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길에서 만난 '변태 오빠들'
▲ [남자찾아 산티아고 05] 이 길에서 조심해야할 남자들 ⓒ 정효정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 건데, 어딜 가나 이상한 사람이 있다. 일보다 자기감정이 더 소중한 사람, 자기가 잘못하고 남 탓만 하는 사람, 사적인 스트레스를 공적으로 푸는 사람, 남의 공을 가로채는 사람,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사람, 남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 등. 일을 하고 급여를 받는다는 것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는 거지만, 그 노동의 대가가 통장에 입금되기까지는 이런 지리멸렬한 인간관계를 넘어서야 했다.
나만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가보다. 인터넷에는 '또라이 질량보존의 법칙'이라는 말이 떠돌고 있었다. 어느 집단이든 사람들을 괴롭히는 구성원이 일정량 존재한다는 거다. 그리고 집단을 바꾸더라도 다른 구성원이 다른 방법으로 괴롭힐 거라는 이야기다. 그러고보면 엄마는 내가 일에 지쳐 '이직을 하네, 이민을 가네' 하고 징징거릴 때마다 말씀하시곤 했다.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굴 들어갈 일 있냐."
'이곳만 벗어나면 다 괜찮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할 때 엄마는 냉정하게 '여길 피해 어딜 가든 마찬가지다, 심지어 더 나쁠 수도 있다'는 말씀을 전해주신 거다. 이미 '또라이 질량보존의 법칙'을 알고 계심에 틀림없다.
▲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강아지 가끔은 '개'가 들어간 욕을 들으면 개한테 미안해진다. 사람이 더 나쁜데 말이다. ⓒ 정효정
나는 이미 지난 화에서 '남자를 찾아 산티아고에 갔지만 이곳에서 남자를 만나기란 힘들다' (참고기사: '물 좋은' 산티아고? 실제로 가보니)라는 내용으로 많은 분들의 김을 새게 했다. 물론 이곳에서 만나 연인으로 발전한 사람들은 많다. 내게 댓글이나 쪽지로 제보를 주신 분도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나서 여태 사귀고 있다고 혹은 결혼했다고. 아마 전생에 큰 공덕을 쌓았으리라 생각된다.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예쁜 사랑하시길 바란다.
하지만 이왕 김을 새게 한 김에 냉엄한 현실 한 가지를 더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바로 "변태 질량보존의 법칙"이다. 직장내 또라이처럼 변태 또한 마찬가지다. 오랜 기간 여행을 하고, 다른 나라에서 삶을 살면서 내린 결론이다.
▲ 이란여행 당시 이란미녀와 함께 그들의 율법에 따라 남성들을 유혹하지 않기 위해 온몸을 가렸지만, 그럼에도 성추행을 피할 순 없었다. 무슬림이 아닌 외국 여성은 율법의 적용을 안받기 때문이다. ⓒ 정효정
물론 차이는 있다. 지역에 따라 유난히 변태나 치한이 많은 지역이 있다. 그 차이는 대략 해당국가의 성 격차지수(GGI)에 비례한다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예를 들어 성 격차지수 5위의 아일랜드와 141위의 이란을 여행했을 때, 아일랜드가 아닌 이란에서 성희롱을 많이 겪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아일랜드에서 문제가 없었다고 '아일랜드는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거다. 어디에나 일정량의 변태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마찬가지다. 이 길은 인생의 진리를 찾아 떠난 사람들, 신의 존재를 갈구하는 사람들, 나 자신을 만나기 위해 온 사람들이 모이는 길이다. 이렇게 무형의 존재를 찾는 사람들의 눈엔 순수한 열망이 가득할 것 같지만, 다 그런 건 아니다. 이 길 역시 일정량의 변태가 존재한다. 길이 성스럽다고 사람들까지 성스러운 건 아닌 것이다.
