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밥이라고, 나무 꼭대기에 남겨 놓은 열매를 새가 정말 먹는지 몹시 궁금했다. 개인 소유의 과일나무는 없으므로, 바깥에 내놓은 화분 위에 대봉감 하나를 얹어 놓았다. 누군가가(!) 감을 쪼아 먹은 흔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며칠 더 지켜보니, 까치와 직박구리가 번갈아 쪼아 먹고는 후다닥 날아갔다. 그 후 세력 다툼이 있었는지 대봉감은 직박구리의 차지가 되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직박구리가 까치와도 싸워 이긴다고 한다.) 새들의 감각이 어찌나 예민한지, 베란다 창문도 열지 않고 곁눈으로 지켜보는데, 어른거리는 그림자에 놀라 날아가버렸다.
서운한 마음도 잠시, (나 혼자 내적 친밀감이 깊어졌던 모양) 잘 먹는 존재들은 모두 귀여우니까 사과도 하나 놓아주었다. 사과를 좋아하는지 슬쩍 다가가서 사진을 찍는데도 날아가지 않고 계속 먹었다. 그렇게 직박구리들이 먹은 대봉감이 여섯 알, 사과는 두 알이 되자, 창문을 열어놓고 청소기를 돌리는데도 도망가지 않고 나를 보고 짹짹거렸다. 혹시 인사? 신뢰 관계(?)가 형성된 듯하여 뿌듯하기까지 했다.
너희도 겨울이라 먹을 것이 없어 힘들겠구나.
많이 먹어라.
문득, ‘먹이’에 독을 타는 것이 정말 몹쓸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치 못할 상황도 있지만, 동물을 잡으려 먹이로 유인하고 독을 타는 일은 기본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 같다.
사람에게 ‘먹을 것’은 밥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정규직 전환’ 일 수도 있고, ‘밀린 월급 지급’ 일 수도 있으며, ‘전세금 반환’과 같은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때때로 희망이 더해진 ‘먹을 것’으로 남의 생명을 쥐고 흔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지나가는 새의 먹을 것까지 걱정할 수 있는 ‘사람의 힘’이 보이지 않는다.
(정규직 전환과 합당한 대우를 약속하고) 고졸 사원을 뽑아 대졸자의 업무를 맡기면서도, 그에 걸맞은 월급을 주지 않았던 것, 자신의 커다란 실수를 정규직 전환이 좌절되어 퇴사하는 계약직 직원에게 덮어씌운 것을, ‘가성비 어쩌고’ 하며 자랑하는 지저귐 속에서 나는 언어를 잃고 직박구리가 되어 그들의 머리를 쪼는 상상을 했다.
이제 막 사회로 나온 사람들 밥상을 엎으니 좋더냐?그렇게 지켜낸 자리에 앉아 먹는 밥 잘 넘어가더냐? 인간이라면, 밥에는 독을 타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