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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hamo Jeong May 21. 2024

에도로 향하는 가장 험한 길,
하코네 하치리

[도쿄 말고, 근교] 1. 하코네 핫치리 (箱根八里)

도쿄는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여행지입니다. 그만큼 각종 정보가 넘치는 곳이기도 합니다. 유명한 관광지를 이미 방문했다면 이번엔 ‘도쿄 말고, 근교’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이 연재에서는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도쿄 도내와 도쿄 근교 여행지를 소개합니다. 색다른 일본 여행지를 찾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도쿄가 과거 에도였을 때의 이야기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에 입성한 것은 1590년 8월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봉토 이전 명령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에도는 저지대 습지의 버려진 땅이었다. 농지도 택지도 부족했다. 경쟁자인 자신을 멀리 보내버리고자 하는 의도가 명확했지만, 그로서는 텐카비토(天下人)라는 당시 쇼군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억울하면 쇼군이 되는 수 밖에. 


버려진 땅이던 도쿄, 위기가 기회로


뜻밖의 봉토 이전이었지만 장점도 있었다. 에도 개척을 핑계로 임진왜란에 참전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덕분에 다른 다이묘들이 전쟁에 돈을 쏟아붓고 있을 때, 그는 착실히 자신의 군대와 영토를 늘려갈 수 있었다.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이듬해인 1601년, 본격적으로 도로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곧 막이 오를 에도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 첫번째 도로가 바로 교토에서 에도까지 동해안을 따라 걷는 도카이도(東海道)였단다.


당시 교토에서 에도까지는 얼마나 걸렸을까? 도카이도를 통한 교토와 에도 사이의 거리는 124리 8정, 약 495.5km다. 당시 성인 남성이 하루 평균 30~40km을 걸었다는 검을 감안하면 도카이도 완주에는 보통 2주가 걸렸다는 이야기다.


이들이 동쪽 바닷가를 따라 걸었던 이유는 바닷가가 비교적 평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산을 피해 걷더라도 여행자들은 결국 해발 846m의 하코네산을 맞닥뜨리게 된다. 하코네산을 넘는 구간은 미시마(三島)에서 오다와라(小田原)에 이르는 길인데, 그 길이가 8리(里), 즉 32km여서 이 구간을 하치리(八里)라고 불렀다.



하코네 하치리 안내도. 에도의 니혼바시를 떠나 하코네 하치리를 넘어 교토로 가는 길을 표시했다. 



하코네산은 칼데라 지형이어서 급경사가 많은 데다, 이끼가 많아 미끄러지기 쉬운 길이었다. 전해지는 지명들 중 '여자가 넘어진 언덕(女ころばし坂)'은 말을 탄 부인이 낙마로 사망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원숭이 미끄러지는 언덕(猿滑りの坂)'은 정상부쪽 가파른 고개에 붙여진 이름이다. '하코네 하치리'라는 옛 노래 속에 '하코네 산은 천하의 험지(箱根の山は、天下の嶮)' 라는 가사가 남아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1719년에 일본을 방문했던 조선통신사 신유한도 하코네 하치리를 넘으며 해유록(海遊錄)에 '길이 험하고 몹시 가파르다'는 기록을 남겼다. 당시 함께 가던 일본 외교관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가 가마에서 내려 걷자 신유한이 그 연유를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는 "이 봉우리는 아주 험해서 말을 타고 가면 내가 다칠까 두렵고, 가마를 타고 가면 남을 다치게 할까 두렵다. 내가 힘든 게 낫다"라고 답했다고 한다(출처: 다카하시 치하야, <에도의 여행자들>).

이 길을 여러 번 지나갔던 일본 관리는, 말이나 가마를 타느니 차라리 걷는 게 낫겠다고 택한 것이다.




에도 시절의 도로 포장, 이시다다미(石畳)



가나가와현 남서부에 위치한 하코네는 도쿄에서 전철로 약 1시간이면 갈 수 있어 당일치기 여행지로도 인기다. 온천 뿐 아니라 화산 가스 분출 지대인 오와쿠다니, 분화구 호수인 아시노코, 호수를 향한 도리이가 있는 하코네 사원 등이 있어 늘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맑은 날엔 이곳에서 후지산이 보인다. 


