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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란 Jun 28. 2024

막내 누에

막내 걱정

자원봉사 중인 유치원에서 누에를 기르게 되었다.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어서 신기했다. 누에는 4마리. 올 가을쯤이면 번데기가 되고 겨울을 지나면 나방이 되겠거니 했는데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다. 유치원으로 이사 온 지 20일 정도 만에 채집통 한쪽 모서리에 줄줄이 만들어진 고치 세 개. 통성명도 못했는데 갑작스러웠다. 괜스레 서운했다. 죽은 것도 아닌데.


누에도 남의 집 애들이라 그런지 빨리 크네.


미처 변하지 못한 한 마리는 반대편에서 우물우물 뽕잎을

갉아먹고 있었다. 혼자 남아서 어떡하냐고 어린이들도 한 마디씩 거든다. 남은 누에는 막내 누에일까.  번데기에서 나온 누에나방은 그날 짝짓기를 하고 다음 날 알을 낳고 4-5일 안으로 죽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저 누에들은 엄마가 없이 크고 있는 셈이다. 이제 겨우 키 1미터 넘은 우리 집 막내 생각이 난다. 우리는 사람이라 막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나는 건강해야 하는데...


먼저 만들어진 고치가 있는 쪽에는 더 만들 자리도 더 없는데 혼자서 뚝 떨어져 다른 쪽 모서리에다가 고치를 만드려나. 초조한 하루를 세 번 보낸 후, 누에가 보이지 않고 고치도 세 개뿐이어서 무척 놀랐다. 조심스레 채집통을 돌려보니 뽕잎사이에 고치 하나가 만들어져 있었다. 이불을 덮고 누운 것 같다. 막내 누에가 먹다가 잠이 들었을까,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먹다가 하얀 고치가 되었다 생각하니 구름 속에 사는 신선이야기 같다.

아이들 어렸을 때부터 조금씩 가르치던 집안일도 위로 누나와 형이 셋이다 보니 막내에게까지는 할 일이 돌아가지 않을 때가 많다. 나는 못한다고 형들 뒤에 숨기도 한다. 배우는 것이 느려 보이기도 해서 걱정이다. 나는 막내로 살아보지 못해서 저래도 되나 걱정이 앞서지만 부모와 오래 함께 못하는 막내가 인생의 조력자를 얻은 것이라 여겨보기로 한다.


그리고 또다시 나, 잘 읽혀지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들만 내 속에 가득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라도 써야 할 때가 있다는 운명의 실이 팽팽하게 느껴진다. 꾸준히, 끝까지 가보기. 태어난 김에 행복하기. 행복이 무언가 고민할 생각에 떡볶이 한 접시 더 먹기. 나이키가 말했다. 저스트 두 잇이라고. 나도 두두두두두 해봐야지. 누에가 실뽑듯이!


누에도 고치 속에서 나방이 되어서 나왔으면 좋겠다. 다시

만나면 산으로 날려 보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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