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택시를 타고 싶다
“선생님, 오늘은 참석이 어려울 것 같아요”
휠체어로 봉화산 등반하는 날, 이용자 분께서 전화로 죄송하다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죄송할 일인가.
장애인 콜택시는 카카오택시처럼 바로 연결되는 게 아니다.
보통 60분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어떨 때는 전화하면 바로 올 때도 있고, 빨리 왔으면 좋겠다 싶을 때는 2~3시간 기다려야 될 때도 있고. 그러니까 생활을 예측하고 계획할 수가 없다.
버스를 탈 수 있다 없다가 아니라 그 과정 자체를 내가 통제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우리가 통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 시스템에 기대어 적응하자니 무력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마치 “최소한으로 다닐 수 있게, 살려는 줄게” 라며 우리의 삶을 누군가 결정하는 것이다.
이런저런 복지서비스 덕분에 우리는 의식주와 같은 최소한의 것들에 익숙해진 것 아닐까. 아니면 이것마저 있으니 감사하며 살아야 할까. 감사해야 할 것과 당연히 누려야 할 것들의 경계가 모호하다.
결국 통제할 수 없는 이동권의 문제는 병원, 영화관, 복지관, 학교와 같은 일상 속 모든 영역과 연결돼 더 많은 것들을 통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