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마음이 생겼던 게 언제였더라. 뭐라 해야 할까 고민 끝에 겨우 입 밖에 떨어진 말이 사랑해-였던 때가 있었다. 달리 간결하게 표현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는데. 내 말이 너무 짧아 네가 실망하진 않을까 눈치를 살폈던 시절. 고백이라고 했던 말이 “나랑 같이 있으면 재미있는 거 많이 보여줄게”라고 기도 안 차는 소릴 하던 21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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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몰라서 그랬다고 하기엔 너무 많은 실수와 이기심이 우리를 박살 내던 순간에도, 그땐 그 애의 마음이 내게서 떠나가고 있는 것조차 몰랐다.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거라 믿었던 네가 나 말고 다른 남자라던가, 받지 않는 전화라던가, 널 좋아하지만 이제는 그만두고 싶다- 같은 있을 수 없는 단어들을 말했을 때. 내가 미안해 다 잘못했어 나한테 이러지 말라 말하며 되돌리고자 했던 건 사랑한다고 말하던 그 빛나는 순간을 잃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내게 그토록 빛나던 사랑이 시궁창 같은 치정으로 끝났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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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해주고 싶었는데 어떻게 잘해줘야 할지 몰랐다. 좋은 건 다 주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너무 능력이 없었다. 그저 내가 널 이렇게 사랑하니 내게 좀 더 최선을 다 하라고 돼먹지 못하게 다그치곤 했다. 너의 모양대로 일그러진 굴곡에 너 이후 내게 온 사람들은, 죄 없이 참 많은 시간을 힘들어야 했다. 실패에서 배운 것 들이라고 여겼던 그 강박을 결코 떨치질 못 했다. 음악을 좋아했던 네가 남긴 우리의 시절이 흘러나올 때면, 아직 널 그리워한다고 하기엔 헤어진 지 너무 오래되었고, 아무렇지도 않다 말하기엔 너무 생생했다. 원망하기엔 함께 했던 시간이 나를 후려쳤고, 그 시절에 감사하다고 말하기엔 마지막이 너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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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내게 필요했던 날들이었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라, 주머니에서 자꾸 꺼내보던 그 자갈은 내 손에 닳아 자그마한 돌멩이가 돼 갔다. 여전히 네가 쓰던 샴푸의 향기와 고양이의 냄새, 함께 듣던 멜로디를 들으면 어쩔 수는 없지만, 너의 이름을 꺼내며 놀리던 친구에게 웃음으로 답하던 스스로를 발견했을 때. 널 잊으면 잃을 줄 알았던 계절들이 비로소 내게 화해하자 이야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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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한 일을 매번 반복하고, 맨 정신으로 못할 이야기를 매일 주고받고, 친구들이 봤다면 10년은 병신이라 놀릴 일을 되풀이했던. 누군가를 위해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그때의 나를 가끔은 그리워하겠지만. 그렇게 우리의 그 시절은 내게 영원으로 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들어줄 너는 이미 예전에 내게서 떠났지만. 이제 안녕. 내가 사랑한 사람이 날 사랑해 준, 운이 좋았던 나의 첫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