▲ 누군가 악마 뿔과 꼬리를 그려놓은 순례자 표시 어디에나 나쁜 사람은 존재한다. "길이 성스럽다고 사람도 성스러운 건 아니다." ⓒ 정효정
일단, 변태는 아니지만 주의해야 하는 유형이 있다. '슈가대디'형이다. 서구권에서 '슈가대디'는 '젊은 여성들과 원조교제를 하는 나이 많은 남성'을 뜻한다. 하지만 산티아고 길의 '슈가대디'는 원조교제는 아니지만, 젊은 여성을 트로피처럼 데리고 다니고자 하는 중년 이상의 남성유형이다. 길을 걷다보면 가끔 혼자 온 젊은 여성 순례자 옆에서 열정적으로 떠들며 걷는 나이 많은 남성순례자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실제로 순례길에서 만난 한국여성들에게 집요하게 따라붙던 독일 남성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국 여성 두 명과 남성 한 명이 함께 길을 걷다가 만난 독일 할아버지라고 했다. 문제는 이 분이 자꾸만 한국 여성에게 과하게 스킨쉽을 시도했다고 한다. 결국 불편함을 느낀 여성들이 일부러 약속을 만들어 자리를 피했고 그 자리에는 한국남성과 이 할아버지만 남아있게 되었다. 그러자 이 분는 바로 정색을 하고 자리를 떴다고 한다. 애초에 이 어르신은 젊은 동양여성들과 함께 있고 싶었던 것이다.
중간에 만난 한 미국 여성은 이들 '슈가대디' 타입의 순례자들에 대해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며 밥 몇 번 얻어먹고 헤어지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이 '슈가대디' 타입들은 젊은 여성들에게 밥을 사주거나 여러 편의를 봐주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 아름다운 산티아고 순례길 만나는 사람도 모두 아름답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 정효정
하지만 이런 슈가대디 타입들의 습성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우리 상식으로는 나이 많은 이가 젊은이에게 호의로 잘해주는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우리 문화에서는 그렇기도 하다. 그러나 '어른은 나이 어린 사람을 사랑하고, 나이 어린 사람은 어른을 공경해야 사람의 도리가 바로 선다'는 장유유서(長幼有序)는 동양에서나 존재하는 거다.
이들 '슈가대디' 타입의 서양 남성들은 자신이 50~60세가 넘었지만 젊은 여성에게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동양여성이 타깃이 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불필요한 호의가 계속 되거나 조금이라도 도를 넘은 터치가 있다면 조심할 필요가 있다.
사실 슈가대디 타입은 애교에 불과하다. 이 길에는 하드코어형 변태도 있다. 일단 동서를 가로질러 가장 흔한 변태는 역시 바바리맨이다. 성도착증의 한 유형인 바바리맨은,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성기를 노출시키고 성적쾌감을 얻는 이상습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마찬가지다. 인적이 드문 산길이나 마을 입구 등에서 바지를 내리고 등장하는 바바리맨의 출현이 가끔 보고된다. 이들은 같은 순례자인 경우도 있고 마을 사람인 경우도 있다.
개중에는 자연을 사랑하는 누디스트(나체주의자)도 있다. 한 캐나다 여성은 자신이 길에서 만난 긴 포니테일의 미국인 남성 이야기를 해줬는데, 그는 길을 걷다가 아름다운 자연을 마주하면 머리를 풀고 옷을 다 벗어젖힌 후 자연을 만끽한다고 한다. 아마 그의 긴 머리는 중요부위를 가리기 위해 길렀나보다. 나체주의야 선택의 문제지만 허용되지 않는 곳에서 나체가 되는 것은 다른 평범한 변태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 인간에 대한 예의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공간에서 옷을 입지않아도 괜찮은 건 동물 정도가 아닐까ⓒ 정효정
두 번째는 친분형 치한이다. 주로 안면을 익힌 사람 사이에서 발생한다. 순례길 관련 카페에서 알베르게를 관리하는 자원봉사자인 호스피탈레로가 여성순례자를 상대로 성추행을 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또 길을 걸으면서 알게 된 순례자들 사이에서 무리하게 신체접촉을 시도하는 경우들이 있다.
