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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phy Nov 10. 2015

황야의 7인

아빠와 함께 서부영화를


지금 방에선 세 남자가 영화 시청 중이다.

띠리리~~~  오케스트라 연주의 음악과 중간중간 잊을만하면 들려오는 빵! 빵! 총소리...

오늘밤 우리집 안방은 추억의 명화 극장!


어린 시절, 영화는 어른들의 세계에 있는 것이었다. 어른이 되어야만 향유할 수 있는 부러운 어떤 것....  중학교때 학교에서 단체관람차 간 것이 첫 극장 경험이었으니 나의 세계는 지구를 지키는 독수리 5형제, 그랜다이저, 마징가 제트 들 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토요일 밤엔 달랐다. 아메리카 대륙을 지켜주는 그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 

나는 토요일이면 굳이 안방에서 자겠다고 우기며 속보이는 소릴 했고 아빠는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안방 구석 자릴 양보해주었다. 그래도 대놓고 허락해주긴 좀 그러니 한 마디 슬쩍 던지긴 하셨다. 

"애들 보는거 아니니까 어서 자!"

그러면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든 척 했다가 화면에서 사자가 머리를 흔들며 으르렁 울부짖고 나면 눈만 빼꼼 내밀고 관람을 시작했다. 그 땐 모든 영화의 시작이 그런 줄 알았다.... 으르렁!! 아빠는 내가 보고 있다는 걸 모른척 하고 계시다가 키스신이라도 나올라치면 귀엽게시리 괜히 헛기침을 하시며 채널을 돌렸다가 되돌리시곤 했다.

그 날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따땃~해져오며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는게 참... 좋다!


요즘 아이들은 전혀 알 수 없는 그런 감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자란 남편은 아이들이 십대가 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함께 볼 영화 목록을 만들고 있다.

영화선택의 기준은 그냥.... 아빠스타일!

그래서 며칠전에 본 석양의 무법자에 이어 오늘도 60년대 서부영화를 보고 있다.

오늘의 영화는 황야의 7인!!!

도적떼에게 계속 약탈을 당하는 한 가난한 마을을 7인의 총잡이가 목숨을 걸고 지켜주는 이야기이다. 

참 반듯하지만 지겹지 않고, 참 순수하지만 재미있는 영화!


아이들이 매일같이 하는 놀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ㅋㅋㅋ





아빠는 아이들을 위해 마치 특별한 배려라도 하는 양 생색을 냈지만 엄마는 알고 있다. 자기가 더 신나있다는 걸. 1시간 40분쯤 지나자 모두 즐겁게 상기된 표정으로 극장(안방)을 나왔는데 제일 흥분한 건 그래... 예상대로 아빠이다. 괜히 안하던 농담도 하고 아이들에게 장난도 걸고 활짝 웃고 있다.


아들들이 크니 아빠는 참 좋겠다...!

책임도 크겠지만 저렇게 소년이 되어 아들과 함께 웃을 수 있으니....


우리 아이들도 자라면 오늘 이 시간들을 사랑스럽게 기억할까?

떠올릴 때마다 달콤해서 자기 아이들에게도 또 다른 추억들을 만들어 줄까...?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함께한 추억이다.

모든 아이들의 가슴엔 벽난로가 하나씩 있어서 함께한 추억이 쌓일 때마다 부모는 그곳에 장작을 넣고 불을 지펴주 것이다.

아이들이 자라 언젠가 마음이 시려올 때,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녹일 수 없는 찬 바람을 맞을 때 이 벽난로 아래 웅크리고 앉겠지.... 그러면 꽁꽁 언 손발을 녹이고 얼굴도 발갛게 데워져 다시 웃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한 번 더 그 눈보라를 마주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 멋진 일을 할 수 있도록 내가 부모가 된 것이다! 

아직 함께할 시간이 있을 때에, 기회가 있을 때에 난로불을 피울 수 있는 좋은 장작을 주워야겠다.


오늘밤 아이들의 꿈 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질까?

두 녀석이 대머리 총잡이와 함께 휘파람을 불고 다니며 마을의 평화를 지켜줄까?

ㅎㅎㅎ 좋은 꿈 꾸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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