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의 장애 혐오로 가려진 불평등과 차별
최근 장애인 단체들의 출근길 지하철 타기 투쟁이 잇따르는 가운데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발언으로 그 논쟁이 더 심화되고 있다.
태어나 지금까지 장애인 단체들의 시위가 이토록 비중 있게 다뤄지고 주요 언론사들의 메인 기사로 올라가는 상황이 낯설고 신기하다. 장애인의 날에나 반짝 스쳐 지나갔던 보도자료들이 요 며칠 계속 이슈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슈의 시작은 지하철 시위가 아닌 이준석 대표의 발언 이후로 보여진다. 이슈는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필자는 이 상황들이 장애계와 정치인, 비장애 시민들간의 축적된 갈등의 벽으로 다가왔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SNS발언 중>
서울경찰청과 서울교통공사는 안전요원등을 적극 투입하여 정시성이 생명인 서울지하철의 수백만 승객이 특정단체의 인질이 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합니다. 평시에 비장애인 승객들에게도 출입문 취급 시간에 따라 탑승 제한을 하는 만큼, 장애인 승객에게 정차 후 일정 시간이 지난 뒤 출입문 취급을 위해 탑승 제한을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장애인의 일상적인 생활을 위한 이동권 투쟁이 수백만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합니다.’
(중략)
이미 서울시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율이 93.0%입니다. 올해 계획대로 라면 94.9%가 되고. 예고한 대로 이런 식의 시민의 출퇴근을 볼모 삼는 시위가 지속될 경우 제가 현장으로 가서 따져 묻겠습니다.
(중략)
지난 5년간의 예산 편성 누가 했습니까?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가 했습니다.
위의 발언들을 기점으로 장애계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 나 또한 이준석 대표의 말에 일부 공감한다. 다소 표현이 자극적일 수는 있어도 나 또한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을 오르내리기도 하지만 현재와 같이 모두를 위한 대중교통 상황을 지연시키는 것은 올바른 방법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준석 대표의 위 발언은 실망스럽다. 이동권 보장을 위한 시위는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사망사고를 기점으로 현재까지 이어져왔다. 리프트 설치는 사회적 약자들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국가에서 설치한 것과 같다. 열악하지만 그렇다. 그런데 그것을 타고 사람이 죽었다. 헌법에서 정의한 자유권과 생명권이 침해당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리프트는 존재하며 반복되고 있다.
엘리베이터 설치율을 언급한 부분은 사회적 약자의 특성을 간과한 숫자놀이일 뿐이다. 사회적 약자의 삶의 질은 통계만으로 결정할 수 없다. 단 1곳의 엘리베이터가 없다면 원하는 곳을 갈 수 없는 것이다. 비장애인들의 대체 수단을 적용할 수 없음을 헤아리지 못한 표현이다.
이준석 대표는 논란이 더 커지자 ‘지난 5년간의 예산 편성 누가 했습니까?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가 했습니다’ 라며 특정 정당의 책임으로 시위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있다. 장애계는 5년 전 10년 전에도 보수, 진보를 떠나 매년 지키겠다고 하는 정치인, 그리고 사회적 구조에 저항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민들 일상의 불편함을 주면서 시위하는 것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지 않다. 분명 올바른 방법이라 설득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거대 야당의 대표가 사회적 약자로서 장애인 당사자의 삶과 그동안 투쟁의 역사를 되짚어 보지 않고 지하철 시위 자체만으로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사회적 혐오와 갈등을 부추기는 것 밖에 안될 것이다.
10년 전 ‘버스를 타자’라는 다큐멘터리를 봤었다. 당연한 일상을 누리지 못하는 장애인들의 투쟁과 시위하는 장면들, 휠체어를 쇠사슬로 묶고 절규하던 이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선하다. 그때와 지금 달라진 것은 전혀 없는 것 같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대중 속 담론으로 이어졌으면 한다. 내가 봤던 그 다큐멘터리의 결말을 보고 싶다. 무엇을 위해 거리에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지하철로 향하고 있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