사실 산티아고 길에서 악수나 가벼운 포옹, 가벼운 양쪽 뺨 키스는 흔히 있는 친밀감의 표시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부터 친했다고 과도한 친밀감을 표현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쪽, 쪽' 하고 경쾌하게 끝나야 할 뺨 키스인데 1초 이상 뺨에 입술을 붙이고 있는다거나, 무리하게 어깨나 허리를 감싸려고 하는 행동 등이다. 이렇게 무례하고 일방적인 스킨쉽에는 단호하게 'NO'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 경우 '문화차이'라며 오히려 억울함을 호소하는 서구권 남성들도 있다. 본인들의 나라에서는 이게 자연스러운 스킨쉽이라고 주장하는 거다. 이때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면 안된다. 헷갈리면 잘 생각해보면 된다. '지금 이 남성이 자기 나라 여성을 만났을 경우 똑같이 행동할까?' 그럼 간단히 답이 나온다. 이들은 보통 자국여성을 상대로 이런 스킨쉽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백번 양보해서 이게 설령 그들의 문화라고 해도 내가 불편함을 느낀다면 'No'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들의 문화만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다. 내가 나고 자라고 나의 바탕이 된 문화도 똑같이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 순례자 모습을 재현한 스테인드글라스 모든 걸 내려놓고 걷는 순례길, 하지만 성욕만은 내려놓지 못한 남자들이 존재한다. ⓒ 정효정
친분형 치한은 한국 순례자 사이에도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산티아고 길을 걷다가 13살 정도 차이가 나는 한국남성에게 성추행을 당한 20대 대학생이 있었다. 순례 초반에 한국인 몇 명이 함께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어서 나도 그 남성을 알고 있었다.
첫 만남도 사실 어딘가 석연찮았다. 그 남성의 이름이 꽤 특이해서 그 이름은 부모님이 어떤 뜻으로 지어주신 건지 물어보자, 대번에 공격적으로 '그쪽은 나이가 몇 살인데 내 이름을 입에 올리냐'는 삐딱한 질문이 돌아왔다. 어이가 없긴 했지만 그냥 '너보다 두 살 더 많다'고 하자 바로 제압할 수 있었다. (나이가 무슨 권력도 아니고, 사람만 보면 나이로 서열짓는 행동은 그만 좀 했으면 싶다. 최소한 한국밖에서라도.) 어쨌든 그래서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여학생에게 카톡 메시지가 왔다. 혹시라도 그 남성과 마주치면 조심하라는 거다.
그 둘은 순례 초반에 한 번 만나고 중반에 다시 마주쳤다고 한다. 늘 '오빠가~'라는 말을 입에 붙이며 친밀감을 과시하더니 하루는 '서로 안마를 해주자'는 식으로 들이댔다고 한다. 그리고 그게 안 통하니 결국 바래다 준다는 핑계를 대서 인적없는 길에서 억지로 껴안는 추태를 부렸다. 그것만으로도 충격적이지만 그 이후의 이야기도 공포스럽다. 그후 그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매일 그녀에게 카톡 메시지를 보내며 스토킹을 일삼았다.
▲ "오빠 믿지?" 당당히 "아니요"라고 답하자. ⓒ 정효정
문제는 그녀뿐이 아니었다. 그 남성이 다른 한국 여성에게도 '서로 안마를 해주자'는 식으로 친밀함을 가장한 성추행을 시도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주로 20대 초반 여성들에게 '오빠'임을 내세워 두루두루 들이대는 듯했다. 한국 순례객들 사이에는 그 남자 조심하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그가 내 눈에 띄면 '엄한 누나의 위엄'을 보여주고자 했지만, 걷는 속도 차이 때문에 다시 만날 일은 없었다.
물론 이 길에 변태나 치한, 슈가대디만 있는 건 아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멋진 인연을 만날 가능성이 더 많다. 매일 마주치면 '올라(Hola, 안녕)'와 부엔카미노(Buen camino, 좋은 여행을)'을 외치고, 저녁이 되면 함께 포도주잔을 기울이며 조심스럽게 이 길을 선택한 이유를 물어보는 상식적이고 친절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앞서 말한 케이스들은 극히 일부의 일부이고, 그 한국 남성도 수많은 성실한 한국인 순례자 중에 단 한 명의 치한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굳이 이런 즐겁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위에도 언급했지만 이 세상 어디에나 자신의 성적만족을 위해 여성을 이용하려는 남성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리 산티아고 순례길이어도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방심은 금물'이라는 것을.
▲ 물론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멋진 인연들을 만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럼에도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한다. "방심은 금물" ⓒ 정효정
덧붙이는 글 | 걷는 것을 싫어하는 한 여자가 2015년 9월에서 10월 사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여행기입니다. 제 인생의 특별한 순간이던 순례길의 기억들과 다양한 정보들을 가감없이 들려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