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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투툼 appatutum Apr 08. 2016

말도 되지 않게 대기업에 합격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53] 대기업 면접

"나이 서른넷 어느덧 벌써 30대 중반 나에겐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30대 중반 미친 듯이 일만 하며 살아온 10년이 넘는 시간 남은 것 고작 500만 원 가치의 중고차 한 대, 사자마자 폭락 중인 주식계좌에 500 아니 휴짓조각 될지도 모르지 대박 or 쪽박 


2년 전 남들 따라 가입한 비과세 통장 하나 넘쳐나서 별 의미도 없다는 1순위 청약통장 복리 좋대서 주워듣고 복리적금통장 몇% 더 벌려고 다 넣어둬 CMA통장 손가락 빨고 한 달 냅둬도 고작 담배 한 갑 살까 말까 한 CMA통장 이자 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 놈 가끔 연락이 와 자기는 노가다 한대 노가다해도 한국 대기업 댕기는 나보다 낫대 이런 우라질 레이션 평생 일해도 못 사 내 집 한 채"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노랫말 중에서
                                                                                    

▲ 상장기업 난생처음으로 코스닥 '상장기업'에 취직했지만 나와는 맞지 않을 것 같아 하루 만에 그만뒀다 


3차 최종 면접에서 석사 출신의 재원을 따돌리고 어렵사리 입사한 코스닥 상장기업은 입사 한 지 하루 만에 나와 인연이 되지 않음을 직감했다. 출근 첫날, 오전 내내 사무실에서 웹서핑을 하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선배 사원과 함께 왜관 공장 현장 곳곳을 둘러보고 차를 마시며 회사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당시 나는 코스닥에 상장될 정도의 회사면 당연히 자체 브랜드의 제품을 가진 독립된 회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중소기업들처럼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많은 중소기업 중 하나일 뿐이었고 근무 환경 역시 다른 중소기업들과 크게 다르지 않고 열악했다.


나는 열아홉에 사회생활을 시작해 스물여섯이 될 때까지 여러 분야의 업무를 경험했지만 주로 PCB(Peinted Circuit Board-인쇄회로기판) 회로 관련 업무를 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취직한 회사는 반도체 공장처럼 '클린룸(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미세한 먼지도 존재하지 않도록 외부와 차단하여 만든 방)'이 운영되는 LCD용 형광램프를 만드는 곳으로 여태까지와는 다른 환경의 회사였다.


회사에서 만들어지는 형광램프는 전량 구미에 있는 대기업 LCD 회사에 납품되었다. 그 대기업은 이곳 이외에도 같은 부품을 공급받는 회사가 더 있었고 그 회사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다. 회사의 거래처는 오로지 그 대기업 하나뿐이었기에 그 치열함은 더욱 심했다.


나는 직장을 고를 때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해왔다. 회사에 취직을 해서 돈도 벌어야 하고 나의 일을 사랑해서 성취감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내 삶을 충분히 즐기는 것 또한 놓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신념은 아무리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해도 '내 시간'을 가질 수 없는 곳이라면 과감히 포기하게 만들었다.


지난 7년 가까운 시간 동안 많은 곳의 회사를 옮겨 다녔다. 그중에는 제법 규모가 큰 회사도 있었지만 '상장 기업'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회사'에 취직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 회사를 하루 만에 그만두었다. 그 이유는 이번에도 '내 시간'을 가질 수 없는 회사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LCD 산업은 호황이었다. 구미에 있는 대기업 LCD 공장의 일주일은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바쁘게 돌아갔고 그에 따라 협력업체들도 바쁘게 돌아갔다. 특히 회사의 품질보증팀은 일요일에도 그 대기업의 호출로 불려 들어가기 일쑤였다. 그 적나라한 일상을 얘기해주던 선배 사원은 이미 그런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고 그렇게 반납한 휴일을 '수당으로 돈을 더 벌어서 좋은 일'이라 표현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달랐다. 일주일에 단 하루도 쉬지 못하는 회사, 그런 회사는 아무리 돈을 많이 주는 회사라 해도 다니고 싶지가 않았다. 이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서류를 내고 1차, 2차, 3차 면접까지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 아깝기는 했지만 포기하기로 했다.


첫날이라 준비할 것이 많다며 야근을 하지 않고 정시 퇴근을 했다. 아직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신입 사원이라 저녁에 남아 있어봐야 식대와 수당만 축낼 것이 분명한 상황인데도 정시에 혼자 회사를 나오는 건 엄청난 눈치를 봐야 했다. 그 길로 퇴근을 한 나는 인사팀 담당자에게 문자를 보내서 '내일부터 출근하지 않겠다'고 했다.


죽기 전에 한 번쯤은 대기업에서 일해보는 게 좋다


▲ 면접 사무실 제일 안쪽에 있는 대회의실에서 한 번에 5명씩 면접이 진행됐다 


한여름이 시작되던 7월 중순에 1년 가까이 다니던 회사를 나와 백수로 지낸 지 한 달이 지났다. 회사 다닐 때는 한 달이 그리 길게 느껴진 적이 없었는데 먹고 놀면서 '돈 떨어지기 전에 다른 직장 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백수에게는 한 달이 길게만 느껴졌다. 백수생활이 길어질수록 마음은 점점 초조해져만 갔다.


