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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phy Aug 03. 2016

책을 대하는 두 놈의 자세

"서점에 가자!"는 엄마의 말에 두 아들의 반응.


큰놈 "오, 예!!"


작은놈 "오, 노우!!"


둘은 정말 다르다!


4살 때 조르고 졸라서 산 한글 공부 책과 공룡이름으로 1주일 만에 한글을 뗀 큰 놈.

8살이 지나도록 글 읽는 것에 도통 관심이 없었던 작은놈.

보통의 대한민국 엄마라면 아주 흐뭇해할 범생이 스타일이 큰놈이고, 머리 쥐어 박히며 걱정 들어도, 타고난 적응력과 눈웃음으로 생존하는 스타일이 작은놈이다.

첫째를 키울 땐 내가 아주 능력 있는 엄마인 줄 알았다. 차분히 얘기해주면 끄덕끄덕하며 말을 잘 들었던 아이 덕분에 내가 잘 가르쳐 그런 줄 알았고 아이를 다루지 못하는 엄마들을 보면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왜 저렇게 애를 키우는지 뒤에서 욕도 많이 했다.


그러나.....

둘째가 의사표현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엄마는 좌절과 절망을 밥먹듯이 하게 된 것이다.

이해만 시켜주면 뭐든지 Yes 였던 첫째와 달리 둘째에게는 이해와 행동은 별개의 문제였다. 하고 싶은 건 안 되는 이유가 있어도 계속하려 했고, 찡찡거리고 고집부리는 것도 말로 다스리기 힘들었다.

온갖 육아서들을 다 섭렵하고 전문가(?)들이 가르쳐 주는 원칙을 다 적용해보았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오랜 혼란 끝에 내린 나의 결론은 이것이다!


아이들마다 다르다!


타고난 기질도 다르고 성격도 식성도 다르다. 반응하는 것도 다르고 원하는 것도 다르다. 마음과 머리가 작동하는 방법도 다르다. 때와 시기도 다르다. 그래서 아이들을 다루는 방법도 달라야 한다!!

물론 모든 아이들에게 기본적으로 적용되는 본질적인 원리는 같겠지만 현장에서 접근하는 방법은 맞춤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순 심플한 첫째는 논리적으로 이해시켜주어야 했지만 감정적인 둘째는 안아주어야 했다.

공부할 때도, 글자만 보면 읽어대고 지식과 정보를 흡입하는 것이 취미인 첫째는 사람과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관심분야에 관한 책을 볼 수 있게 해 주고 스스로 익힌 것을 말할 수 있는 장만 열어주면 충분했다. 그러나 지식과 정보는 관심이 없고 사람에게만 관심이 있는 둘째는 공부도 누구랑 하는지가 중요했다. 내용도, 정보 중심인 것은 처음부터 진저리 쳤으며 재밌는 이야기나 정서적인 것에는 아주 빠른 반응을 보였다. 첫째는 심심풀이로 영어단어책이나 사전까지도 읽었지만 둘째는 그림과 분위기가 좋은 책들에만 손을 댔다.


각자의 스타일과 취향은 다를 수 있겠지만 그런 중에도 둘 다에게 좋은 책을 선택하고 즐길 수 있는 습관을 키워주고 싶었다. 그럼 이렇게 다른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다른 기준, 다른 시간으로 접근해야 했다.


첫째는 정서적인 면이 부족하고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편이라 억지로라도 감성적인 내용이 있는 책을 읽게 했다. 실제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책하고만 놀려고 할 때는 심지어 책에서 떼어놓아야 할 때도 있었다. 멋 모르는 사람들은 부러워할 수도 있겠지만 건조하고 쌩~한 우리 아들을 본다면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들 속에 숨어있는 뜨거운 가슴이 얼음을 뚫고 나오길 원했다!

둘째의 경우는 얼음은커녕 가슴이 용광로라 감정에만 반응했기에 쉬우면서도 따뜻하고 감성적인 책들을 먼저 접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 책들은 반드시 그림이 글자보다 많아야 했다!!! 이후 점차적으로 글밥이 많은 책들이나 깊이 있는 책을 건넸는데 꽤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두 아들에게 서로의 취향과 읽기 수준에 상관없이 즐겁게 좋은 책을 접하고 즐기게 할 수 있었던 또 다른 비법이 있었으니.... 그것은 온 가족이 함께 책을 읽는 것이었다!


우리 가족은 한동안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밤, 저녁을 먹은 후 안방 침대로 모였다. 가족 책 읽기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낭독자는 대게 아빠였다. 엄마는 하루 종일 아이들에 치여서 지쳤다며 읽기를 떠넘겼지만 실은 아빠에게 더 책임감을 주고 아이들이 더 친근하게 아빠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려는 속셈이었다. 책 속 캐릭터들에 생동감을 입혀서 읽어줘야 했는데 사실....  아빠는 이런 것은 오글거려서 시도도 못하는 그런 류의 사람이었다. 그러니 듣는 우리는 얼마나 어색했을까! 초반에 아이들은 엄마가 읽어주면 안 되냐며 아빠 몰래 한숨을 쉬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 때문인지 아빠의 발연기에도 불구하고 책은 흡입력 있게 읽어졌다. 다행히도 아이들이 참고 기다리는 동안 아빠도 계속 발전을 했다. 함께 읽었던 책들은 샬롯의 거미줄,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80일간의 세계일주, 해저 2만리, 톰소여의 모험, 허클베리핀, 톨스토이 단편선, 삼국지 등 그 때 그 때 동기부여되는대로 선정했다.

부모의 머리와 마음을 거쳐서 듣게 된 단어와 문장은 아이들이 혼자 읽을 때와는 다른 경험을 하게 했다. 미처 느끼지 못했던 정서와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도 훨씬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첫째에게는 건조하게 말라있는 정서가 촉촉하게 적셔지게 하는 역할을 했고 둘째에게는 길고 글밥 많은 책도 재미있구나 생각하게 했다. 심지어 둘째는 이제 책의 재미를 알아 어딜 가든 책을 챙겨 다니고, 좋아하는 작가의 책들을 찾아서 보는 소년이 되었다.


정말로 다른 두 아들을 키우면서 이 둘에게 공통으로 적용시킬 수 있는 한 가지 원리가 있다면 각자의 때가 있으며 기다려주면 자기 시간을 따라 열매를 거둔다는 것이다. '부모의 몫은 믿고 기다려주며 좋은 양분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라는  이상적으로만 보였던 선배 부모들의 조언이 이렇게 눈 앞에 현실이 되니, 참...... 신기하다! 그러니 아이를 키우는 건 참 재미있는 일이다! 힘들지만 흥미진진한 모험이다!!


아이들이 성장하며 새로운 과제에 직면할 때마다 엄마인 나 역시 새로운 도전 앞에 선다. 본격적인 사춘기로 들어선 두 아들이 내게 건넬 숙제들을 기대하며 나에게 또 한 번 기합을 넣어주자! 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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