도쿄에서 출발해 하코네 유모토 역에 내리면, 대부분의 관광객은 바로 하코네산으로 향하는 등산열차에 탑승한다. 하지만 하코네 하치리 루트를 걷기 위해선 반대 방향으로 나가 하코네 등산 버스를 타야한다. 역에서 4km 정도 떨어진 스쿠모가와 자연탐승보도(須雲川自然探勝歩道)가 오늘의 출발점이다.


이끼가 가득한 작은 나무다리를 건너면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울창한 산길로 이어진다. 군데군데 이곳이 도카이도 옛길임을 알려주는 표지판이나 이 지역의 역사적 유래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있다. 



하코네 하치리의 표지만 



원래 이 길은 비만 오면 무릎까지 진흙이 차오르는 험한 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초반에는 대나무를 깔았지만 매년 교체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결국 1680년 막부는 도로 포장 공사를 하기 시작했다. 길의 너비는 일관되게 3.6m로 유지시키고, 바닥에는 납작한 돌을 깔았는데, 이것이 바로 그 시절의 도로 포장인 이시다다미(石畳)다.



지난 1월 이 곳에 방문해 돌로 된 바닥 길을 걷고 있으니, 과거 실크로드 여행을 했을 때 종착지로 삼았던 아피아 가도가 생각나기도 했다.



로마 아피아 가도 


에도 시대의 도로 포장 기술은 로마의 아피아 가도와 비슷하다. 먼저 땅을 판 후 제일 아래에는 자갈과 흙을 깔고, 맨 위에는 편편한 포장용 돌로 덮는다. 가장자리에는 배수로를 파고, 계곡 쪽에는 나무를 심었다. 중간 중간에 도로을 비스듬하게 가로지르는 구조를 만날 수 있는데, 산에서 내려오는 빗물을 계곡으로 흘려보내기 위한 배수로였다. 



도로 포장 안내도 



여행자 위한 편의 시설, 슈쿠바와 이치리즈카 


스쿠모가와에서 1.7km를 걸으면 하타주쿠(畑宿)라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지금은 조용한 시골마을이지만, 한때 이곳은 슈쿠바(宿場)로 불리던 역참마을로 번성했던 곳이다. 당시 막부가 지정한 도카이도의 역참마을은 총 53개였다. 에도 시대에는 '도카이도 53 역참(東海道五十三次)'이라는 우키요에도 유행했는데, 여행을 직접 떠나지 못하는 서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하타주쿠에는 일본 전통 공예인 요세기 세공(寄木細工)이 유명하다. 요세기는 다양한 나뭇조각으로 기하학적 무늬를 만드는 장식이다. 한국어로는 쪽매붙임세공이라고 한다. 이 마을에는 요세기 제작 과정을 살펴보거나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전시장이 있었다. 작고 조밀한 무늬가 만들어지는 모습은 계속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정도였다.

요세기 세공에 사용되는 나무와 요세기 세공 


하타주쿠 마을을 지나 다시 옛길로 향하는 출구엔 이치리즈카(一里塚)라는 흙으로 만든 고분이 있었다. 에도 시대에 도쿠가와 막부가 여행자를 위해 1리마다 흙을 쌓아둔 표식이다. 이 이치리즈카는 에도시대 모든 길의 출발점인 니혼바시에서 23리 째에 있다. 지금까지 92km를 걸었다는 뜻이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에도 0.5km마다 석주가 세워져 있는 구간이 있다. 내가 얼마나 걸었는지, 또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몇 km를 남았는지를 알 수 있어서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이 이치리즈카도 당시 여행자 입장에서는 꽤 위안이 되는 편의 시설이 아니었을까. 물론 교토까지는 아직 403km가 더 남았지만 말이다. 


산티아고의 석주. 0.5km마다 거리를 알려준다 



도카이도를 따라 걷는 길엔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빽빽하다. 일본에서는 새 가족이 태어나면 다음 세대를 위해 삼나무나 편백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올곧게 자라 목재로 사용하기 좋은 데다, 50년이면 벌목할 수 있을 만큼 크게 자라기 때문이다. 