매일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정독하는 구직 사이트에는 매일 똑같은 광고들만 오르락내리락 해댔다. 이제는 구인 광고만 봐도 대충 어떤 회사인지 '감'이 왔다. 그 회사들에 취직하기는 싫고 돈은 떨어져 가니 노는 것에도 점점 신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지역 신문을 인터넷으로 보다가 눈에 띄는 구인광고를 발견했다.


그 광고는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지역 유선 방송국의 채용 공고였다. 내가 살고 있는 구미 지역은 해당이 되지 않았는데 우리 본가가 있던 김해에 사람이 필요하다는 공고가 나 있었다. 그 광고를 보고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던 멘토 신 과장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죽기 전에 대기업에서 한 번쯤 일해보는 게 좋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과장님의 말씀이 뇌리에 꽂혀 지금껏 유선 방송 관련된 경험도 전무한 내가 무언가에 흘린 듯이 원서를 냈다. 지역별로 고졸에서 전문대졸의 학력이 요구되는 구인광고였는데 우리 집이 있던 김해 지역은 고졸학력의 '신입'을 뽑았다. 당시 나는 사이버대학에 진학해 2학년에 재학 중이었기 때문에 '고졸'이었고 해당 업종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으니 당연히 '신입'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학교를 잘 나가지 않았다. 평범하지 않은 가정환경 탓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한 것에 대한 불만이었던 것 같다. 철들고 취업을 할 때가 되니 그렇게 살아온 내 과거에 발목이 잡혀 엄청난 고생을 해야만 했다. 그 덕에 내 고등학교 생활기록부 '출석'란은 온통 숫자들로 가득하다. 그런 내가 대기업에 원서를 낸다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었지만 그래도 '혹시나'하는 마음에 한번 내보고 싶었다.


그 회사에 원서를 내고 별 기대를 하지 않은 채 여느 때와 같이 구직 사이트를 뒤지며 놀고먹고 있을 때 그 회사로부터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내 생활기록부 상태를 보고도 서류 통과를 시켜준 그 회사가 신기했고 한편으로는 '이러다 진짜 붙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서류에서 떨어질 걸로 예상했기 때문에 지원서에 나의 경력사항은 하나도 기재하지 않았다. 대학을 다니고 있는 것도 쓰지 않았고 딱 졸업한 고등학교만 써서 제출했는데 서류가 통과된 것이다. 미스터리한 이 일을 입사한 뒤 날 뽑아준 팀장님께 넌지시 여쭤보니 서류 제출한 사람 전부를 다 불러서 '면접 보고 결정하자'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결론은 내가 면접에서 1등을 했다는 거였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우리 집은 부산에서 김해로 이사를 왔다. 햇수로는 내가 김해에 산 지 오래되었지만 매일 부산에 있는 학교를 다니다 구미로 취업을 나갔기 때문에 김해의 지리를 잘 알지 못했다. '내외동 신도시'에 있는 그 회사를 찾지 못해서 한참을 헤매는 바람에 면접 시간에 늦을 뻔했다.


여태껏 제조업을 하는 회사에서 주로 일을 해오다 보니 '회사=독립된 건물'로 생각했다. 대기업이라고 하면 구미에 있는 엄청난 규모의 사옥을 가진 회사라는 게 내 머릿속에 박힌 대기업의 이미지인데 이 회사는 빌딩의 일부 층만 사용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에 올라가서 그 회사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호화로운 인테리어에 '대기업은 대기업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조업이 아니기 때문에 '공장'이 필요 없으니 이렇게 커다란 사무실만 있으면 된다는 것도 그제야 이해가 됐다. 넓은 사무실에 여러 개의 팀으로 나뉘어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고 사무실 제일 안쪽에 있는 대회의실에서 면접이 진행되었다.


채용하고자 하는 분야는 '구매관리' 직무를 담당할 사원이었다. 면접에서 나는 회사에서 구매한 부품들의 품질관리를 하면서 거래처들을 관리했던 경험을 어필했다. 나와 함께 면접을 보던 나머지 4명은 이미 이 유선방송국에 대해 아주 잘 아는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는 협력업체에 근무를 하고 있던 사람도 있었다. 그에 반해 나는 이 업에 대한 지식이 너무 없었다.


애당초 서류에서 탈락했어야 했던 나였기에 '대기업 구경이나 해보자'는 생각으로 면접에 왔다. 그래서 김해까지 내려오면서도 어머니께 말씀도 드리지 않고 면접만 보고 다시 구미로 올라갔다. 그런데 며칠 뒤 놀랍게도 나는 합격 전화를 받았다. 


대기업 합격 소식에 너무 놀랍고 당활스럽기까지했다. 또한 그 회사에 들어가려면 터전을 잡고 살아가던 구미를 떠나야 한다는 것에 잠시 망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본가로 내려간다는 소식을 어머니께 전하니 너무나 기뻐하던 모습에 결국 구미를 떠나 입사를 결심했다. 그렇게 나는 말도 안 되게 대기업 사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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