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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장헌 Apr 14. 2022

과제

Q. 감추고 싶은 내 안의 혹은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보고, 나는 그 혹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A. 감추고 싶은 나만의 혹은 열등감이다. 남들도 다 그렇듯 나도 아주 어릴 적에는 열등감이 뭔지도 모르는 행복한 아이였다. 그땐 잘 먹고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도 있었고, 뭘 하든 잘한다 잘한다 소리를 들었으니까. 마음 속에 얼룩 하나 없던 시절이 있었더랬다.

점점 머리가 커가면서 남이 가지고 있는 게 부러워지고, 내가 못 하는 걸 해내는 또래애들을 보면서 위기의식도 느끼고, 내가 마음에 둔 친구가 다른 친구랑 더 친하게 놀고 하는 걸 볼 때 마음에 검댕이 묻은 듯 했다. 어른들은 나만큼 절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었다. 5살 아이의 인생 최대 난관은 어린이집 친구와 비교하면서 점점 높이가 갱신된다. 부러움은 긍정적인 감정으로 바뀌지 않아서,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세상을 탓했다. 장난감 안 사주는 엄마에게, 내가 먹고 싶은 과자 한입만 달라던 동생에게, 나보다 달리기가 빠르던 친구에게, 감정을 다스릴 방법도 필요도 몰랐던 미운 5살은 되는 대로 살았었다.

애들이 사회적 규범을 몸에 익히는 시점은, 하지 말라는 걸 했을 때 더 별로라는 걸 몸소 깨달을 때 오는 게 아닐까.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다. 엄마는 장난감 사달라고 떼쓰는 날 평생 마트에 살라고 두고 가고, 동생이 과자 못 먹어서 울면 양보 안하는 오빠가 혼나고, 달리기 잘하는 친구와 싸우면 마음이 불편하니까. 부러움이 열등감으로 바뀌면 힘들어지는 건 나였고, 몸소 겪으면서 어렴풋이 배워갔다. 마음 한 켠이 까매질라치면 오후 간식 따위의 행복을 생각하며 대충 지웠다.

욕심 많은 애가 부러움이 없어질 수는 없었지만, 열등감을 대충 얼버무릴 수는 있었나보다. 그 애가 커서 내가 됐고, 여전히 갖고 싶고 하고 싶은 건 많으며, 나보다 더 가졌는데 덜 노력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부러워서, 보게 되면 마음 한켠이 꺼매진다. 슬프게도 내가 일하는 청평댐에서는 여름에 놀러 오는 사람들이 엄청 잘 보여서, 땀 뻘뻘 흘리면서 일하는 데 스포츠카 타고 놀러 와서 웨이크보드 타는 사람들을 보면 괜시리 짜증도 나고 그렇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나는 그 사람들이 부럽고, 내 앞에는 확인해야 할 수문이 24개나 있다. 나는 그래서 오늘도 열등감을 얼버무린다.




학교 과제로 짧은 글쓰기를 했습니다. 매년 연초 계획 리스트에는 반기에 한번이라도 글쓰기가 목표로 들어있는데, 남이 시키기 전까진 좀체로 글이 써지지 않네요. 퇴고도 대충 하고 그대로 제출한 부끄러운 글이지만, 기록으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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