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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hamo Jeong Jan 07. 2022

1. 튀어오르는 삶의 환희를 붙잡는 순간

 Alegria- A spark of Light 

지극히 개인적인 서커스의 기억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를 처음 관람한 것은 2004년 도쿄 하라주쿠에서였어요. 당시 도쿄에서 거주하며 주식으로 낫또를 먹던 시절이었죠. 결코 낫또가 좋아서가 아니라 가난한 자에게 낫또는 100엔에 세 팩이 제공되는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었기 때문이죠. (도쿄 베어그릴스 ㅋ ) 그런 삶을 사는 이에게 비싼 서커스 공연은 생계를 위협하는 행위나 마찬가지였어요. 그럼에도 가장 저렴한 좌석이긴 하지만 티켓을 예매했던 이유는... 당시만 해도 태양의 서커스가 국내에 들어오지 않던 시절이다보니 일본에 온 이상 이 문화적 혜택을 누려야겠다는 이유였어요. (한국에는 3년 후인 2007년에 공연이 들어왔어요.)   


그 저렴한 좌석은 앞 줄 가장자리였는데, 큰 돔형의 텐트 안에 높은 구조물이 설치된 무대다보니 너무 앞줄은 무대 전체 상황을 볼 수가 없었어요. 그럼에도 굳이 장점을 찾자면 앞줄이어서 캐스트들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었죠. 보라는 무대는 안보고 두리번 두리번 무대 뒤나 옆을 보는 것도 좋아해서 나름 만족했답니다.   


극 초반에 여러 명이 트램펄린을 사용해 날아오르는 묘기를 펼치는 장면이 있었는데, 무대 가장자리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쫄쫄이 타이즈의 한 얼굴을 봤어요. 그는 어지러이 펼쳐지는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다음 순간 크게 숨을 들이키더니 흡! 호흡을 멈추고 무대 중앙으로 도약해서 순식간에 여러 바퀴를 구르며 무대를 장악해버리더군요. 우와~ 사람들은 크게 함성을 지르고 저는 그 아저씨 잠깐만 봤을 뿐인데 내적 친밀감 생겨서 괜히 막 감동스럽고.. (주책ㅋ) 여러 캐스트들이 펼치는 무대여서 그의 모습은 곧 다른 사람들과 섞였지만 어두운 무대뒤에서 크게 심호흡을 하던 그 얼굴만은 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어요.  

태양의 서커스 "알레그리아"의 한 장면 


사실 며칠 후엔 도쿄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돈을 집중적으로 벌기 위해 기숙사가 제공되는 나가노의 한 호텔로 일을 하러 가기로 했거든요. 나가노에는 유명한 스키장이 많지만 제가 가기로 한 지역은 나가노에서도 가장 구석에 있는 시가고원, 그 시가고원에서도 안쪽이라는 뜻의 오쿠(奥)가 붙은 오쿠시가 고원이었어요. 그나마 도쿄에는 한국 사람도 있고 친구도 생겼지만, 나가노로 가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는 상황이었죠. (실제로 나가노에서 4달 동안 한국 사람을 한 명도 못 봤다는... 아, 손님중 한 명 있었구나-_-) 


공연이 끝나고 육교에 올라 하라주쿠 거리를 내려다 보는데... 어찌나 쓸쓸하고 막막하든지. 12월 중순이었는데 도쿄는 한국의 10월 날씨 같았어요.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 있었거든요. 막막한 심정으로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방금 공연에서 봤던 배우를 떠올렸어요. 도약할 타이밍을 재고 있던 그 얼굴... 그 사람도 이런 기분을 느낄 때가 있었을까요. 


그가 어두운 공간에서 심호흡을 하던 순간을 떠올리니 좀 위로가 되더군요. 지금도 가끔 그 배우를 떠올리며 심호흡을 하곤 해요. 세상에 믿을 거 하나 없이 나 자신만 믿고 나아가야 한다거나 등등 우리가 살면서 흔히 마주치는 그런 상황에서 말이죠. 그후로도 태양의 서커스는 호주에서도 한국에서도 관람했지만 도쿄에서만큼의 감동을 주진 못했던 것 같아요. 삶이 두렵고 가난하던 시절에 만났던 반짝이는 순간이었으니까요.  


당시 봤던 공연의 이름은 <알레그리아>. 알레그리아(Alegria) 는 스페인어로 ‘환희’라고 합니다. 그 환희는 아무도 모르는 저만의 지극히 개인적인 환희였고 지금도 제 삶의 한 축으로 존재하고 있죠.  




VR에서 가능한 오직 나만을 위한 태양의 서커스


 이 썰을 푸는 이유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환희를 VR헤드셋을 사용하고 다시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죠.  캐나다의 실감 콘텐츠 제작사 펠릭스 앤 폴 스튜디오(Felix & Paul Studios) 가 제작한 태양의 서커스 영상들로 말입니다. 이 스튜디오는 (나중에도 한번 더 소개하겠지만) VR의 세계에 실사 영상을 제공하는 회사들 중 손꼽히는 선두주자입니다.  앱 내부에서는 “Alegria”를 비롯해,  “O”,  “Kurios” “KÀ”, “LUZIA” 이렇게 5개의 태양의 서커스 공연이 있어요. (앱은 6.99 USD인데 국내 앱스토어에서는 아직 판매가 안되고, 해외 VPN으로 구매를 해야 합니다.)   