400년 된 찻집, 13대째 주인이 운영하는 곳

 


하코네 산은 칼데라 지형이어서 정상으로 향할수록 길이 꽤 가팔라진다. 다음 목적지는 하타주쿠에서 2.4km 떨어진 에도 시대의 휴게소, 아마자케차야(甘酒茶屋)다.



이 구간은 자동차로 가더라도 경사 10도의 급 커브 구간이 굽이굽이 이어지는 난코스다. 하코네 나나마가리(箱根七曲り)라는 이 구간은 자동차나 오토바이 마니아들에게 인기 있는 드라이빙 코스다. 시간이 없거나 가파른 경사가 부담되는 여행자들은 하타주쿠 마을에서 1시간에 1~2대 있는 버스를 탈 수 있다.



지금은 시대를 잘 만나 버스를 탈 수 있지만, 에도 시대 사람들은 아마 눈물을 흘리며 이곳까지 올라왔을 것이다. 실제로 도중에 나오는 가시나무언덕(橿木坂)에는 여행자들이 이 길을 지나며 얼마나 험한지 '도토리만큼의 눈물을 흘렸다(どんぐりほどの涙こぼるる)'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코네 하치리를 걷는 여행자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며 도착한 여행객들을 맞이하는 곳이 바로 이 아마자케차야였다. 아마자케(甘酒)는 일본의 감주를 뜻한다. 하코네 정상 부근의 이 찻집은 에도 초기부터 영업을 시작해 4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지금은 13대째 주인이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옛 우키요에 자료를 보면 당시 이 근방에 이런 찻집이 연달아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도카이도가 가장 번성했을 때는 9개의 찻집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 건물은 에도 시대 그대로의 건물이 아니라, 옛 건물의 자재를 활용해 새로 지은 건물이다.


             

아마자체 차야의 내부 화로 

 

400년 전통의 일본 감주 


처음 걷기를 시작할 때는 날씨가 맑았는데 정상에 가까워오자 점점 날씨가 흐리고 추워지기 시작했다. 건물 내부에 전통 방식의 화로가 있어 잠시 온기에 의지해 몸을 녹였다. 주문한 일본 감주를 마셔보니 우리의 식혜와 달리 미음을 마시는 것처럼 걸쭉한 데다 은은한 단맛이 입맛을 다시게 했다.


지금도 일본에서 감주는 '마시는 링거'라고 불리는데, 이 음료는 당시 산을 오른 사람들에게 충분한 당분을 제공해 줬을 것이다. 화로에서 나오는 매캐한 연기를 맡으며 감주를 마시고 있자니 느긋한 안도감이 들었다. 아마 당시 여행자들도 이런 심정이지 않았을까. 어쨌든 여기까지 왔다는 건, 머지않아 내리막이 시작된다는 의미니까 말이다.



여성이 하코네산을 넘을 수 없었던 이유


찻집을 나와 2km 정도를 걷다 보니 나무 사이로 새파란 호수가 보였다. 하코네산의 호수 아시노코(芦ノ湖)다. 곧 하코네 신사의 대형 주황색 도리이가 눈앞에 등장했다. 여기서부터는 관광객들이 많은 지역이다. 하코네 하치리를 여행한 시점은 2024년 1월말이었는데, 최근 일본은 오버투어리즘 이슈로 어딜가나 관광객들이 넘쳐나는 상황이었다. 


아시노코, 맑은 날엔 이곳에서 후지산이 보인다 



호수를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향하면 하코네 신사가 나온다.  왼쪽으로 향하면  1604년 에도 막부가 조성한 삼나무 가로수 길이 있다. 거대한 삼나무가 늘어선 기분 좋은 흙길이 500m정도 이어진다. 당시 막부가 길에 삼나무를 심은 이유는 나무가 여름에는 햇빛을 가리고 겨울엔 차가운 바람을 막아 주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론 서쪽에서 적이 침입해 올 경우 나무를 베어 길을 막기 위한 방어의 이유도 있었다고 한다. 에도 막부가 삼나무 길을 조성할 때만 해도 오사카의 도요토미 가문이 아직 남아 있었고, 서쪽의 다른 영주가 반기를 들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에도시대에 만든 삼나무 가로수 
삼나무 가로수를 걷는 여행자 


하코네는 이렇게 서쪽의 적으로부터 에도를 보호하기 위한 군사 요충지기도 했다. 때문에 에도 막부는 1619년 에도를 드나드는 사람이나 짐을 단속하기 위한 검문소인 하코네 세키쇼(箱根関所)를 지었다.



