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원더랜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phy Oct 03. 2016

위험인물 보고서

며느리를 고발합니다!

우리 며느리는 7 유형으로 보입니다. 거의 확실합니다. 사실 검사 안 해봐도 알 수 있습니다. 너무 티가 나니까요.

즐거움과 재미만 추구하기 때문에 위험에 처할 일이 많습니다. 

주변 사람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근데 그 주변엔 우리 아들과 손자가 있습니다. 

며느리는 앞 뒤 생각 없이 하고 싶은 것만 합니다. 

현실에 대한 대비도 없고 성실하지도 않습니다. 뭐든지 끝까지 하는 법이 없습니다. 

아들과 결혼할 때도 한 2년만 더 모아서 결혼하라고 했지만 땡전 한 푼 없는 주제에 막무가내로 결혼하더니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습니다. 

결혼 후 평생 반듯하기만 했던 아들이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머리 염색까지 하고 왔습니다. 모른 척했지만 며느리가 시킨 것이겠지요. 

며느리는 명절마다 내려오면 직업이 바뀌어 있습니다. 이걸 했다가 저걸 했다가... 재주는 많은 것 같은데 돈은 안 되는 것만 합니다. 우리 아들만 고생입니다. 

올 때마다 물건을 놔두고 갑니다. 그릇도 깨뜨립니다. 늘 불안하게 합니다. 

손주들이 위험하게 뛰어다녀도 말리기는커녕 같이 뛰어다니고, 장난감도 위험한 것만 사줍니다. 내가 그 뾰족한 것들 자르지 않았다면 손주들 눈이 성하지 못했을 겁니다. 

지 남편이 차를 몰고 나가서 밤늦게까지 안 들어왔는데도 잠을 쿨쿨 잡니다. 

어느 날 평화롭게 하루가 지난 것이 좋아서 제가 한 마디 했지요......

“아이고, 됐다!  이제 아무것도 없네! 신경 쓸 것도 없고 아무 일도 없으니까 진짜 좋지?"

그랬더니,

“어머니! 아무 일도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아요? 그건 지옥이죠!”

이럽니다! 

차라리 멀리 사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매일같이 얘를 보고 산다면 저는 불안해서 신경쇠약에 걸릴 것입니다. 

그래도 며느리가 성격은 좋습니다!




“하하하... 이건 며느리에 대한 보고서가 아니라 자기고백인데? 이 분... 6 유형이지?”

“그래 보이지? 안전이 지상 최대의 목표인 분! 그래도 이것 봐. 며느리 욕만 하는 것 같으니까 마지막에 한 마디 덧붙였어. '며느리가 성격은 좋습니다!' 하하하....”

“귀여우시네! 나, 되게 궁금한 게 있는데.... 이분이 잘라낸 뾰족한 장난감이 뭘까?”

“어, 그거? 교육 때 얘기한 적 있어. 그거... 공룡 꼬리 자른 거야!”

“뭐? 그럼 꼬리 잘린 공룡을 애한테 줬다는 거야?”

“고무나 플라스틱 같은 걸로 된 공룡 시리즈... 그런 거 있잖아, 공룡 종류대로 모아놓은 세트.  애 몰래 반은 버리고, 남은 것들은 자르고 갈아서 주셨대! 대박이지?”

“헐.... 꼬리도 잘리고 무섭지도 않은 그것이 과연 공룡인가...!!! 며느리가 7 유형 맞아? 난 왜 이 분보다 며느리가 공감이 되지?”

“검사 결과 보니까 맞는 거 같긴 한데 사람을 직접 보지 않고는 몰라. 본다 한들 본인이 솔직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어쨌건 난 이런 며느리도 싫어!”

“앨리스 맘에 드는 사람이 있긴 해? ”

"없어! 흐흐..."


이때 인기척 소리가 들렸다.

“계십니까?"

가게 문이 열렸고 단아하게 생긴 노부인이 조심스럽게 두리번거리며 들어왔다. 

“어? 어서 오세요! 일찍 오셨네요!”

앨리스가 내게 곁눈질을 하며 '위험인물 보고서'를 가리켰다.    

