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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투툼 appatutum Sep 10. 2021

아이템베이에서도 못구하는 장비들 여기 다있다

[EP.21] 42년차 막내 대장장이의 꿈

어르신들과의 만남을 뒤로한채 봉리단길 한복판으로 걸었다. 지난해 시즌1 촬영하는 날, 고소한 참기름 냄새에 이끌려 갔던 '봉황참기름'집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꼬순내'를 풍기고 있었다. 참기름집을 지나 코너를 돌면 대형 기타 조형물이 나온다. 


어라? 그런데 기타 옆에 뭔가 그럴듯한 새 점포가 생겼다. 뭔가 싶어서 간판을 보니까 '가야대장간'이란다. 대장간이라니, 생소한 곳이다. 그것도 이렇게 도심 한복판에 있는 대장간이라니. 뭔가에 홀린듯 대장간으로 들어갔다. 아직 정식 오픈도 하기전의 대장간이라고 하셨다.


대장간에 들어가니 다양한 철 제품들이 보였다. 완전 꼬꼬마시절 연탄 배달하는 분들이 사용하던 연탄집게도 보이고 추억의 아이템들이 많이 있었다. 사장님들도 그냥 구경하러 들어간 우리는 아주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기회는 이 때다 싶어 사장님께 인터뷰 요청을 드렸다.








42년차 대장장이분에게 퀴즈 정답 선물을 드리는 당신들



전병진 : 저는 이 대장장이 일을 42년 한 전병진입니다.

큰당신 : 작년에 우리 여기 지나갔잖아요? 작년에 여기 기타 구경하면서 우와~ 이랬는데 올해 1년만에 지나가다보니까 못보던 신기한 공간이 생겨서 무작정 저희가 들어왔습니다. 본인을 대장장이라고 소개를 해주셨네요? 

전병진 : 네.

큰당신 : 요즘에 대장장이라고 하면 온라인 게임에서나 볼 수 있는 직업 아닙니까? 대장장이 설명해주시죠? 어떤 일을 하시는지.

전병진 : 철 일의 시초가 대장간에서 나오는건데 사양 산업이다보니까, 너무 힘들고 배우는 사람이 없고 이러니까 전국에 거의 다 없어지고, 지금 남은 것은 제가 생각할 때 (대장장이분들이) 10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많지가 않아요. 처음 입문할 시기에 저는 신기해서 이 일을 시작했다가 저도 그만둘까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중국산에 밀리고, 제가 안하면 (대장장이 산업이) 안될 것 같아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맙게도 아들이 대를 잇겠다고 해서 이렇게 새로 준비를 하게 됐습니다.

작은당신 : 여기는 도시 한복판이잖아요. 보통 보면 외곽지대에 있을법한 느낌인데 여기에서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전병진 : 제가 여기에만 있는게 아니고 작업장은 따로 있어요. 사실 여기를 오게 된 것도 김해시에서 '봉리단길하고 연계를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런 것도 있고 저도 와보니까 위치도 마음에 들고, 요즘은 젊은 사람들은 대장간을 몰라요. 그런데 아들이 하다 보니까 젊은 세대들하고 대장간을 접하기 위해서 봉리단길하고 연계를 해서 이렇게 하게 되었습니다.

큰당신 : 대장간 일을 오래 하셨다고 하셨죠?

전병진 : 42년했죠.

큰당신 : 이 일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전병진 : 선택한 이유는 따로 없구요. 그 때 당시에 고등학교를 안가려고 하니까 아버지가 힘들지만 '이 일 해봐라' 이랬습니다. 대장간 처음와서 보니까 그때만해도 너무 힘들었어요. 다들 시커멓게 탄 모습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쇠를 두드려서 만드는게 너무 신기하더라구요. 거기에 반해서 계속 하다보니 지금까지 옆길로 안새고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지금도 만드는 자체는 재밌어요. 쇠를 내 마음대로 주물러서 만들 수 있다는 자체가. 근데 대장간이 원래 그렇잖아요. 쇠를 달궈서 두들겨서 만드는거다 보니까 손님들이 원하는대로 만들 수 있는 그게 대장간이고, 지금도 제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큰당신 : 듣다보니까 생각난 것이, 저희가 예전에 도자기 만드는 분도 만났었어요. 도자기를 만드는 분들은 수십년동안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면은 '명인'이라는 타이틀이 붙더라구요. 나라에서 인정해주는 것도 있고, 혹시 대장간 쪽도 그런게 있나요?