지금도 하코네 세키쇼를 방문할 수 있다. 옛 터를 발굴하여 전통 건축 기법으로 복원한 전시관이다. 내부에는 통행증 검사소, 감옥, 마구간, 경비초소, 부엌, 화장실 등 당대의 건물들과 실물크기의 인형, 당시 사용한 물건 등이 전시되어 있다.


당시 쓰코테가타(通行手形)라 불렸던 통행증은 자신의 마을 영주나 주지스님, 마을 관리에게 받았다. 주로 이름, 나이, 거주지와 머리 모양, 신장, 체중, 점의 위치 등 신체적 특징을 적었다.



이에 따르면, 에도 시대에는 남성보다 여성의 통행증 검사가 더 엄격했단다. 에도 시대의 '이리뎁포 데온나(入り鐵砲に出女)' 라는 말은 어떤 총포도 에도에 들어오지 못하고, 어떤 여성도 에도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옛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 하코네 세키쇼 



여성의 출입이 더욱 엄격하게 관리되었던 이유는 지방 영주들의 부인이나 자식이 몰래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단다. 당시 교대제로 지방 영주들은 2년에 한번 에도를 방문해야 해고, 처자식들은 에도에 계속 머물러야했다고. 이들은 사실상 막부의 인질이나 마찬가지였다.



여성 여행자들은 히토미온나(人見女)라고 불리는 노파가 몸수색을 맡았다고 한다. 자칫 이 노파의 심기라도 거스르면, 통행증이 있어도 통과하지 못할 정도였다. 실제로 통행증의 문제로 검문소를 통과하지 못하고 돌아간 경우도 있었고, 도중에 아이를 출산한 여성은 통행증 인원과 다르다는 이유로 통과하지 못하기도 했다.



반면 남성은 통행증이 필요하긴 했지만, 경우에 따라 통행증이 없어도 통과가 가능했다. 여성 통행에 대한 규칙이 완화된 것은 에도 막부 말기에 이르러서였다. 

여성이 몸 수색을 당하는 모습을 재현한 모형 



실제로 이곳에는 통행증 없이 검문소를 지나다가 처형됐다는 소녀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시즈오카 이즈 출신의 오타마상(お玉さん)이라는 소녀다. 그녀는 에도의 삼촌 집에서 하녀 일을 하다가, 이즈에 있는 가족이 그리워져 몰래 잠시 삼촌 집을 빠져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가난한 하녀 아이에게 통행증이 있을 리 없었다. 결국 몰래 하코네 산을 넘다가 발각되어, 효수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당시 검문소를 피하다 걸리는 경우에는 대부분 극형에 처해졌다. 이 근처에는 그녀가 처형당했다는 오타마가연못(お玉が池)이 남아있다. 


하코네 세키쇼에는 두 개의 출입구가 있다. 에도 방향과 교토 방향이다. 나는 도쿄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에도 방향 문으로 들어가서 교토 방향 문으로 나왔다.



그 시절의 여성들에겐 이 검문소를 지나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겠지만, 과거의 법칙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했다. 잠시 문 앞에 서서 가야할 길을 바라봤다. 이대로 서쪽으로 향하면 미시마가 나오고, 계속 길을 걸으면 마침내 교토에 닿을 것이다.


에도 방향 입구 


언제나 이야기와 이야기를 이어온 길



이제 에도의 옛길을 벗어나 도쿄로 돌아갈 시간이다. 관광객으로 빽빽한 버스를 타고 하코네 유모토 역을 향해 내려갔다. 올라올 땐 하루 종일 걸렸지만 버스로 내려가자 4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길은 언제나 이야기와 이야기를 이어왔다. 그동안 여행했던 길들을 되돌아봤다. 기원전 312년 건설된 아피아 가도는 로마 최초의 군사도로였고, 이후 로마 통일을 이끌었다. 기원전 2세기 한나라의 장건이 개척한 실크로드는 동서양의 물건과 사상, 문화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유럽의 산티아고 순례길은 산티아고 성인을 위한 순례길이기도 했지만,  무어인에게 맞선 카톨릭 교도들의 국토회복운동 구심점이기도 했다. 열차로 지났던 시베리아 횡단 루트는 러시아가 동쪽으로 진출하는 길이기도 했고, 연해주의 우리 동포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떠나야 했던 길이기도 했다. 길은 마치 핏줄처럼 한 세계를 고동치게 만든다. 



