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자 찾아 산티아고 12] 마녀의 묘약과 무좀양말의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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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스(Brugos)로 향하는 날, 스틱과 다리가 서로 꼬이는 바람에 균형을 잃었다. 큰 소리를 내며 넘어지자 주변을 걷던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이럴 경우, 아픔보다 부끄러움이 더 크다. 다행히 큰 상처 없이 손바닥이 좀 벗겨진 정도다. 하지만 툭툭 털고 일어난 순간 난 충격에 빠졌다. 어깨에 메고있던 DSLR 카메라의 렌즈가 깨졌다.
슬픈 마음으로 길을 걷는데 뒤에서 누군가 날 따라오면서 계속 휘파람소리를 낸다.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온 다비드다.
"저쪽 언덕에서 너 내려오는 거 보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불러도 답이 없더라고."
깨진 카메라를 애도하느라 그가 부르는지도 몰랐나보다. 근데 내가 언덕에서 내려오는 건 또 어떻게 봤을까.
▲ 넘어지기 전 마지막 사진 하얀 구름이 꼭 날개를 펼친 새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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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진 카메라 렌즈 나중에 확인결과, 렌즈 손상없이 필터만 깨졌다. 필터의 소중함을 알게 된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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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아무리 멀리 있어도 알아차릴 수 있어."
이건 또 무슨 달콤한 말인가 싶었는데, 그는 웃으며 내 치마를 가리켰다.
"멀리서도 네 치마는 잘 보이거든."
사실 긴긴 순례길 동안 나는 매일같이 긴 면 원피스를 입고 길을 걸었다. 맨 처음 생장피데포드에서 얼떨결에 길을 걷게 되던 순간부터 입었던 그 치마다.
긴치마는 내가 장기여행을 할 때 스카프와 함께 늘 들고다니는 품목이다. 여러모로 활용도가 높다. 길이가 길다보니 걸쳐 입고 활동하기도 편하고, 특히 공동욕실에서 샤워를 마친 후 젖은 바닥에서 억지로 바지를 입으러 애쓰지 않아도 된다. 커튼이나 가림막 대신으로 쓴 적도 있다. 하지만 순례길을 걸으며 내내 입게 될지는 몰랐다.
▲ 잔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길을 걷는 여자 긴 치마는 의외로 활동하기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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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야외 활동을 안 하니 아웃도어 용품이 있을 리가 없다. 엄마한테 신발, 스틱 등을 빌리고 이모한테 등산용 의류를 빌렸다. 이모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산에서 이런 걸 입는다며 등산용 레깅스를 줬다.
실제로 순례길엔 레깅스 차림의 여성이 많았다. 하지만 막상 레깅스만 입으려니 이 도라지 뿌리같은 하반신이 너무 두드러진다. 결국 고민 끝에 등산용 레깅스를 입고 잠옷 삼아 가져온 면 원피스로 몸매를 가려야 했다. 친구들 중에는 내 치마를 부러워하며 다음 여행길에는 자기도 치마를 입겠다는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난 그 친구의 늘씬한 레깅스 몸매가 부러웠다.
▲ 보통의 순례자 스타일 레깅스 차림으로 여행하는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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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길을 걷다가 중간에 헤어진 친구가 나중에 내가 묵고 있는 알베르게로 찾아온 적이 있었다. 내가 여기 있는지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그녀는 웃으며 정원의 빨래줄을 가리켰다.
"너 오늘 빨래했지? 저기 네 옷 걸려있더라."
알베르게의 정원에서 잔꽃무늬가 들어간 내 원피스는 깃발처럼 펄럭였던 것이다. 내가 여기 있노라고. 이후로도 내 원피스는 산티아고로 향하는 노란화살표와 같은 역할을 했다. 내 원피스가 펄럭이며 가는 방향이 산티아고로 가는 방향이었다.
부르고스로 향하는 길은 점점 삭막해졌다. 길은 아스팔트로 바뀌고 차가 쌩쌩 지나가는 길 옆을 계속 걸어야 했다. 부르고스 입구에 도착하자 큰 맥도날드가 보였다. 우리는 거의 빨려 들어가다시피 맥도날드에 들어갔다. 오랜만에 맛보는 도시의 맛이었다.
