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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영 Apr 30. 2016

모로코: 유쾌하고 다채로운 북아프리카의 보석

사계절이 한날 한시에 존재하는 곳,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이 기다린다

"모로코? 거기 그레이스 켈리가 왕비로 있는 곳? 거기가 뭐가 좋다고 다녀와."

대부분의 첫 반응은 이랬다. 그레이스 켈리는 모나코의 왕비이고 모로코는 북아프리카의 알제리 옆에 위치한 나라라고 하면 "그 위험한 데를 왜 가? 거기는 테러 안나?"가 다음 질문이다. 


그레이스 켈리도 없고, 테러의 위협도 없다. 우리에게 그만큼 무지하고 먼 이 나라 모로코에는 대신 사계절이 한날 한시에 존재하고, 사막과 정글같은 숲과 폭포와 그림같은 해변이 모두 들어있다. 필자는 파리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으로 모로코까지는 여기서 비행기로 2시간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시험 하나를 후다닥 끝내놓고 부활절 휴가가 시작하자마자 비행기를 잡아타고 모로코로 10일간 여행을 떠났다. 금방이라도 알라딘이 날으는 양탄자를 타고 나타날 것 같은 도시 페즈(Fes)와, 황홀한 장관의 사하라 사막, 그리고 향긋한 향신료 냄새와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정이 도시를 가득 채우는 마라케시(Marrakech)로 짧았던 여행의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


알라딘의 도시, 페즈 (Fes)

페즈에 도착한 것은 밤 11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었다. 숙소가 있는 구 시가지 (Old Medina)로 도착했을 때에는 도시는 쥐죽은 듯 고요했고, 어두컴컴한 길에 간간이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남자였다. 친구의 추천을 받아 예약한 거처는 모로코 전통 가옥 형식인 리아드(Riad)를 개조해 만든 호스텔이었다. 리아드의 특징인 화려한 타일로 장식된 아름다운 중정이 제일 먼저 눈을 사로 잡았다. 

날이 밝아 본격적으로 구경을 시작한 페즈는 디즈니 영화 알라딘의 배경을 옮겨놓은 것 같은 작은 도시다. 4월의 페즈는 따스한 봄날씨와 따가운 여름 햇살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페즈를 구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작정 시장으로 들어가 길을 잃는 것. 실제로 나와 내 친구는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서 저녁 시간이 다 되어서야 겨우 미로같은 시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좁은 길에서 마주하는 당나귀들도 재미있고, 시시때때로 등장하는 눈부신 모스크들도 신비롭다. 모로코에서는 무슬림이 아니라면 모스크 안에 들어갈 수가 없지만 문 밖에서 기웃기웃 거리는며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눈은 호강 중이다.

머무는 3일동안 점심은 늘 시장 아저씨들이 맛있다고 추천해 준 Barrada Family Restaurant에 가서 먹었다. 우리나라 돈으로 오천원 정도의 가격에 푸짐한 타진(Tajine) 요리를 무한리필 빵과 함께 먹을 수 있는 곳이다. 들어오는 손님 모두 제일 먼저 부엌으로 안내를 받는데, 부엌 안에서 오늘 준비한 모든 종류의 타진들을 직접 맛 본 후 무엇을 먹을 것인지 고르도록 해 준다. 타진은 모로코의 전통 음식으로, 각종 야채와 고기류들을 텐트처럼 생긴 타진 그릇안에 넣고 푹 쪄낸 음식이다. 우리 나라의 갈비찜과 비슷한 식감을 생각하면 되겠다. 

페즈에서 길을 헤매는 동안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쇼핑! 페즈는 모로코의 원주민인 벨베르(Berbere)족이 만드는 카페트들과 가죽 제품들이 유명하다. 마라케시나 다른 도시에서 보는 카페트와 가죽 가방들도 거의 모두 페즈에서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류도 다양하고, 제작자에게서 직접 사는 형식이기 때문에 가격도 다른 도시들에 비하여 싸다. (물론 여행자의 흥정 능력에 많은 것들이 달려있긴 하지만) 나는 나의 작은 기숙사 방에 깔 예쁜 카펫을 직접 배틀로 짜는 할아버지로부터 샀다. 색과 디자인을 내가 직접 고르고 다음 날 완성된 카펫을 찾아가는 형식으로 만원도 안되는 가격에 알라딘의 양탄자보다 더 멋진 카펫을 장만했다.



끝없이 펼쳐진 황홀경, 사하라

페즈에서 사하라 사막이 있는 도시 메르주가(Merzouga)까지는 로컬 버스를 타면 8시간이 걸린다. 페즈나 마라케시에서 투어를 예약하면 미니밴이나 4WD로 이동하기도 하지만 비싼 돈을 지불할 뿐 걸리는 시간이나 여행의 질은 매한가지다. 나는 투어를 선택하지 않고 일정의 유동성과 비용의 절약을 위해 직접 가서 몸으로 부딪히는 방법을 선택했다. 페즈에서 밤 8시 버스를 타고 메르주가 옆에 있는 작은 마을 하슬비아드(Hassel Biad)에 도착한 것은 새벽 6시. 페즈에서 만난 친구에게 들은 호텔로 무작정 찾아갔더니 호텔 주인 4형제 중 맏이인 핫산이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우리에게 따뜻한 차를 대접한다. 그리고는 사막으로 낙타를 타고 나가려면 오후 4시나 되어야 하니 그때 동안 좀 쉬라며 궁궐같은 방을 하나 내어 줬다.