에도 시대의 도카이도 역시 다음 이야기를 잇는 역할을 한다. 1603년 에도 막부가 세워졌던 당시, 에도에는 아직 변변한 성도 세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곳이 정치적, 행정적으로 오사카나 교토를 능가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물자, 기술 등이 오갈 길이 필요했다. 막부는 도카이도(東海道)를 시작으로 나카센도(中山道), 고슈가도(甲州街道), 오슈가도(奥州街道), 닛코가도(日光街道) 등 5개의 가도(街道)를 조성했다.



그러자 역참을 중심으로 여관, 식당, 유곽, 가게 등이 번성하며 화폐가 유통되고, 시장경제가 순환되었다. 그리고 지방 영주들이 2년마다 에도를 방문하는 참근 교대제는 영주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막부의 중앙집권을 강화시켰다. 참근 교대 행렬뿐 아니라 조선통신사 일행, 네덜란드 시볼트 일행 등 일본을 방문하는 외국인들도 이 길들을 걸어서 에도로 향했다.



나중엔 참배 여행을 떠나는 일본 서민들도 늘어나기 시작하며, 일본에선 유럽보다 100여 년 일찍 여행 문화가 꽃을 피우게 된다. 이 길들은 각 영지로 흩어져 있던 일본이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 통로이기도 했다. 길을 따라 일본 전역의 모든 문화가 에도로 모이고, 한편 에도의 문화가 전국으로 퍼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도쿄는 에도로 향하는 이 길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여행정보 

-하코네 아마자케차야 (箱根 甘酒茶屋)

에도 초기부터 영업을 시작해 13대째 주인이 이어내려 오고 있는 도카이도의 옛 찻집이다. 이곳에서는 전통방식 그대로 쌀과 누룩을 사용해 감주를 만들고, 설탕이나 다른 첨가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감주 외에도 간식거리도 판매 중이다. 감주 1잔 500엔, 키리모찌 1접시 600엔,


【주소】 神奈川県足柄下郡箱根町畑宿 二子山 395-28

【전화 번호】 0460-83-6418

【가는 법】 하코네 유모토에서 하코네 등산 버스 탑승, 「아마자카 찻집」하차

【홈페이지】 https://www.amasake-chaya.jp


-하코네 세키쇼 · 하코네 세키쇼 자료관 (箱根関所・箱根関所資料館)

하코네 세키쇼는 1619년에 지어져서 에도의 방위를 맡은 검문소다. 2007년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와 옛 자료를 바탕으로 건물을 복원하고 일반인에게 개방했다.  바로 옆에는 자료관이 있는데, 당시 통행증이나 가마, 참근 교대 행렬 모형 등이 전시되어 있어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입장료는 성인 500엔, 어린이 250엔이며, 하코네 프리패스가 있으면 100엔 할인받을 수 있다.


【주소】 神奈川県足柄下郡箱根町箱根1番地

【전화 번호】 0460-83-6635

【가는 법】 하코네 유모토에서 하코네 등산 버스 탑승, 「하코네 세키쇼」하차

【홈페이지】 https://www.amasake-chaya.jp


-하타주쿠요세기회관 (畑宿箱根寄木会館)

: 하타주쿠에서 태어난 요세기 세공을 전시한 공간이다. 열쇠고리부터 건물 모형까지 다양한 공예품 뿐 아니라 재료가 되는 다양한 목재를 볼 수 있다. 한쪽에서는 장인이 세공을 하고 있어 요세기 세공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컵 받침대를 만드는 체험은 1인당 1,200엔이다.

【주소】 神奈川県足柄下郡箱根町畑宿103

【전화 번호】 0460-85-8170

【가는 법】 하코네 유모토에서 하코네 등산 버스 탑승, 「하타주쿠」 에서 하차, 도보 3분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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