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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란 Jan 08. 2024

진짜 외국이 되었다

큰아빠 02

지난 학기에는 ‘문학의 이해’라는 과목을 들었다. 인생은 살기 어렵고, 문학은 이해하기 어렵고, 시도 쉽게 써지지 않았지만 상허() 이태준(李泰俊)을 알게 되었다. 단정하면서도 헛헛한 그의 문장들이 나는 좋았다. 그래서 그의 수필집 <무서록>을 중간 레포트 주제로 골랐다. 


추석이 지나면 중간 과제물 제출기간이었다. 마감이 몰려 신경이 몹시 곤두서있었다.


그때였다. 부고 문자가 온 것은. 마지막 만남이 2개월 전인데 그때 조금 야위어 보이시긴 했어도 순조롭게 회복 중이시라고 느꼈는데…


저녁에는 장례식에 가야 한다. 고도의 집중력으로 완성한 리포트는 제법 괜찮았다. 하지만 맥용 한컴독스의 저장 오류로 다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복구가 어렵다고 했다. 힘과 눈물이 같이 빠져나오던 몸과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왜 이렇게 돌이킬 수 없는 게 많은 거야. 


장례식장은 집에서 한 시간 반 거리였다. 정문으로 들어가 왼쪽 복도 끝에 있는 빈소로 걸어가며 나는 큰아빠의 고향이 여기가 아닌 것과 자녀가 아들 하나뿐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너무 썰렁하지는 않을까. 하지만 빈소를 가득 메운 조문객들을 보니 눈물이 났다. 세상 돈으로만 사는 것 같아도 진실함이 우선이라고 하시더니 열매를 맺으셨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돌보고 살아오셨구나.


그런데 큰아빠, 이제 여긴 저에게 진짜 외국이 되었어요. 


큰아빠가 의식이 흐려지기 전에 마산에도 가보고 싶고, 당진에도 가서 애들도 봐야겠다며 몇 번이나 신발을 신으려고 하셨어. 큰아빠 좋은 데 가셨을 거야. 왔으니 먹어. 많이 먹고 가. 


울면서도 떡과 수육을 욱여넣었다. 살아 계실 때 만나면 먹을 것을 너무 많이 차려 주셔서 입이 짧은 나는 부담스럽기도 했었다. 그것도 다 정이었군요. 음식으로 표현하셨던 거군요. 그래서 많이 먹었다. 


<무서록>에 이태준이 독자가 소장하고 있다가 보내준 서해() 최학송()의 자필엽서를 보고 기뻐하는 장면이 있다. 얼마나 눈부신 소식이냐고, 얼마나 서해 형이 선명히 살아 있느냐며 내내 헛헛해하는 것 같던 그가 경탄한다. 돌아오는 길에 휴대폰을 열어보았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보내신 문자가 마지막이다. 


요즘잘지내지애들은건강하고고생한다연락을자주못해서미안하다 화이팅


띄어쓰기도 없는 숨 가쁜 문장에 큰아빠의 숨이 들어있다. 선명하게 살아있었다. ‘살이’에 지쳐도 진실하게 살라고 하셨지요. 나는 그 말을 잊지 못하겠지요. 하지만 지금 여기는 텅 빈 것 같아요. 아무 누구라도 살아서 와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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