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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땅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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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장헌 Aug 13. 2019

어제의 아픔을 알은체하지 않아서

상처를 제때 치료하지 못해 덧나곤 했어요 다가올 아픔을 잠시 미뤄보려고 병원인지 어딘지에 연락했지만 연체된 아픔이 많아 그럴 수 없다고 했어요 진통제 대신 받아온 소독약 웃통을 까면 보이는 까만 상처 조금씩 미리 아파 둘 걸 야속한 과거의 나를 반성해요 의사 간호사 조무사 장의사 누구도 없는 생활관 침상 한 켠에서 모두가 잠든 뒤 가슴팍에 빨간 소독약을 바르고 메스로 살점을 갈라 내요 거울로 비추어 보면 시꺼먼 속 뭉쳐있는 무언가, 무언의 비명, 한 덩이의 종양을 드러내고 마취가 풀린 뒤 밀려오는 아픔은 해일보다는 홍수 같았고 눈물로 차올라 잘박거리는 발소리 수도꼭지를 잠그고 싶었지만 돌려도 돌려도 잠기지 않았어요 잘라낸 종양 덩어리는 가루가 되어 흩어져 버렸고 공기청정기가 없어 환기를 해야만 했어요 겨울의 시린 바람 가슴팍을 훑고 지나가면 벌어진 상처가 하얗게 얼어버릴 것만 같아서 녹는 의료용 실로 스무 바늘을 꿰맸고 새벽이 밝아오기 전 북두칠성 모양으로 흉터가 생겼어요 텅 빈 마음속부터 새살이 차오르고 나면 보호필름을 붙여야겠어요

상처는 무감각해지고 쓰린 속은 달랠 수 있겠지만 어느 날 새벽에 홀로 깨면 다가올 상실감은 견딜 수 없어서, 낮잠은 자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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