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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밋너 Dec 21. 2023

전시회 한 편, 아니 두 편 보고 가실래요?

화가 시리즈 뮤지컬 <모딜리아니>, <에곤 실레>

* 스포일러 없습니다.

서울자치신문 공연 섹션에 기고한 리뷰(원문 링크)입니다.

HJ컬처 제공

여기 두 남자가 있다. 볼 수 없는 영혼을 들여다보기를 원하며, 쇠약해진 손으로 붓끝에 희망을 담았던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그리고 오직 자유로운 예술로 시대를 넘어서기를 바라며, 불안한 자신의 영혼을 그림에 담아 세상에 내걸었던 화가 에곤 실레. 비슷한 시대를 살았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모딜리아니와 실레. 그들에게는 과연 어떤 공통점이 있었기에 약 2세기가 지난 오늘날, 대학로 한복판에서 각각 한 편의 뮤지컬로 다시 태어나 연작으로 연결된 것일까. 


화가 시리즈 뮤지컬 ‘모딜리아니’, ‘에곤 실레’는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 HJ컬처에서 시도했던 ‘변론 시리즈’에 이은 두 번째 옴니버스 연작 뮤지컬이다. 두 명의 화가와 그의 연인, 그리고 그와 밀접한 관계에 있던 주변 인물을 구성하는 세 명의 배우가 등장해 각 60분 동안 모딜리아니와 실레의 삶과 작품, 사랑을 무대에 전시한다. 


한 편당 60분이라는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서 알 수 있듯, ‘모딜리아니’와 ‘에곤 실레’는 연작의 특성을 살려 인터미션을 기점으로 공연을 각각 진행한다. 한 번에 두 작품을 모두 감상해도 되고, 시간이나 체력적으로 여유가 부족하다면 한 작품만 관람하는 것도 가능하다. 당연히 예매 페이지도 다르고, 티켓 수령도 따로 할 수 있다. 흡사 한 공간에서 시간별로 기획된 ‘모딜리아니 특별전’과 ‘실레 특별전’을 각각 따로, 혹은 연달아 관람할 수 있는 전시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실제로 극이 진행되는 내내, 모딜리아니와 실레는 물론, 피카소와 클림트의 명화가 LED 화면을 통해 미디어 아트로 무대를 가득 채우고 있으니 전시회라는 표현도 과장은 아닐 듯하다.)


이러한 구성 때문인지, 암전된 무대 너머에서 그날의 ‘모딜리아니’와 ‘실레’가 시 한 구절 곁들여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극의 도입부마저 전시회의 입구를 상상케 한다. 흰 가벽에 쓰인 화가의 한 마디, 혹은 그의 일대기를 간추린 문장을 읽고 본격적으로 화가의 작품이 전시된 회랑을 따라 걷는 것처럼 말이다.


HJ컬처 제공


본 공연은 짧은 시간 동안 모딜리아니와 실레의 인생 전반을 다 담아내려 애쓰지 않는다. 대신 그들이 사랑한 여성 잔 에뷔테른-발리(발부르가 노이칠)/에디트 실레, 그리고 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당대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구스타프 클림트를 등장시켜 그들의 예술관과 작품에 대한 신념, 그리고 삶에 찾아온 절망과 희망의 순간들을 조명한다. 단, 극의 스타일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모딜리아니’가 보다 부드럽고 섬세하며 드라마틱한 화가의 감정을 담아 붓질한 정극이라면, ‘에곤 실레’는 거칠고 자신만만하며 당당한 화가의 태도를 펑키한 록 비트에 담아 쇼뮤지컬로 드로잉한다.


이처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두 화가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연작으로 다루는 뮤지컬인 만큼, 무대 위 배우들의 노고도 만만치 않다. 배우들은 두 개의 극을 오가며 최소 1인 2역부터 1인 다역까지 숨가쁘게 소화해낸다. 양지원·김준영·황민수·최민우가 모딜리아니/에곤 실레 역을, 금조·박새힘·선유하가 잔/발리 역을, 김민강·심수영·신혁수가 화상/예술가 역을 맡아 열연한다. 


두 편의 뮤지컬을 연달아 보고 나니,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남긴 말이 떠올랐다. “인생의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영원히 남는다.” 무대라는 전시회 위에서 두 명의 화가를 통해 비춰본 우리의 생은 과연 어떤 아름다움으로 남을 것인가. 화가시리즈 뮤지컬 ‘모딜리아니’와 ‘에곤 실레’는 내년 3월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 2관에서 공연한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어릴 적부터 위인전을 즐겨 읽던 분

★★ ‘빈센트 반 고흐’, ‘파가니니’, ‘라흐마니노프’ 등, 화가 혹은 예술가가 나오는 극에 유독 관심이 많은 분

★ 60분? 도전해 볼 만할지도. 100분 이상 관극하기 어려운 친구와 함께 봐야 하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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