"아이고 선생님! 선생님도 벌써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아! 이 분이 바로....! 나도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예. 아, 이분이 가게 주인? 아이고 폐를 끼쳐서 어떡해요... 이래도 되나 모르겠네... 고마워요!"

예쁜 할머니다. 깍듯하고 바르기까지 하다!

"폐는 아닐걸요? 어차피 음료 사 드실 거잖아요. 저도 남는 장사예요! 많이 드시면 돼요!"

"예? 아, 예...... "

예상한 답이 아니었나 보다. 할머니는 뭐라 말해야 할지 잠시 당황하시는 듯하더니 갑자기 엘리스를 부르며 옆으로 가서 앉으신다. 

"선생님! 제 거 보고 계시네요! 제가 이상하게 했죠?"


엘리스는 할머니와 함께 며느리를 적절히 씹어가며 7 유형을 어찌 이해해야 하는지 얘기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코칭이 필요한 건 시어머니가 아니라 며느리 아닐까? 왜냐면 관계의 키를 쥐고 있는 쪽은 대부분 며느리이니까! 이런 시어머니를 둔 며느리를 도울 수 있게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내가 사명감에 불타오르는 건 왤까?

조금만 알아도 잘 지낼 수 있을 텐데... 불안하지만 않게 해 드려도 사랑받을 수 있을 텐데... 






<엘리스의 Wonderland Guide>


시어머니는 자신과 가족의 안전이 삶의 최대 목표인 6 유형이다. 

지금까지 한결같이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온 6 유형의 삶은 성실 그 자체이다.  이들은 가족을 위해 미리미리 계획하고 준비하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한다. 

그런 6 유형 시어머니에게 소중한 손주의 안전은 자신의 책임이다. 그래서 손주가 다치지 않도록 위험한 상황은 미리 막고 모든 것을 안전하고 무탈하게 만들어 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손주에게 위험한 상황을 안겨주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제 자식에게 흉기(?)를 쥐어주는 며느리인 것이다!

6 유형이 위험에 대해 느끼는 불안은 특별한 어떤 일이 아니라 누구나 살고 있는 일상에 존재한다. 하지만 그 모든 위험한 일이 실제로 생길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는 것을 인지하라. 대부분의 불안은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전쟁이다. 내 삶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살기 위해 오늘, 행동으로 해야 할 일을 정해 보라. 마음을 쏟아서 할 수 있는 취미를 갖는 것도 좋다. 걱정으로부터 나를 분리해 낼 수 있다면 오늘 하루가 내게 들려주는 소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 며느리에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만약 시어머니가 본 대로 며느리가 7 유형이라 한다면 같은 파워, 다른 욕구를 가지고 있다. 6 유형과 7 유형 모두 생각이 힘이다. 그런데 6 유형과 7 유형의 머릿속엔 완전히 다른 생각이 들어있다. 7 유형은 '뭘 하면 인생을 재밌고 즐겁게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6 유형은 '혹시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를 생각한다. 그러니 이들의 삶은 달라도 너무 다른 모양인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오히려 뭔가 하려는 것이 더 문제거리를 만드는 것 같다. 며느리가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하는 행동과 말들은  6 유형 시어머니의 불안만 가증시킬 뿐이다. '위험하지 않다' '괜찮다' 라는 말로 설득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시어머니의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작은 일이라도 입 밖으로 한 말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라. 어머니의 예상이 빗나가지 않도록 해야 편안해하신다. 무슨 일이 있을 때 미리 알려드리고 어머니가 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드려라. 무탈하게 지내고 있음을 전화로 자주 확인시켜드려라. 일단 어머니에게 신뢰를 얻기만 한다면 많은 것이 쉬워질 것이다. 본인의 강점을 발휘한다면, 가족이 함께 모일 때 작은 잔치를 열어보라. 미리 알려드리는 것은 기본이고 시어머니의 잔걱정을 안심시켜가면서 잔잔한 이벤트로 그녀의 마음을 얻어보라. 



매거진의 이전글 그해 크리스마스는 11월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