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임신하니까 좋아요?
그럼!!
출근 전에는 기분이 좋아지는 의식 중 하나인 메이크업을 하고, 미처 처리 안된 업무와 해야 될 일들을 나래비 세우며 운전하는 날도 태반. 한여름에도 커피는 뜨거워야 한다는 신념으로 뜨아를 사들고 뼛속까지 시린 에어컨 바람 아래서 피고용자로 변신 하기를 3년 남짓. 요가 수련으로 시끄러운 마음을 달래고 남편과는 시시덕 거리는 여유로움으로 채워가던 그 시간 속에 아이가 들어왔다.
화장하는 시간에 간단한 아침 식사와 과일을 준비하고, 출근길에는 내손, 남편 손 끌어다 미동도 없는 배에 대고 수다를 떤다. 커피 대신 루이보스를 사들고 출근하면 어제 하다 만 업무라도 잔여감이 아닌 그저 오늘의 To do list로 새로 분류해 처리하곤 했다. 요가 수련은 못한 지 오래지만 여전히 퇴근 후 남편과 노닥거리는 시간은 즐겁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놓치면 낙오되는 ‘업무, 성과’라는 패는 여전히 나에게 변함 없지만 바라보고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 맹목적으로 사활을 건다거나 ‘대충, 적당히’ 하는 그 중간 어디메쯤에서 자연스럽게 찾아진 평온한 상태라고 할까?
출산 이후 사회에서의 경력단절에 대한 불안함과, 연수 따위 없이 시작해야 하는 엄마라는 보직에 대한 걱정도 무시할 수 없지만 아직 아가를 품은 10 달이라는 임신기 속에서는 설렘이 한점 앞서 버렸다. 그게 호르몬으로 푸석해진 얼굴을 젖히고 고스란히 내 AURA로 드러나나 보다.
요즘 좋아 보여!
남편 자유이용권
꼭 임신이 아니어도 ‘내 것’이라면 애지중지 하는 성격 탓에 여러모로 보살핌을 받고 있지만 그 반경과 깊이가 한 뼘 넓어졌다.
‘밥을 차려내주던 마누라의 체력이 달린다’
남편은 주방은 냉장고를 열기 위한동선일뿐 요알못이라 시도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지만 늘 먹고 싶다는 걸 찾아서, 없으면 비슷한 놈 으로라도 챙긴다.
‘설거지와 집안 청소’
남편은 혼자있을때 최선을 다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마누라가 있어야 재잘거리는 소리 콜라보 삼아 움직이는데 자주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쌓이니 직접 처리하기 시작한다.
자그마한 뒤척임에도 흠칫 놀라 살피고, 마누라 발쪽에 머리를 두고 교차해 누워있으면 너튜브 ‘시청’ 꿈나무라 한 손은 핸드폰 다른 한 손으로는 잊지 않고 다리를 주무른다. 직접 체험할 수 없는 노릇의 ‘임신’은 입퇴원을 반복하는 마누라의 힘겨운 모습과 후반기 놀랍게 벌크 업하는 배 둘레를 보면서 실감한다. 최선을 다해서 누워만 있어야 하는 나는 가끔 사육당하는 느낌이지만 결코 손가는 일 없도록 화장실도 에스코트하니 말이다.
남편을 이용해 먹어서(?) 좋다기보다 한편으로 임신이 혼자 외롭게 짊어지는 열 달이 아님을 느끼게 해주는 모습들에 감사하다. 그의 대단하진 않아도 자신의 가동성 안에서 충분히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상대가 느낀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발전이니까.
좋을 수밖에!
시간이 많아졌다.
평소의 패턴대로라면 내가 쓰는 시간의 약 30%는 소비에 맞춰져 있었다. 철저하게 욕구가 필요를 부른다. 좋아하는 브랜드의 시즌 컬러를 구경하며 같은 브론즈라도 내 눈에만 미세한 차이가 보이는 섀도처럼, 몇 번 바르고 입고 쓰다 보면 금세 익숙해져 또 다른 자극을 찾곤 한다. 하물며 이런 산만함을 잠재우고 오롯이 나만 바라보는 게 좋아서 시작한 요가도 더 트렌디 하고 더 편하고 더 예쁜 걸 입고하고 싶어서 판매처를 팔로우하며 구독하니 말이다.
이 모든 게 일부 사그라들었다. 20% 정도는 오롯이 무언갈 쫒는 게 아닌 ‘시간’으로 보상받는다. 가끔씩 육아용품을 구경하느라 구토가 유발되긴 하지만 막상 구입을 하진 않는다. 필요에 의한 게 맞는지 생각하고 따져보게 되며, 내가 구한 20%의 시간 안에서 나는 그간 미뤄둔 독서와 사색을 최대한 즐긴다. 커피를 맘껏 마시지 못하는 아쉬움을 대신하는 따뜻 한 찻김이 안경에 서리는 순간조차도 행복하다.
흐리고 맑고 춥고 더운 예쁜 계절들을 그대로 느끼면서 오직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만을 바라보며 몰입하다 보니,
내 AURA가 따뜻해졌다!
임신하니까 좋아?
임신해도 좋네!
임신을 해서 좋은 게 아니아 임신을 해도 좋더라.
내 삶이 뿌리 뽑혀 송두리째 흔들릴 것만 같았던 첫날의 무시무시했던 기억은 추억이 되었다.
시끄러운 간섭만큼이나 사랑스러운 관심이 쏟아졌고, 일부 관종 자극을 추종하는 나로서는 즐거운 일이다.
힘에 부쳐도 설레고, 두려워도 기대되고, 속상하다가도 행복함으로 녹아드는 순간들이 나를, 우리를 살게 한다.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많은 것이 달라진다. 근손실로 불어나는 몸이 슬픈게 아니라 신기하고. 육안으로 드러나는 태동이 뚫고나올것 같은 고통을 수반하지만 기특하다. 지금도 출산 전까지 어떤 이벤트가 생길지 몰라 조심스럽게 모든촉을 곤두 세워 5분대기조 마냥 관찰해야하지만
우리 날씨는 늘 꽤나 맑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