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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동현 Aug 11. 2024

싹싹, 남김없이

무/영/총 2인 전시에 부처

     

내 작품은 결과물에 대한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삶에 밀착된 여러 가지 과정들의 기록이고자 한다. 나의 생산물은 일상의 과정이 쌓인 축적물이다. 나의 축적물은 일상의 움직임을 토대로 생각을 구성하기 위한 동작들, 대화, 사람 관계, 독서, 사건, 음식의 소비, 공간, 감정이 지나간 과정이 모인 흔적들로 구성된다. 나의 작품은 단일함으로 포장된 완결된 결과가 아닌 다양한 어설픔으로 드러난다. 어설픔을 통해 결과를 형성한 모든 흔적들을 기록한다.      

좌충우돌의 작품형식은 내가 마주했던 다양한 사건과 대상에 조응하기에 위한 것이다. 내 움직임을 우연에 따라 맡겨서 만난 사람들, 사건, 생각, 거리, 사물들에게 각자의 존재양식에 걸맞게 다양한 미술적 표현양식을 시도했다. 이를 통해 내 작업의 여정에 참여한 나의 과정과 사람들, 자연, 사물들에게 각자 걸맞는 형태와 색, 표현법으로 서로 다름의 존중을 표하고자 했다.  

현재는 지나간 과거의 과정들이 쌓여 생성된 것이며, 현재의 삶도 과정의 축적물이다. 현실은 종종 결과에만 집중하여 과정의 존재를 부정하기 쉽지만, 모든 결과물 역시 수많은 익명의 존재, 노동, 기여, 실패, 희생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김해에서의 내 삶을 스치고 지나간 움직임, 소비, 감정, 노동, 발견, 생각들, 대화, 만남, 읽기, 쓰기 모두가 지나간 흔적이자 과정들이다.     

이번 전시는 나는 작품이라는 결과로 나아가는 여정에서 일상에서 마주한  과정이 미친 영향과 의미를 모두 기록하고 표현하여 작가 혼자의 결과가 아닌 모든 상호작용의 결과라는 출처를 밝히고자 했다. 그래서 내 전시공간은 내 작품에 영향을 준 사람들, 사물, 움직임, 생각, 느낌 등이 각자의 목소리로, 표현으로, 작품으로 참가했다. 내 전시 공간이 나와 각자의 모든 과정들의 존재 표출로 각자의 목소리가 어울리는 ‘따로 함께’ 장이길 바란다.     


과정과 흔적들의 총합이 ‘나’이고 작품이라는 생존신호를 발신한다. 나는 관객 각자의 미각(美覺)에 따라 내 작품이 자유로운 뒷담화, 수다, 안줏거리의 소재로 회신받길 희망한다.

사회가 정한 기준으로 주변부로 떠밀리고, 주요 인물을 빛내기 위한 병풍으로, 무명의 누구로, 성공 독식에 밑거름으로 강요당했던 모든 보통이의 반전을 획책한다. 그 유쾌한 뒤집힘을 위해 나의 생각과 나의 준비과정과, 나의 작업이 모든 이에게 아낌없이 사용되길 바란다.

모든 것이 쉽게 소비되고 상실되는 시대에 인간임을 표출하는 창의적 활동은 인간의 동등한 권리이다. 이 권리를 공유하기 위한 나의 노동 교환도 다양한 형태로 계획된다. 나의 존재와 시간이 누구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잊지 않고 나의 노동 생산물을 통해 갚는 것이 작가의 존재 이유임을 깨닫는다. 더 우직하고 더 투박하고 더 거칠게 긁고, 그리고, 지우고, 다시 그려서 체념의 굳은살 속에 감춰진 삶의 상처를 표현하기 위한 나의 우연과 무모한 계획은 멈추지 않는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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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영·총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모든 존재를 비추는 ‘같이‘를 위해-

 전미, 임동현 작가의 2인 전 <무·영·총>은 존재하지 않는 고유명사이다(즉 고분을 뜻하지 않는다).

<무·영·총>은 각각의 한자어를 조합해 두 작가가 각자 추구하고 있는 색과 추상형태, 보이지 않는 존재와 노동, 흔적 등을 특징으로 표현하고 다양한 해석을 돕는 한자 조합이다. <무·영·총>은 작가개인이 작품에 담고 있는 ‘무‘(보이지 않는, 거친, 무성한, 노동하는)/’영‘(그림자 같은, 오래 걸리는, 비추는, 화려한)/’총’(합하고, 모이고, 총명하고)등의 의미를 함께 전달하기 위한 결합어이다.

<무·영·총>은 회화와 설치로 나타나는 새로운 시도, 재료와 형태를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작품이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해석과 감정을 탐구하도록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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