도시를 걷는 건 시골길을 걷는 것보다 힘들었다. 특히 아스팔트나 보도블럭 위를 걸을 때는 시골길을 걷는 것처럼 등산스틱에 온몸을 의지하며 걸을 수 없었다. 소리가 나서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도 있고, 또 잘못 휘두르다간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주차되어 있는 차를 긁을 수도 있다.
▲ 부르고스 이정표 부르고스로 가는 길은 아스팔트를 따라 걷는 길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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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가능한 스틱을 끌어 모아서 가슴에 품고 '나는 위험한 사람이 아니에요' 라는 표정으로 재빨리 인파를 헤쳐 나가야 했다. 무엇보다 시골에서는 걷다가 지치면 아무데서나 앉아 쉬면 됐는데, 도시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숙소가 있는 시내중심까지 우리는 군대가 행진하듯 강하고 빠르게 걷기만 했다.
그래도 도시여행의 묘미는 관광과 미식이다. 부르고스에는 세비야, 톨레도와 함께 스페인 3대 성당으로 손꼽히는 산타마리아 대성당이 있다. 이 거대한 고딕 성당에는 중앙예배당을 중심으로 각 가문의 소 예배당과 성구보관실, 갤러리 등이 있다.
중앙예배당에는 스페인의 국민영웅 로드리고의 무덤이 있다. 그의 별칭은 엘시드(El cid), 이슬람교도에게 점령당한 이베리아 반도를 탈환할 때 공을 세운 명장이다. 성당의 내부는 밝은 미색이었고 빛이 충분히 들어와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흔히 보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보다 화려한 느낌이었다.
▲ 부르고스 대성당 순례자들은 할인된 금액으로 관람할 수 있다. (일반 입장료 7유로, 순례자 입장료 3.5 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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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웅 엘시드 스페인의 국민영웅으로 이슬람과 맞서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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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스 성당을 나와 우리는 타파스바 (tapas bar) 가 밀집해 있는 거리를 찾아 나섰다. 타파스는 작은 접시에 담긴 안주인데, 보통 식전이나 식후에 술과 곁들여 먹는다. 보통 타파스 한 접시 가격은 1.5유로에서 4유로 정도다. 마음에 드는 타파스를 시키면 그 가격에 원하는 술 한 잔이 따라 나온다. 우리는 쇼핑을 하듯 타파스바 순례를 했다. 한 가게에 가서 타파스 하나 시켜먹고 수다를 떨다가, 다시 다른 가게를 찾아 또 타파스를 먹는 식이다.
그렇게 도시 관광과 미식을 즐기다가 릴리와 나는 서로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가죽부츠에 날씬한 라이더 자켓을 걸친 스페인의 멋쟁이들 옆에서 등산자켓을 입은 우리는 알프스소녀 하이디 같이 촌스러웠다. 매일 같은 옷을 입다보니 꼬질꼬질 할 수 밖에 없었다. 시골에서는 위화감을 못 느꼈는데 도시에 오자마자 급격하게 이질감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아, 내 옷! 진짜 옷이 그리워! 이런 걷기용 유니폼 말고."
릴리의 한탄을 시작으로 다들 자신이 그리워하는 것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 난 내 방 평면 TV가 그리워. 쇼파랑."
"난 주방. 요리도구를 제대로 쓰면서 진짜 요리를 하고 싶어."
"목욕 가운. 샤워하고 목욕가운만 걸치고 나오고 싶어."
한번 욕구가 터지기 시작하자 계속 나왔다. 시골길을 걸으면서는 그저 매일매일 행복했던 순례자들이지만, 도시로 돌아오자 다들 잊고 있었던 문명의 이기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았을 때는 필요한지도 몰랐던 것들이었다. 결국 미첼의 말에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도시는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 같아."
▲ 타파스 바 술과 작은 요리를 선택해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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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의 물집은 갈수록 심해졌다. 숙소에 도착해서 신발을 벗을 때부터 발이 어떤지 좀 보자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럴 때마다 나는 냄새나는 발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도망가곤 했지만, 결국 사람들에게 발을 보여주는 수모를 겪어야했다.
부르고스에 도착하자 지블란과 다비드가 발을 살펴봐 주었다. 반창고를 붙였지만 계속 걷다보니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발을 내놓자 다비드가 물어봤다.