전병진 : 대장간이 지금의 경우는 도에서 지정하는 곳이 두세군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아직까지 장인이나 인간문화제 지정 같은것은 안되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큰당신 : 이쪽(대장장이)은 이런게 없습니까?

전병진 : 전국 대장장이 연합회가 있지만, 저희 대장간 하는 사람들은 다들 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까, 일만 했죠. 선배들 다 그래요. 힘드니까 자식 안물려 주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까 지금은 대장장이라는 직업이 거의 없어 졌어요. 제가 42년 했는데 대대로 배우는 사람 중에서 제가 막내에요. 더 밑에는 없어요. 다른 나라는 만두 하나가지고도 몇 대를 거쳐하고 그러는데 우리나라 부모들은 내가 힘들었으니까 너희는 하지말고 공부해라. 편한 길로 가라. 다 그러잖아요. 

작은당신 : 도자기 장인 한분 인터뷰 했을 때 그런 말씀 하시더라구요. 비슷한 말씀인데 그분은 말씀하시기를, 자기는 힘들게 했는데 자식들한테 시키기 싫지만은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아들이 이어가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는데 '안한다고 해서 아쉽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뿌듯할 것 같아요.

전병진 : 그렇죠. 사실 저도 안했으면 하면서도 받아준다고 하니까 마음은 기분좋고 뿌듯하죠. 제가 이만큼 와서 여기까지 왔는데 아들이 하면 더 업그레이드해서 올라갈 수 있는데 그러면 다음에 더 좋은 것도 만들 수 있을것이고요. 내 선에서 끝이나버리면 사실 너무 안타깝잖아요. 

큰당신 : 사장님은 김해가 고향입니까?

전병진 : 아니요. 

큰당신 : 어디분이세요?

전병진 : 저는 산청입니다. 

큰당신 : 산청! 김해에는 이거 하시면서 오신건가요?

전병진 : 김해에 온지 한 30년 넘었죠.

큰당신 : 오래되셨네요.

전병진 : 김해도 저는 변두리에 30여년 살았죠.

작은당신 : 작업실이 그쪽에 있군요.

큰당신 : 퀴즈 내기 전에 마지막 질문을 하나 더 드려야겠네요. 다른데서도 사셨고 김해에서도 사셨잖아요. '김해가 다른 곳보다 이런 점은 좋다' 이런거 있습니까?

전병진 : 제가 여기 오게 된 것도 김해가 가야사 철의 고장으로서 대장간 하나 없다는 자체가 아쉬웠고, 제가 앞으로 있는 동안에 가야가 철의 고장이니까, 그런 쪽으로 가치복원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큰당신 : 좋은 말씀이십니다. '앞으로의 김해가 더 멋질 것이다.' 이 말씀이신거죠? 사장님이 앞장서시겠다는 말씀이신데 큰 포부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나라는 몸을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문화가 있다. 정말 안좋은 문화. 노동에서 나오는 '땀'이야 말로 진정한 인생의 '가치'다. 그렇게 땀흘려 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그럴듯하고 번듯한 직업을 갖길 바라는 세상에서 아버지의 '대장장이'라는 직업을 이어 받아 계속 해나가기로 한 사장님의 아드님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됐다. 그렇게 우리나라도 100년 가게 200년 가게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노력을 통해 '장인'이 된 사람들이 더 인정받는 그런 문화가 확산 되었으면 좋겠다.



(본편은 아래 동영상으로 시청하세요)

https://youtu.be/i9MuY9UK5j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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