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5개월동안
나는 외동아들이었다.
내 세상의 전부는 엄마였고 엄마는 기꺼이 그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
엄마의 말씀에 의하면 나는 태어나 직접 내 몸을 보여드리기 전까지 딸로 추정... 아니 확신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태명도 완벽한 여자 이름, 향이었다!
향기나는 사람이 되라는 엄마의 바람을 담아 나는 '향아~' 라고 불리며 여자아이에게 맞춰진 완벽한 여성태교를 받고 태어났다. 그러고보면 태교가 정말 효과가 있는가... 의문이 드는 것은, 엄마가 온갖 감성적이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말들로 배속에 있는 나에게 자극을 주었다는데 나는 이렇게 건조하고 단순하며 냉정한 성격을 가지고 태어났다..... 아닌가...? 어쩌면 그래서 지금 이정도라도 말랑하게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여하튼 좀 별스럽고 고집스런 엄마를 둔 덕분에 나는 21세기에 현대적 의료장비도 없는 한 허름한 조산원에서 태어났다. 예정일보다 2주나 빨리 세상에 나오려고 발버둥을 쳤으나 엄마와 아빠는 당황하지 않고 내가 태어나기 2시간 전까지 쇼핑몰 지하에서 잔치국수를 먹으며 웃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통증이 견딜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엄마는 나를 낳기 위해 누웠는데 이 때, 아빠를 놀래킨 두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첫째는, 예상 소요 시간을 갑자기 skip하고 순식간에 내가 나온 것! 둘째는 내가 향이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뭔가를 신체 한 가운데에 달고 나왔다는 것이다! 아빠는 소리쳤다!
"자기야! 아들이야!"
탈진하여 기절직전이었던 엄마가 벌떡 일어났다 하니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여하튼 나는 세상에 나왔고 행복하게 자랐다. 힘들게 나오느라 찌그러졌던 얼굴도 점점 매끈해지고 세상에 잘 적응해갈 때 쯤, 그 일이 일어났다! '동생'이라고 불리는 이상한 놈이 우리집에 온 것이다!!
이로써 1년 5개월의 외동아들 시절은 끝이 났다.
내 자리였던 엄마의 품에 안겨 있는 '동생'이라는 존재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 놈이 나오기 전, 한 달을 엄마와 떨어져 할머니 댁에서 보낸 나는, 모르는 아기를 안고 다시 내 앞에 나타난 엄마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아빠도, 옆집 삼촌도 다 기억하는데 엄마만 낯설어하며 옆에도 안 갔다 하니 어린 나의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는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어쨌든 이렇게 나의 첫번째 슬픔을 디딤돌로 삼아 우리집에 온 그 녀석은 이후 십여년의 시간동안 365일 거의 떨어져본 적 없이 나와 동거동락하게 되었다.
이것은 내게 복일까, 저주일까?
어떨 땐 복인 듯, 어떨 땐 무시무시한 저주인 듯... 결론 내리기 어렵다. 부모님은 고마워하라며 당신들의 생각을 강요하시지만 나는 스스로 내린 결론이 필요하다. 요즘들어 부쩍 그녀석을 때려눕히고 싶을 때가 많아졌다. 내 마음의 방향을 정해야겠다.
나는 이제, 이 녀석과 함께한 시간들을 곱씹어보며 이 질문에 답을 얻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