이 책도 교보문고 ‘에세이 스테디’ 코너에 있다.
4가지 키워드로 정리한 한국형 감성 에세이 쓰는 법.
1. 아무튼과 어쨌든
‘아무튼’, ‘어쨌든’ 같은 말을 써라. ‘아무튼’이나 ‘어쨌든’은 A 문장과 B 문장이 잘 이어지지 않을 때나 쓰는 돼지표 본드 같은 단어다. 그러나 세상에 쏙 연결되는 문장이 얼마나 있겠어? 당신 감성이 소중하니까 ‘아무튼’ 같은 말을 어쨌든 써라.
2. 엄마 생각
엄마 이야기는 감성 에세이계의 자원의 보고다. 모든 엄마는 고생을 했으니까. 엄마와 싸우고, 엄마와 여행 가고, 엄마와 연대하고, 엄마와 이해하는 이야기라면 기본은 간다. 이모나 고모나 할머니나 옆집 할머니도 되지만 아빠는 안 된다.
3. 울기, 화내기, 아니면 화나서 울기
자신이 살면서 겪은 억울한 일이나 불공평한 일들을 떠올려라. 누구에게나 그런 일들이 있고 세상은 그런 일들을 극복한 사람이 발전시켰지만 그런 건 아무 상관없다. 중요한 건 당신 감정이니까.
4. 우기기
인류의 역사는 수많은 실패와 슬픔의 역사인 동시에 긍정과 극복의 역사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것도 아무 상관없다. 그냥 지금 당신이 슬프고 속상하고 억울한 게 중요하니까 무조건 우겨라. 드세게 우기는 기세가 가장 중요하다. 한국은 기세의 나라니까.
글 박찬용(‘앤초비 북 클럽’ 운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