 호텔은 하룻밤 숙박이 8유로 정도밖에 안하지만 푸짐한 모로코식 아침 식사와 사막의 따가운 햇살을 식혀 줄 수영장, 그리고 깔끔한 개인 욕실이 딸린 방이 모두 제공된다. 사막의 공주가 된 기분으로 배불리 먹고 수영장에 누워 세월아 네월아 꿀같은 휴식을 취해본다. 

오후에 출발하는 사막투어는 낙타를 타고 끝없이 펼쳐진 사하라 사막을 두시간 정도 걸어 드높은 모래 언덕 위에서 지는 해를 감상한 후 노마드 족이 쳐놓은 텐트에서 모닥불에 만든 타진 요리를 먹고 노마드 족의 후손인 현지 가이드들과 함께 북과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다 별똥별을 보며 잠이 든 후 다음 날 아침 일찍 뜨는 해를 보고 돌아오는 일정이다. 사막의 낮은 30도를 웃도는 더운 여름 날씨지만 해진 뒤에는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겨울 날씨로 변한다. 더 이상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해가 떠 있는 순간에도, 지는 순간에도, 밤하늘이 별 반 칠흑같은 어둠 반으로 뒤덮인 순간에도 쉴새없이 감동이 밀려온다. 모험을 좋아하는 성질을 물려준 아빠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와서 꼭 이 벅차오름을 함께 느껴보고싶다고 생각했다.


향신료와 사람사는 냄새가 범벅이 된 활기찬 도시, 마라케시

메르주가에서 마라케시로 이동하는 버스는 매일 아침 8시에 출발한다. 여행 시간은 꼬박 12시간. 자칫 지겨울수도 있는 버스 여행이지만 창밖의 풍경들이 한시도 눈을 가만두지 않는다. 일정이 허락한다면 우르자잣(Ourzazate)이나 불만다데스(Bouleman Dades) 등에 들러 협곡 하이킹을 하거나 폭포를 보는 것도 추천한다. 하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마라케시로 오는 길에 보이는 사막과, 지름길 하나 없이 오롯이 꼭대기까지 올랐다 내려오는 모로코의 아틀라스 산맥은 버스 창문을 통하여 보아도 장관이다. 산 꼭대기에는 사계절 녹지 않는 만년설이 소복하고, 잠시 쉬어간 산 중턱의 휴게소는 바람이 겨울처럼 차다. 1.5차선 정도 쯤 되어보이는 꼬불꼬불한 차도를 반대방향으로 오는 차를 잘도 피해가며 달리는 버스 아저씨의 곡예운전 실력을 감상하는 것은 덤이다. 

마라케시는 모로코의 경제수도이다. 행정 수도는 라밧(Rabat)이지만 사람들에게는 마치 호주의 시드니처럼 모로코의 마라케시가 더 유명하다. 없는게 없는 전통시장 숙(Souk)들과, 온 동네 사람들이 하릴없이 마실 나오는 큰 광장 제말엘프나(Jemal el-Fnaa)만해도 제대로 보려면 2박3일이 모자랄 지경이다. 천일야화에나 나올법한 피리부는 코브라 조련사와, 사람들을 괴롭히는 못된 원숭이들, 각종 전통 드럼을 치며 시원하게 곡조를 뽑아내는 모로코 전통 음악 밴드들이 쉴새없이 사람들의 눈과 귀를 채운다. 

모로코에서, 특히 마라케시에서는 제값을 주고 물건을 사려면 오랜 흥정은 필수지만, 물건을 사지 않는다고 핀잔을 주는 사람도 없다. 나는 4일 내내 돌아다니면서 나무로 직접 깎은 목걸이와 작은 낙타 조각상, 그리고 셀수도 없이 많은 차와 작은 병에 담긴 아르간 오일 등을 공짜로 받았다. 오랜 시간 관광객들에 익숙해진 도시임에도 사람들은 놀랄만치 정겹고 순박하다. 숙소 앞 작은 골목가게에서는 아보카도 주스를 시켜먹을 때 마다 한잔을 다 비우고나면 믹서기에 조금 더 남아있다며 반잔을 더 따라주었고, 묵었던 호스텔에서는 시끄러운 시장을 벗어나 잠시 옥상 테라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노라면 늘 스텝들이 배고프지 말라며 차며 빵이며 대접해주었다. 유럽의 예술가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나라이니만큼 입셍로랑의 정원이나, 마라케시 사진 박물관같은 개성있는 예술의 향취도 곳곳에 베어있다. 


사전 지식없이 무지하게 큰 동선만 잡아놓고 떠난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을 정도로 모로코는 알면 알수록 그 매력이 겉잡을 수 없는 나라다. 기회만 된다면 6개월이고 1년이고 모로코를 끝부터 끝까지 여행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토리니보다 예쁘다는 쉐프샤우엔(Chefchaouen)도 가보고, 스페인의 영향이 짙은 탄지르(Tangir)에도 가보고, 카사 블랑카(Casa Blanca)를 찍고 아가디르(Agadir)에서 서핑도 해보고, 사하라의 끝까지 내려가 모리타니아(Mauritania)와의 국경까지 내려가본다면 얼마나 멋진 여행이 될까. 모로코를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4,5월이라고 한다. 이때에는 대부분의 모로코가 봄/가을 정도의 날씨를 유지하고, 햇볕이 가장 좋고 비도 많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유럽에 올 기회가 생긴다면 잠깐 익숙한 서구 문명으로부터 벗어나 북아프리카의 보석 모로코로 한번 내달려 보는 것을 감히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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