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느낌이 좋았다. 다 내려온 계단에 사실은 한 칸이 더 있었을 때 - 또는 그 반대의 경우에 느껴지는 감각이 좋았고 가끔은 일부러 눈을 감고 딴생각을 하며 걸었다. 대부분의 경우 의미 없었다. 롤러코스터는 으레 맨 뒷자리에서 손잡이는 잡지 않았고 웬만한 자극은 시시해졌다. 번지점프는 버킷리스트에 개근하고 있었다. 난 늘 떨어지고 싶었다.
속마음이 가끔 입 밖으로 튀어나올 때가 있다. 화장실 세면대에서 컵을 씻던 이등병 이장헌도 그랬고 그걸 화장실 제일 안쪽 칸에서 큰 일 보다가 들은 조 중사는 둘만 있을 때 진지하게 물었다. 힘든 일 있냐고. 그때의 위로는 당황스러웠지만 도움이 됐다. 아무 때나 뛰어내리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다.
내가 그때 '뛰어내리고 싶다'라고 했는지 '죽고 싶다'라고 했는지 확실치 않다. 그때는 둘 모두 밥 먹듯이 생각했고 어느 게 입 밖으로 나왔는지는 확신이 없다. 전자는 지금도 해당하지만 후자는 잘 모르겠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할 때면 이따금씩 공허함이 밀려왔다. 17세 이후로 집을 나와 살았던 내게 외로움은 고질병이었다. 난 늘 기댈 곳이 필요했고 침대는 버팀목이 아니었다. 생활관의 딱딱한 매트리스는 형태를 잃고 중력은 방향이 틀어졌으며 세반고리관은 꿈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이불의 시커먼 속은 따뜻했고 포근했지만 모자랐다. 고장난 중력은 뉴턴을 비웃듯 사라졌다.
난 떨어지고 있었다.
난 떨어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