360 VR로 서비스 되는 태양의 서커스 (Cirque du Soleil)


현재 유튜브와 오큘러스 TV 등에는 다양한 실사 공연이 VR로 서비스 되고 있는데요, 모든 영상이 360도로 구현되는 건 아니고 180도나 220도 영상이 제공되는 경우도 많아요. 눈앞의 무대를 실감나게 보는 것에 굳이 360도는 필요없기 때문이죠.  360도 영상인 경우, 많이 쓰는 방법이  카메라를 둘러싸고 공연을 펼치는 것입니다. 360도 촬영의 특성상 카메라 렌즈를 움직여 줌-인, 줌-아웃을 하거나, 카메라 무빙을 선보일 수가 없다보니, 무대에 카메라를 올리고 아티스트들이 직접 다가가는 것이 피사체를 가장 자세히 보여주는 방법이거든요.  


펠릭스 앤 폴 스튜디오의 태양의 서커스는 관객을 무대로 불러오는 한편, 극 스토리에 아예 참여시켜버리며 몰입도를 높인 케이스입니다. 비교적 초창기에 촬영된 “Kurios”가 이런 구성을 잘 보여주는데 스토리 자체가 관객이 19세기의 발명가가 있는 세상에 도착하는 것에서 시작해요.  그 세계의 사람들은 관객의 눈을 보며 다가오고, 말을 걸고, 노래를 부르고, 다른 세상에선 보지 못한  묘기를 펼치죠. 관객=카메라니까 이 사람들은 카메라를 바라보며 동선을 맞추고 연기를 펼치고 있는 건데, 360도 촬영에서 이렇게 찍으려면 면밀하게 계산된 카메라 위치와 배우들의 동선이 필요합니다. 2015년 영상인데도 어색함이 없을 정도예요. 


이걸 대체 어떻게 만들었는지 싶어서 찾아보니 유튜브에 “Kurios”의 메이킹 영상이 있더군요. 감독은 새롭게 캐비넷의 세계에 도착한 사람을 대상으로 스토리를 구성했다고 해요. 영상에는 카메라를 둘러싸고 배우들이 뛰어다니는 장면이 나옵니다. 오직 한 사람만의 무대인 거죠.  이를 통해 관객이 얻는 것은 친밀하고 아주 내적인 경험이 됩니다.  


카메라를 중심으로 캐스트들이 연기를 펼치고 노래를 합니다. 공간음향 기법으로 노래도 왼쪽귀에만 들린다든지 위에서 쏟아지든지 그럽니다. 


사실 태양의 서커스 앱을 다운 받고, 그날 진심으로 VR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오직 나만을 위한 서커스라니. 살면서 이런 호사를 어떻게 누려볼 수 있을까요? 사우디의 대부호 도움이라도 받지 않는 이상..  하지만 저 너머의 세계에선 그것이 가능한 세상인 거죠. 


태양의 서커스 "LUZIA"  VR 화면입니다. 저 오빠 머리카락에서 물 떨어지는 거 보이시나요? 감동이죠 



우주에서 나 혼자 있기  


이 스튜디오의  발전된 기술은 <우주 탐험가: 국제우주정거장 경험(Space Explorers: The ISS Experience)> 에서 볼 수 있어요.  우주정거장에서의 삶을 360도로 촬영했는데요, 직접 우주 정거장에 갈 순 없으니 파견된 우주선의 직원들이 감독의 지시를 받아 찍고 영상을 지구로 전송했다고 합니다. 큐폴라(Cupola)라고 불리는 ISS 전망 공간우주선안에서 지구를 조망해볼 수 있게 만들어진 영상도 있어요. 그리고 이들은 이렇게 만든 소스를 언리얼엔진과 연계해 실제 ISS 크기의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에서 관람객이 VR을 사용해  체험해볼 수 있는 인터렉티브 VR 전시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음. 이건 코로나 끝나고 한국에 그 전시가 들어와야지 볼 수 있을 듯하네요. ) 



"Space Explorers: The ISS Experience" 앱 



개인적으로는 큐폴라에서 가만히 턱을 괴고 지구를 바라보는 순간이 인상적이었어요. 지구 시간으로 8분 동안, 그 큰 우주에 정말이지 저 혼자 고립되어 존재했기 때문이죠. 사실 VR헤드셋을 쓴다는 것 자체가 홀로 고립된 순간이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개인에게만 벌어지는 사적 경험이긴 합니다. (그 단절되는 고립감을 두려워해 VR 헤드셋을 못 쓰는 주변인도 있음.) 하지만 전 평소에도 늘 혼자 있지만 더! 더! 더! 격렬하게 혼자 있고 싶은 슈퍼 내향인(...)이다 보니 저 너머의 세계에 홀로 있는 그 순간이 정말 좋았어요.   



그래서 VR 탐험기를 풀면서 가장 먼저 펠릭스 앤 폴 스튜디오(Felix & Paul Studios)부터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오로지 나만을 위해 펼쳐지는 환상적인 서커스. 그리고 우주 속에 홀로 존재하는 경험... 이 모든 아름다운 순간들이 삶에 반짝이는 환희가 되어 우리가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가는데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죠. 2004년 하라주쿠에서 제가 봤던 그 서커스처럼요. 

코로나도 지겹고 사는 거 좀 별로일 때도 많지만 그래도 이렇게 가끔씩 툭 튀어오르는 반짝이는 것들이 있어서 좋지않나요? 저만 그렇게 생각하나요. :) 




*참고영상* 

-큐리오스 메이킹 영상 https://youtu.be/ZY4r13LIfyQ

 

-알레그리아 VR 트레일러 (360도 영상)  https://youtu.be/3BtVbsjMmZE



-Space Explorers: The ISS Experience의 트레일러 (360도 영상) https://youtu.be/gXZP-ZEBQ94



-큐폴라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 (360도 영상)  https://youtu.be/Ka29SJcrL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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