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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밋너 Jul 01. 2024

20240624~0630: 지난 주에 뭐 봤니? #2

한 주 동안 보고 읽은 것들의 기록

대체로 지난 주와 비슷한 정도로 뭔가를 보고 읽은 것 같다.


# 연극/뮤지컬


연극 두산인문극장 2024 권리 시리즈 <크리스천스> | 3.5/5

2024-06-26 20:00 : 박지일, 김종철, 안민영, 박인춘, 김상보(외 성가대 다수)

6월에 잡아놓은 작품들 중 어떤 의미로 가장 궁금했던 극이다. 2018년 초연이 올라왔을 때는 관심이 없어서 하는 줄도 모르고 지나갔는데, 두산인문극장 2024 권리 시리즈로 올라온 걸 보고 바로 예매했다. 박지일 배우 특유의 마스크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타이틀부터 너무나 직관적으로 <크리스천스 The Christians>라서 흥미가 안 생길 수가 없었다. 과연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을지, 공지로 안내된 성가대석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무엇보다 (강제)모태신앙인(가톨릭이지만)이었다가 비신앙인으로 오랜 시간 살아온 나에게 이 극이 어떤 의미와 감정을 안겨줄지, 모든 것들이 호기심을 유발하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사실 서사적 갈등의 구조 자체보다는 결국 믿음과 믿음의 균열, 모순과 같은 기독교(극에서는 개신교, 특히 개척교회에서 갈등이 벌어지지만) 내부의 꾸준한 논제, 소위 말하는 기독교적 변증을 고민해 본 이들이라면 이미 익숙할 논의들을 중심으로 펼치는 일종의 <크리스천's 쇼미더머니> 같은 느낌이다. 결과적으로, 115분(거의 120분 한 것 같지만)의 시간이 지난 뒤 왜 이 극이 <권리> 시리즈로 올라왔는지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교인이라면 적어도 한 번 쯤은, 혹은 그 이상 가져봤을 의문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대화도 재미있었지만 권리 부분이 내가 생각지 못했거나, 혹은 굳이 생각하려 하지 않았던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즉, 믿을 권리, 믿음을 흔들 권리, 내 믿음을 지킬 권리는 모두 어디에 있고 어디까지 주장할 수 있으며 어디까지 보호받아야 하는가, 이런 부분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극. 



연극 <빵야> | 3.5/5

2024-06-27 19:30 : 박정원, 김국희, 오대석, 송상훈, 허영손, 김지혜, 이서연, 김슬기, 최정우

써야 할 글을 한가득 안고 있는 상태에서 <빵야>를 본다는 것. 이날은 프레스 초대로 보게 되어 조금 뒷자리에서 무대 전체를 조망하며 극을 보게 되었는데, 빵야도 빵야지만 앞서 두 번 보았던 이진희 나나와 전혀 다른 김국희 나나를 볼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좋은 관극이었다고 생각한다. 국희 나나는... 이렇게 표현하는 게 어떨지 싶지만, 진희 나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끝까지 쓰고 또 쓸' 사람인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울기도 많이 울고 모든 걸 다 팽개치고 그만두고 싶다는 유혹도 크게 느끼겠지만 결국 포기하지 못하고 울면서 글을 쓸 나나. 박정원 빵야와 <태일>에서 함께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이날이 페어 첫공이었는데 둘의 합도 안정적인 편이었고, 눈물콧물바람이 되어서도 어떻게든 가보자고 씩씩하게 빵야의 손을 잡아 끌고 걸어갈 국희 나나의 모습이 계속 눈 앞에 어른거리는 그런 회차였다. 연출이나 노선 같은 것들을 거리두기하면서 지켜보는 방식이 아니라, '국희 나나'라는 인물에 집중해서 그 인물의 전사와 후사를 상상하게 되는, 이게 곧 나의 후기가 되는 그런 종류의 회차. 아, 김국희가 좋다.(물론 이진희도 두말할 필요 없이 좋다.)



연극 <GV 빌런 고태경> | 3.5/5

2024-06-29 15:00 : 백현주, 김소정, 강해리, 송석근, 안수정

사전 정보를 대충 보고 가서, 고태경만 젠더 스왑인 줄 알았는데 종현과 민대표도 모두 젠더 스왑이 됐음을 공연 시작하고 나서야 알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게는 이 편이 훨씬 'GV빌런 고태경'이라는 작품 자체의 메시지를 깊은 맛으로 느끼게 하는 긍정적인 효과로 느껴졌다. 원작 소설을 읽으면서, 그 경직된 영화계의 풍토와 '남선배들' '남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정서를 치떨리게 느낀 탓에 조혜나와 고태경/조혜나와 박종현의 관계에서 '그 어떤 불편한 사고도 벌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 혼자 느꼈던 심리적 불안감이 성별을 바꾸는 것만으로 대부분 다 해소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분명히 있었는데, 초중반부에 힘을 싣고 가느라 후반부의 각색과 연출이 다소 힘빠진 듯한 인상을 줬다. 특히 서울영화제 부분을 모두 들어내고 고태경의 편지로 대신하는 부분은 약간의 배신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박종현을 젠더 스왑하면서 조혜나와 서사를 '퀴어'로 가져가는 시도를 한 시점에서,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의의를 갖는 관계 중 하나인 고태경과 채화영의 서사 역시 퀴어로 다뤄질 수 있겠다는 기대를 했는데 그 부분이 통째로 사라져버린 기분이다. 이 아쉬움을 제외하면, 얄라리얄라가 GV빌런 고태경으로 보여준 각색과 시도에는 전체적으로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뮤지컬 <등등곡> | 2.5/5