"붕대는 왜 안 감았어? "
"붕대가 없어서. 어제 사려고 했는데 그 마을에선 안 팔더라고."
다비드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누군가에게 붕대를 달라고 부탁하면 되잖아. 이 꽉 막힌 아가씨야. 이 길을 걷는 모두가 붕대를 가지고 있다고!"
어쩐지 야단맞는 모양새지만 늘 챙겨주는 그가 고마웠다. 그러더니 그는 이번에 프랑스 순례자 게이탄을 불러왔다. 게이탄은 예쁜 미소를 지니고 있는 20대 초반 여성이다. 늘 가방에 깃털을 매달고 다니고 머리에도 깃털을 꽂고 다니곤 해서 좀 특이한 느낌이었다. 예쁜 마녀를 보는 느낌이랄까.
어쨌든 게이탄에게는 프랑스 전통 약이 있다고 했다. 대체 뭘까 싶어서 보니 회색 가루였다. 그녀는 물을 조금 받아서 그 가루를 개었다. 되직한 반죽이 만들어졌다. 의심의 눈초리로 다비드를 쳐다보자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렸다.
"마녀의 묘약이지."
▲ 내 발에 마녀의 묘약을 발라주는 게이탄 프랑스 민간요법으로 쓰이는 점토종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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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료가 다 끝난 후 발의 상처로 늘 여러사람에게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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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봤더니 프랑스 민간요법에서 치료제로 쓰이는 점토(clay) 종류라고 했다. 점토라니... 문화충격이다. 미국인인 릴리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런 걸 발랐다가 세균이 들어가면 더 심각해진다며 걱정이다. 하지만 게이탄과 다비드의 표정은 진지했다. 상처에 진흙을 바르자 저릿저릿 아프며 열이 나기 시작했다. 다비드는 자신의 붕대로 내 발을 둘둘 감았다.
한바탕 소동이 끝난 후 침대로 돌아가자 이번엔 옆자리의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미국에서 온 롭이라고 했다.
"물집이 심한 모양이지?"
두말 않고 발을 보여줬다. 붕대와 반창고로 엉망이었다. 그러자 그는 주섬주섬 자기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돌돌 말은 까만 양말이었다.
"이거 너 신어. 나 여러 개 가지고 있거든."
일단 받긴 받았는데 무척 당황스럽다. 통성명을 겨우 마친 사람에게서 신던 양말을 선물 받다니. 양말을 펴보니 심지어 발가락이 달려있는 무좀양말이었다.
"그걸 신으면 물집이 안생길거야."
잠시 머리가 복잡해졌다. 모르는 사람에게 신던 양말, 그것도 무좀양말을 선물로 받다니. 산티아고 길에서 남자를 찾는다더니, 남자찾기는 고사하고 외간남자가 신던 무좀양말이나 신게 됐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나는 떨떠름하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의 양말을 받았다.
며칠 후, 나는 길을 걸으며 이 미국 아저씨를 수소문 했다. 제대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게이탄이 발라주었던 진흙은 내 물집을 어느 정도 아물게 해주었고, 그가 준 무좀양말을 신고 부터는 더 이상 새로운 물집이 안 생겼다. 하지만 길 위의 어느 누구도 그를 봤다는 사람이 없었다.
대체 어디로 간 거지... 더 이상 찾기를 포기하고 그를 천사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무지몽매한 나를 깨우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 온 무좀양말을 수호하는 천사... 그날 이후 두 번 다시 누군가의 무좀양말을 비웃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무좀양말은 사랑이었다.
여행이 끝난 후의 일이다. 남아공의 아이린이 내게 메일을 보내왔다.
"넌 네 여행길에 만난 천사들을 기억하고 있니?"
그녀가 보내준 사진에는 그날 무릎을 꿇고 내 발에 붕대를 감아주는 다비드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그 진지한 표정에 웃음이 나왔다. 그는 붕대의 수호천사였던 것일까. 다양한 천사들과 함께 걸었던 산티아고 순례길, 이제 목적지까지는 485km 남았다.
▲ 아이린이 보내준 사진 늘 이렇게 천사들을 만나는 여행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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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산티아고에 괜찮은 남자가 많다'는 말만 듣고 800km를 걸어버린 한 여자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