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꽁냥 Apr 30. 2016

당신에게 보내는 안부 #04

의미 부여는 적을수록 좋은거니까

의미 부여는 적을수록 좋은 거니까. 아마 저 문장 그대로 말했던 것 같다. 여행 준비는 하고 있냐고 물어보던 친구의 질문에 꽤나 쿨한 척하며 답했다. 쿠바로 향하는 왕복 비행기 티켓 이외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게으름에 대한 그럴싸한 핑계였다. 애초에 어딘가로 향하고자 하는 능동적인 욕망이 아니라 지긋지긋한 과제 더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수동적인 시작이었다. 무기력하고 초조하게 떠나는 날만을 헤아렸고 거기에 대해 어떤 죄책감이나 그런 걸 느낄 심리적 여유 따위 있을 턱이 없었다. 그렇게 당장 그날 묵을 숙소 예약도 못한 채 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변명을 좀 하자면, 나는 맨얼굴을 보고 싶었다. 올드카, 살사, 시가, 커피, 허밍웨이. 쿠바 하면 줄줄 엮여오는 단편적 이미지들, 혹은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라는, 그런 거 전부 떼고. 그냥, 쿠바.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엔 어차피 나는 그곳을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얼마간의 허세 혹은 치기 어쩌면 아마 그 둘 다에 해당할 뭔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반 년 넘게 지낸 멕시코도 여전히 모르겠는데 고작 열흘로 뭘 알아. 그냥 열심히 보고 재밌는 건 나중에 찾아보든가 해야지, 싶었다.    

  

누군가를, 뭔가를, 어딘가를 알아간다는 건 결국 자기만의 의미부여를 한다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지 모른다. 누군가의 키, 몸무게, 혈액형, 생일. 어딘가의 수도, 인구, 역사, 정치 체제, GDP. 그런 객관적 정보들과 자신의 주관적 느낌 어딘가 사이를 헤매며 제각각 자신만의 언어로 자기만의 ‘사전’을 채워 나가는 것. 착한 백설공주, 나쁜 계모, 이렇게 모든 것이 분명하고 확실했던 어렸을 적엔 나의 사전과 다른 사람의 사전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 사전과 당신의 사전이 다르고 그래서 점점 더 확신할 수 있는 게 줄어드리라는 건 예상할 수 없었던 때였기에 좀 더 자라면, 좀 더 배우면, 나중엔 좀 더 많은 걸 알 수 있으리라는 순진한 믿음을 가졌더랬다.     


나는 내 사전의 ‘쿠바’라는 항목을 열성적으로 채워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다. 쿠바, 라고 크게 제목만 써넣고 백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열흘 내내 나는 불성실하고 열의 없는 여행객의 태도를 고수했다. 게을렀단 소리다. 정해진 일정도, 일행도 없으니 정말 한껏 해이했다. 그렇기에 다녀와서 쿠바에 대해 무엇을 아느냐고 물으면 그다지 해줄 말이 없다. 내 사전의 쿠바 칸에 남은 건 크게 두 가지 정도다. 사소하게는 랍스터가 엄청 맛있었다거나 그런 것도 있지만, 어쨌든 크게 두 가지. 쿠바에서의 밤과 아바나 비에하의 골목들.    

  