2024-06-29 19:00 : 김지철, 안지환, 강찬, 박선영, 임태현

사회 비판을 하고 싶고 권력자에 대한 눈 가리고 아웅하는 풍자를 하고 싶은 건 알겠다. 선조는 그런 의미에서 어디에 가져다 붙여도 좋은 왕이긴 하다. 그런데 정여립의 난과 기축옥사 등 역사적으로 분명히 실재하는 사건을 다루려면 고증을 하다 말지 말고, 입맛대로 하지 말고 일관되게 제대로 하든가 아니면 아예 역사에 기대려는 시도를 하지 말고 가상 세계로 돌리든가 둘 중 하나만 했으면 좋겠다. 넘버는 기대한 것보다 좋기는 했는데 이게 전체적인 극의 톤에는 어우러지지만, 이렇게 무게를 잡아야 하는 극인가?를 생각해보자면 그건 또 애매한 느낌이 있다. 웃음과 풍자, 해학과 비극적 정서, 와중에 브로맨스(라고 쓰고 사실상 퀴어베이팅)까지 여럿 욱여넣은 것도 심란하다. 잡고 싶은 토끼는 많은데 제대로 잡은 토끼는 없는 느낌. 전체적으로 아쉬운 느낌이 크다. 더 잘 만들 수 있었을 극 같은데.


# 영화/드라마

드라마 <조코 안와르의 나이트메어 앤 데이드림-3. 시와 고통(3.5/5) / 4. 조우(2/5) / 5. 또 다른 세계(2.5/5)

2024-06-24~06-27

전체 7편 중 5편까지 본 소감은 꽤나 애매모호하다. 3편 <시와 고통>이 지금까지 본 편 중에서는 가장 좋았고 4편 <조우>가 제일 별로였는데, 어디서 스치듯 읽은 <나이트메어 앤 데이드림>에 대한 평-인도네시아판 어벤저스-이 떠오르면서 다른 의미로 조금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5편 <또 다른 세계>는 립 반 윙클 효과나 우라시마 타로 효과, 우리나라의 용궁 설화, 신선놀음 전설과 유사한 설정에서 시작하는 점이 좋았는데 마지막 장면 때문에 점점 보면서 이 시리즈 전체가 하나로 묶여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6, 7편은 어떻게 진행되어 어떤 결말로 끝날 것인가? 그리고 이건 부가적인 불호 포인트인데, 시리즈 내내 전체적으로 화면이 너무 어두워서 보기 답답한 면이 있다.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 | 3/5

감독 : 마이클 사노스키 | 출연: 루피타 뇽오, 조셉 퀸, 니코&슈니첼

프리퀄에 대한 기대감은 내려두고(재난물이라기보다 휴먼 드라마의 성격이 더 짙어졌다는 평을 보았기에) 그저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에 대한 일종의 의무감과 지인에 대한 의리로 보러 갔다. 무엇보다 영화 시작부터 고양이가 나오며, 끝날 때까지 죽지 않는다는 '안전한 스포일러'를 들었기 때문에. 평가대로 재난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재난이 벌어진 상황 속에서 극단적인 상황의 두 외로운 캐릭터가 인간 대 인간으로 어떻게 서로를 받아들이고 구원해나가는가... 와 같은 휴머니즘적 코드가 메인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루피타 뇽오의 섬세한 연기가 스크린을 꽉 채울 때면 시리즈 세 번째 영화에서 이 정도 감정도 다루지 못할 바는 무엇이냐... 같은 기분이 들고 마는 것이다. 그만큼 루피타 뇽오의 연기가 좋았고, 조셉 퀸의 연기 역시(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좋아서 내게는 거의 부산행 공유 분유 씬 같은 느낌이었떤 재즈 클럽 씬도 그럭저럭 참고 넘어가줄 만했다. 작중 프로도라는 이름의 멋진 고양이로 나오는 니코와 슈니첼의 연기까지 좋았으니 연기 부문에서는 만족스러웠다 할 수 있겠다. 덧붙이자면, 사실 이 영화 최고의 판타지는 크리처들이 아니라 영화 내내 극도로 얌전하고 의젓하고 조용한 모습을 견지하는 고양이 프로도의 존재라는 데 나와 동생의 의견이 일치했다.


# 책

에세이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목정원 | 3.5/5

2024-06-17~2024-06-30

아름다운 언어들이 많고 섬세하고 서글픈 문장들이 많다. 부분부분 훔치고 싶은 이야기들과 경험들과 감각들이 문장 사이사이에 켜켜이 존재한다. 동시에 느끼게 되는 것들-나는 이런 식으로는 결코 세계를 감각할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과, 그러지도 않을 것이라는 우울-사이에서, 온전히 이 모든 문장에 '예술적인' 마음으로 공감할 수 없게 되는 건 내가 그의 글을 너무나도 부르주아지적이라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또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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