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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 Nov 10. 2020

7. 거 참, 제가 알아서 할 텐데요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한 거야. 낳아봐라 지옥이지


(나 지금 지옥에 살고 있으니 너도 곧 불맛을 보게 될 거야. 어서 와!! )

먹덧이 심하면

지금 많이 먹어둬, 나오면 먹고 싶어도 못 먹어!

입덧이 심하면

죽을 거 같지? 그래도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한 거야!

조금만 돌아다녀도 힘들어서 금방 주저앉으면

낳아 봐, 아무 데도 못가~ 갈 수 있을 때 많이 다녀!

육아휴직을 1년 꽉 채워 쓰려니

금방 복직하고 싶을걸? 일할 때가 천국이지!

시간이 너무 안 간다고 빨리 보고 싶다는 말에는

나와봐~ 다시 넣고 싶을 거다~


출산하고,

지옥불에 떨어진 엄마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우리네들 엄마에게서는 들을 수 없는 얘기다.

고작 0~몇 년 터울 선배(?) 들의 고상한 오지랖일 뿐.

그렇다면,

당신들의 주니어에게 ‘아가 나는 네가 뱃속에 있을 때가 좋았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너를 다시 넣고 싶어’라고 얘기해 줄 수 있겠는지?



육아용품을 쇼핑할 때만 해도 ‘행복’에 허우적거리지만 그 행복은 금세 일상에 희석되고 적응돼버려 더 큰 자극을 찾아 나서는 엄마들을 종종 보게 된다. 출산과 육아라는 과정을 ‘독박’과 ‘고통’이라는 이름으로 곱씹고 빚어서 그걸 능가하는 이벤트를 받지 못하면, 지금 내게 주어진 이 모든 상황은 당연하다는 듯 ‘되돌리고 싶은 그것’으로 치부하며 스스로 마음을 시끄럽고 산만하게 만드는 것이다.  

마치 그것이 임신-출산기의 현대 사회 통념이자 통과의례인 것처럼.


여성이 되는 주체적인 경험이 있어야 엄마가 됨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아직 정서적으로 '청소녀'였던 사람이 엄마가 된다면 '엄마로서의 삶 때문에 여성으로서의 삶이 없어졌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천일의 눈 맞춤/이승욱]에서 말한다.


난 청소녀인 상태를 옹호하자는 것도, 부정하자는 입장도 아니지만 분명 ‘엄마’는 늘 정서적으로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돌볼 필요가 있다.


내가 행복하면 아이도 행복하고,

성숙하고 따뜻한 마음은 그 눈빛만으로도 위로와 응원을 전달한다.


나는 심지어 아무런 조언도 구하려 하지 않았다.

저런 주옥같은 멘트는 제발 그만!






지금이야 네 뱃속에 있으니까 빨리 보고 싶다 그러지 낳아서 하루만 봐보라 그래. 다들 집 나간다.


이건 또 무슨 애비규환인가


우리 집 예비 애비는 임신 사실을 확인한 후로 도대체 뭘 찾아봤길래 너튜브만 열만 아가 동영상들이 수두룩 빽빽이다. 무서운 빅데이터!!

퇴근길에 만나도 내 손보다 배를 먼저 잡기 시작한 지 이미 오래다. 빨리 보고 싶고, 빨리 안고 싶고, 우리 딸은 밖에 일절 내놓지 않을 거라는 (완벽한 사육?) 무서운 소리를 해대며 기다리는 사람.



근데 다들 ‘낳아봐라’ 란다.

(왜들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나 그려, 뭐 겪어보면 알겠지)


남편이 나 혼자서도 잘 볼 수 있다고 생각 있으면 복직 당겨도 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서 진지 떨며 되물어봤다. 근데 막상 출산이 가까워 오니 불안이 급습했는지 혼자는 어려울 것 같다고 귀엽게 웃는다.


나와 남편, 우리는 덕업 일치나 자아실현을 위한 경제활동이 아니라 지극히 생계를 위해 맞벌이를 하고 있다. 출산으로 건강하게 만나고 나면 한껏 들뜨고 설레는 마음으로 곧 공동육아라는 개소식 컷팅도 할 예정이다.


그리고 담대하게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헤쳐나갈 거다. 힘들면 다독이고 넘어지면 일어나고, 그렇게

다양한 경험과 기억의 조개 들을 주워 담아 부모라는 숨결과 바다에 녹여 내 아이에게 선물하고 싶다.

많은 것들이 뒤틀리고 삐뚤어질 때 천마리 학처럼 세워두고 바라보면서 단단하게 바로 설 수 있게 해주고 싶다.


그런 우리의 꿈과 희망을, 제발 ‘낳아봐라’고 조롱하지 말아 줬으면.


코칭 하는 법좀 제대로 배우고 말씀 하시죠!!






조심해야지. 나이도 있는데


나도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처음 임신 사실을 알고 2주마다 검진을 받을 때에는 늦깎이 엄마라는 무의식에 수능 볼 때도 안 했던 기도를 할 정도.

 ‘거기 그대로 잘 있어줘 엄마 곧 만나러 갈게’


재택을 시작했을 즈음, 26주 차에 접어들면서 아침을 다시 요가로 열기 시작했다. 온몸은 가볍게 달궈지고 살짝 맺히는 땀과 깊어지는 호흡은 컨디션을 한껏 끌어올려 줬다. 붓기도 없고 허리 통증도 거의 못 느꼈으며, 두 개의 심장이 같이 뛴다는 게 무엇보다 행복했는데,,



갑자기 3주 만에 조산 위험으로 입원.

수련이나 운동하겠다고 애쓰지도 않았고, 회사일에 사활을 걸지도 않았으며, 그저 건강하게 먹고 생각했다.


고위험 산모라는 완장을 차다 보니 먹는 것부터 옷차림, 움직임까지, ‘나이도 잇는데’ 조심하라니 왜 무리했냐며(요가) 듣는 랜선 잔소리..


우리 엄마도 안 하는데, 듣는 산모 고달프다.






임신기의 어떠한 이벤트도,

‘임신을 한 여자라면 누구나 다 똑같이 겪는 열병’ 이 아니다. 입덧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나는 양막 파수(자궁경부로부터 양수가 새어 나오게 되는 것)로 입원까지 했었다며 별거 아닌데 유난 떤다 치부할 수는 없지 않은가?


통각은 철저하게 개별적이다.

지극히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상대방의 ‘엄마 준비’를 일차원적으로 해석하려 들지 말자.


저도 임신이 처음 이에요.

모든 엄마들스스로 겪고 부딪히고 넘어지며 성숙해  수 있게 따뜻한 응원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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