밤이라는 단어에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나는 카톡조차 안 되는 그곳에서 철저하게 혼자였으니까. 내 게으름을 약간 정당화해보자면, 쿠바는 –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 멕시코보다 꽤 비쌌고 많이 더웠다. 무엇보다도 치명적이었던 건, 멕시코보다 2시간이 빨랐다는 거다. 가뜩이나 늦게 자 버릇해서 나는 쿠바에서 늘 3시나 4시 사이에 자서 10시쯤에 느지막하게 일어났다. 딱히 더 일찍 자겠다는 생각도 안 들어서 늦은 새벽까지 책을 읽거나 영화나 드라마를 봤다. 내키는 대로 골랐기에 일관성은 없었다. 제리 맥과이어, 리갈 하이, 매직 인 더 문라이트, 밀크, 최고의 사랑, 프리 헬드, 메종 드 히미코, 루시아, 건축학개론, 치코와 리타, 다크 나이트, 캡틴 아메리카. 허니와 클로버, 노다메 칸타빌레, 러브 콤플렉스, 캐롤, 표백, 댓글 부대, 리틀 브라더, 키스 앤 텔, 사피엔스, 에로스의 종말. 후덥지근한 밤, 온몸에 축축 감겨오는 더위, 몸에 걸친 거라곤 달랑 팬티 한 장, 끈적하게 들러붙던 새파랗고 찐득한 밤공기, 가라앉는 고요함, 지독히도 혼자였던 것. 그런 것들이 꽤 뚜렷하게 남았다.      


아바나 비에하의 골목길들. 소란스럽고 어지럽고 그다지 깔끔하지 않은 골목. 어느 골목은 화사하게 햇빛이 들면서 관광객들이 가득했고 어느 골목엔 꼬마애들이 축구공을 쫓아 우르르 몰려다녔고 또 그 바로 옆골목에선 호객행위를 하는 아저씨들의 목청 좋은 소리와 창문마다 널린 빨래가 공중에서 푸드덕거렸다. 나는 그 골목 어딘가 카페에서 맥주나 커피를 옆에 끼고 책을 읽거나 밀린 일기와 편지를 끄적였다. 아바나 비에하는 묘하게 향수를 자극하는 곳이었다. ‘묘하게’라고 말하는 이유는, 향수는 한 때 가졌지만 잃어버린 것에 대해 느끼는 감정일 텐데, 그곳에서 느꼈던 향수는 가진 적 없는 시절 혹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어느 날을 떠올리게 하는 것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느꼈던 이유는 내가 그곳에서 줄곧 당신을 떠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당신과 그곳에 온 적도 없었고, 그곳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도 없었다. 단 한 번도 와보지 못했던 곳에서 앞으로 단 한 번도 보지 못할 당신이 그림처럼 떠올랐다.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것을 잃어버렸다 되찾은 것 같은 감각, 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의 정체는 무엇을 그리워하는지조차 분명하지 않은 그리움이었다. 그럭저럭 시간이 흘렀고 당신은 내가 그때 알던 당신이 아니고 나도 당신이 그때 알던 내가 아닐 텐데, 당신이 그리운 건지, 그 시간이 그리운 건지, 그 때가 그리운 건지, 누군가가 나를 안아주던 그 감각이 그리운 건지, 그 어느 것도 분명하지 않은 막연한 그리움은 결국 감상에 젖은 청승, 과한 의미부여에 불과할 텐데, 떨쳐내기가 힘들었다.      


죽었다 깨어나도 나만의 세상을 벗어나진 못할 테니 평생 그 안에서 혼자 살아가겠다는 식의 중2병 앓을 나이는 지났지만, 비록 우리의 결말이 좋지 않다 하더라도 당신과 함께했던 시간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 있다고 말할 만큼 성숙하지도 않은 나는 여전히 내 사전에서 당신을 빼지도 못하고, 깔끔히 정의 내려 마무리 짓지도 못한 채 헤매는 중이다. 그 모든 시간들은 무엇이었을까, 없었던 것 마냥 살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적절한 의미부여도 하지 못한 채, 어영부영, 그렇게.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도망간 곳에서 당신이 내내 떠올지만, 당신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는 순간, 이제껏 해온 모든 노력이 헛것이 될까 겁이 나서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렇다고 말끔히 당신 생각을 내려놓지도 못한 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도 못한 내 비밀을 그 골목에 그냥 조용히 묻어두고 왔다. 의미부여는 적을수록 좋은 거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모로코: 유쾌하고 다채로운 북아프리카의 보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